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
30일을 걸어 국회 앞에 닿는 오늘, 국회가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심사기간을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날입니다. 장난합니까. 심사 계획이 없다는 말을 이렇게 하는군요. 10만 명의 동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 거라면 국민동의청원제도는 왜 만들었습니까.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차별주의자와 더불어 국민을 무시하는 데 한통속이네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회사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거라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죠. 비정규직에 여성이 훨씬 많고 성별임금격차가 세계 1위를 다툰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현실이 왜 이럴까요? 여성이 비정규직을 선택했기 때문입니까? 정규직에는 여성을 뽑지 않는 회사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선택의 자유를 회사가 아니라 시민에게 돌려주는 법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아는 척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당은 대선 후보만 되면 소신을 바꾸는 게 특기인가 봅니다. 대통령 되고 나서 공약 뒤집는 경우는 많이 봤는데 대통령 되기도 전에 소신을 바꾸는 건 어디서 배워왔을까요? 이재명은 차별이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했죠. 2020년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한국사회에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재명은 차별금지법에 갈등이 있다고 했죠. 국민 10명 중 7명은 차별을 이대로 두면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거라고 응답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요?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이루었는데 혹시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겁니까. 
그러면서 성평등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더라고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면 평등이 찾아옵니까? 여성이 지워지겠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셨죠? 남성도 여러 차별을 겪으며 삽니다. 그런데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건 어떤 겁니까. 이재명 후보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아본 적 있습니까. 차별이 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삽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더 필요한 겁니다. 차별을 배워야 평등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지침 같은 것”이라고요?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이미 헌법이 정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권리가 있다고요.  
차별이 소수의 사람만 겪는, 대수롭지 않거나 한가한 문제라는 무지를 멈추십시오.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정당이 개혁이나 진보를 자처할 때 시민들이 믿어줄 거라는 착각도 접으십시오. 심사기간을 연장하면 우리가 지칠 거라는 기대는 더욱 접으십시오. 당신들의 무지와 착각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더 크게 싸우고 바꿔야 할 이유일 뿐임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이미 함께 싸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거든요. 국회 앞으로 가겠습니다. 

11.9. 
"차별금지법이 가장 간절한 사람들은 누굴까요?" 한 기자가 물었다. 누구일까. 
나는 이제 간절함이나 절박함 좀 요구하지 말라고 답하고 싶었다. 차별은 살다가 몇 번 겪고 지나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삶의 매순간 쫓아다니는 꼬리표 같은 것이다. 간절함의 무게가 절망의 무게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삶의 모든 무게를 담은 절망. 우리는 절박함을 드러내는 만큼 절망하지 말자고 말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 간절함이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걷는 내내 곱씹었던 질문이다. 그것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보고듣고 싶어 하는 피해의 크기나 강도가 아니다. 우리는 평등을 알아버렸다. 우리가 저마다 다르지만 동등한 존엄을 가진 사람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게 늘 훼방당하지만 우리는 늘 그 자리에서 다시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걸 안다. 이제 그 싸울 자리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어제는 안산을 걸었다. 이번 도보행진은 여느 행진 경로와 두 구간이 다르다. 서울로 바로 가는 길에서는 들르지 않게 되는 청주와 안산이 그곳이다. 변희수 하사의 고향이라 청주를 들르기로 했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안산을 찾기로 했다. 부러 들르는 마음을 미리 다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들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2014년의 약속. 참사가 있고서 '강남에 있는 학교면 저러겠냐'는 말을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했다. 참사 이후의 사회에 '사람 차별하지 말자'는 약속 하나 세우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 이후로도 정치인들이 성소수자혐오에 굽신거리는 걸 내버려둘 수는 없다. 평등을 알아버린 우리는 차별당한 사람만 혼자 서러운 사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늘 앞으로 걷는다. 

11.8.
"차별금지법을 왜 만들려고 그래. 차별금지법 안돼. 차별금지법 안돼." 어제 수원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한 시민 분이 계속 소리를 질러 잠시 어수선했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묻습니다. "행진 하면서 반대하는 분들 만나면 어떻게 하셨어요?" 별로 할 말이 없는 게, 반대하는 분들은 거의 못 만났어요. 당연하겠죠. 반대하는 이들이 훨씬 적으니까요. 하지만 종걸과 저도 행진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반대하는 이들을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누가 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으면 혹시 반대하는 분이지 않을까 살짝 긴장되기도 했어요. 차별금지법을 설명드리고 응원하는 말을 들으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내가 안도감을 느끼고 있나... 
반대하는 '의견'이 두려웠던 건 아닙니다. 지역의 인권조례 토론회장 등에서 진행을 방해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만 쏟아낸다거나 퀴어퍼레이드의 행진을 가로막고 구호를 외치거나 혐오의 말을 퍼붓는 이들을 10여 년 동안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토론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토론을 무산시키려고 왔습니다. 행진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반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혐오에 대항하고 그들과 토론할 말들이 있었고 그렇게 대항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몫으로만 남았습니다. '너희들끼리 싸워서 결론을 내리고 오라'는 듯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감수해야 하는 모욕과 수난은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요. 온 사회가 혐오의 편에 있는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을 정치인들은 짐작이나 할까요? 
아시다시피 21대 국회에는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도 10만을 넘겨 회부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하는 정치인들도 있다고 해요. 이상하죠. 찬성과 반대가 있으니 토론이 필요한 것일 텐데 찬성과 반대가 있어서 논의를 안한다? 게다가, 차별하게 해달라는 이들이 10만 명이나 된다면, 이들과 토론하고 설득하는 일은 더욱 시급한 것 아닌가요? 차별금지의 원칙이 무엇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중요한지 더 많이 말해야 할 이유일 뿐입니다. 이제 국회가 좀 하시죠. 저희는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걷고 있습니다만,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나 많은 국회는 왜 아무것도 안 합니까. 
행진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 검토할 때 됐다'고 말했다는 소식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이 '정기국회에서 공론화할 것'이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만 분명히 짚고 싶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성립된 만큼 법안에 대한 논의는 국회의 의무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헌법 아래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 책임이고요. 공론화 자체를 과제의 전부로 생각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특히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나 '반대'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걸 이유로 토론을 회피하고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거나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한 일이야말로 '반대'를 승인한 과오였음을 이제 알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존재를 '사회적 합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사회적 살인'입니다. 
정치권은 대선으로 점점 더 빨려들어가겠죠. 그런데 누가 약속하는 어떤 미래든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미래일까요? 여성의 것도 아니고 장애인의 것도 아니고 성소수자의 것도 아닌 미래. 나이가 많거나 적다는 이유로, 몸이 너무 뚱뚱하거나 말랐다는 이유로, 병을 앓거나 다 나았다는 이유로 배제될 수 있는 미래라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 모든 대선 후보들이 경쟁의 출발선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선언하고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일. 이런 미래라면 우리의 미래일 텐데, 기대해볼까요? 
아, 궁금하신 분들께 ㅎ 오늘 28일째 행진인데요, 반대하는 분들 딱 네 번 만났네요. 수원역에서 만난 분과 비슷한 분이 대전역에서 (그냥 지나가셨지만) 있었고, 행진을 하는 중에 차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나는 반대'라고 외친 분이 또 두 분 있었어요. 지지하는 분들은 셀 수 없으므로 패쓰 ㅎㅎ

