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는 매일같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쟁점 내용들이 나온다. 법안의 세부 쟁점이 이렇게까지 알려지는 건, 내 기억의 범위에서는 흔치 않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수사권 기소권이나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처럼 세부내용이 전선이 되는 경우가 그나마 있을까,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법은 대개 목적과 필요성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 된다. 공수처법 같은 것처럼. 
법 제정 과정에서 세부 내용이 더 많이 알려지고 토론되는 건 좋은 일이다. 법은 저 스스로 세상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보다, 권리를 누려야 할 사람이 법의 내용을 더 잘 알 수 있어야 한다. 알아야 쓸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싸울 수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세부 쟁점이 하나하나 뉴스가 되는 요즘, 기분이 하나도 좋지 않다. 
어떤 법을 제안하고 지난한 싸움을 하며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처음 기대한 그대로 법이 통과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쟁점을 살피고 의견을 모으며 수정하는 것들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름만 남긴 채 법이 통과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 당연하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 가능하게 하려고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니므로. 
뉴스가 되는 세부쟁점들은 하나같이 처음 제안된 법의 쟁점이 아닌 것들이다. 예를 들어 벌금이나 징역형의 상하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수 같은 것은 처음부터 법에 있던 쟁점이다. 처벌의 세기가 클수록 좋은 것도 아니고 두루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이런 쟁점은 토론도 협의도 합의도 가능하다. 그런데 적용을 유예하자며 범위나 기간이 쟁점이 되고 심지어 어제는 5인미만 사업장을 제외한다는 토론을 했다고 하니 이건 차라리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의 쟁점이라야 마땅할 것들이다. 지금 법사위는 이름만 남긴 채 다른 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껴안으며, 유가족과 생존자와 동료들과 그 곁을 지킨 수많은 사람들이 수 년 간 꺼이꺼이 다져온 법안을, 국회와 정부가 몇 달 사이  바꿔치기 하니 분하다. 내일 이렇게 본회의 통과하고 나면 국회나 정부나 법 만들려고 자신들이 애쓴 결과라고 떠들어댈 텐데 그 모습 볼 일이 두렵다. 그런데 정말 너네가 만든 법이 될 것 같아 그게 제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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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0 19:07 2021/01/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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