"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라"

"장례식장에 있을 땐 그래도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젠 네가 정말 떠나는구나." 아현동 철거민이었던 故 박준경 님의 영결식에 다녀왔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몇 차례나 서럽게 인사하셨다. 네가 하고 싶다던 가게를 열어줄 수 있는 형편이었으면 꼼꼼하고 착한 네가 정말 잘했을 텐데, 엄마가 능력이 부족해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라. 네 꿈을 펼칠 수 있게. 엄마는 네가 어디있든 행복하기만을 빈다." 

저 세상에서 만나자거나, 다음 생에도 엄마 아들로 만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생엔 어디라도 부잣집에서 태어나라는 말.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다가 속수무책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부자 되세요'라는 TV광고와 함께 열렸던 IMF구제금융시대.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라는 말이 아들을 사랑한 어미의 곡진한 기도가 되어버린 사회 아닌가. 전철연 조끼를 입고 여러 지역에서 온 철거민들의 어깨가 그 순간 함께 떨렸던 모습을 기억한다.    

 故 박준경 님의 어머니는, 촛불집회를 나가며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랐고, 조금은 달라지는 듯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하나도 다르지 않더라는 얘기를 하셨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한겨울에 내쫓으면, 동물학대라고 하겠죠?" 다음 말을 잇기 전 잠깐 머뭇거리던 침묵에 나도 숨이 멎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은 이렇게 한겨울에 내쫓는 건가요? 어떻게 사람을 내쫓는 강제퇴거는 동물학대만큼도 문제되지 않는 건가요?' 이런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건가요?'라는 서러움이 복받칠 때... 그 말을 입 밖으로 뱉고 나면 그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다음 말들을 뭉텅 입 안으로 삼키신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질문이 온전히 내게로 왔을 때 나 역시 입을 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직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것은 아닌가. 용산참사 이후로도 10년이 흘렀는데. 

영결식에 전철연 회원들 외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철거민'의 싸움은 여전히 인권의 문제로 충분히 여겨지지 않는다. 시민사회 안에서도 꽤나 고립된 싸움.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한데 철거민은 다르다고 여겨진다.

집주인이 집세를 갑자기 올려달라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을 비워달라거나 할 때, 대개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돈을 변통하거나 이사 준비를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철거민일 뿐이다. 올려달라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가는 건 쫓겨나는 거라고 여겨지지 않을 뿐, 자의에 반하는 퇴거 요청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철거민의 싸움은 사람을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싸움인데...  

박준경의 죽음 이후 아현2구역 공사는 잠시 멈췄다고 한다. 컨베이어벨트에 사람이 끼고 나서야 죽음의 공장이 멈추는 것처럼, 누군가 목숨을 잃어야 죽음의 개발이 멈추는 사회. 사람이 죽기 전에 잠시 멈출 수 있게 하면 될 것을, "죽어서는 나가도 살아서는 못나간다!"고 누군가 휘갈겨 쓴 담벼락의 구호를 미리 헤아리면 될 것을, 함부로 쫓아내도 아무 잘못이 아닌 법제도보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진실에 발딛고 변화를 모색하면 될 것을. 뒤늦은 후회야 함께 감당할 수 있는데, 이제 여기 없는 사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게 서러운, 그런 영결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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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16:42 2019/01/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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