11.6.
성환읍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는 다리 끝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 두 그루가 문처럼 서있었습니다. 다리만 지나면 식당이라, 이제 점심 먹는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나무 뒤로 수십 명 되는 사람들이 양편으로 늘어서 박수를 쳐주고 있었어요. 예상치 못한 마중에 너무 감격하다가 사진도 못 찍었네요. 현대위아 지회를 비롯해 평택 지역의 노동조합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평택역까지 함께 걸어 기자회견을 마친 후 예정에 없던 간담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보행진 하는 동안 노동조합에서 많이 나와주셨는데, 사실 차별금지법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가장 많이 알려진 사실은 '교회가 반대한다'일 겁니다. 정작 차별금지법의 내용은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별로 없었죠. 그런데 이런 현실 때문에 숨겨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차별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있는 어느 나라나 가장 많은 다툼이 있는 것이 고용영역입니다. 그래서 가끔 아쉬웠던 적도 많습니다. 민주노총이나 노동조합에서 차별금지법에 그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10만행동 때도 그렇고 이번 행진에서도 노동조합은 늘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싸워본 사람은 싸우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평택의 사업장 노조들과의 간담회에서는 각 사업장의 현안이나 고민도 듣고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대체로 비슷합니다. 잘 모른다고 말하던 분들도, 사업장에 차별이 진짜 많다, 차별당하는 줄도 모르고 사는 노동자들이 많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나도 알게 됐다 등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감이 깊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공감하는 것, 차별금지법이 '혼자 남겨두지 않는 법'이라는 겁니다. 노동조합은 이미 혼자가 아니지만, 노동조합을 하게 되기까지 혼자였던 시간과,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겪게 되는 고립의 시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외로워본 사람들이라 누구도 외롭게 남겨두지 않고 싶은 사람들. 
간담회를 마치고 대추리에 다녀왔습니다. 신종원 이장님을 오랜만에 뵙고, 그의 따뜻하면서도 뼈 때리는 말들에 같이 엄청 웃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보내면 서운해서 어떡하냐" 제가 오히려 평소에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 이렇게 그냥 오면 되는 거야. 다들 바쁘잖아. 나는 죽는 날까지 대추리가 지구상에서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게 사명인 사람이야. 그게 내 몫이야." ... 울컥 눈물이 쏟아져버렸습니다. 외롭게 제 몫의 싸움을 하는 이들일수록 누구도 외롭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지켜야 할 자리가 있어 다른 싸움의 자리에 찾아가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내는 마음과 발걸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가고 있구나... 
혼자 남겨두지 않기 위해 늘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싸움에서 이겼을 때 그것을 모두의 승리로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노동자의 승리가 되게, 노동조합의 승리가 여성과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이주민의 승리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우리가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싸움이라면 우리는 멀리 있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 내가 혼자 남겨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이 이길 겁니다. 

11.5.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데 교수가 성소수자 아웃팅 시킨 걸 농담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농담도 그렇지만 그걸 듣고 동기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학교에 나의 자리는 없구나, 느꼈어요. 제가 교육을 전공하는데 미래의 교육에도 내 자리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차별금지법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법입니다. 성소수자 관련 활동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가끔 상경하는 게 전부인데, 지역에 이런 자리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함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시민 1로 그냥 걸으려고 했는데, 아까 인사 드렸죠. 한빛이 일 이후로 저는 한빛 엄마로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한빛 엄마로 사는 게 솔직히 쉽지 않아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고. 오늘 걸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대화하면서 사람들 만나면서. 오늘도 한빛이를 가슴에 두고 함께 걸었는데, 한빛이가 '엄마 잘하고 있어' 말하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도 연대 덕분에 싸울 수 있었는데, 연대를 배우는 길이었어요." 
"제 아들이 발달장애인입니다. 자라는 동안, 공식적인 차별은 없었을지 몰라도, 틈새의 차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 이제 서른한살인데, 초등학교 6년 같이 다닌 친구들이 동창회에 부르지도 않아요. 오늘 아들이 같이 걸으면서 좋아하는 거 보셨죠? 자기랑 어울려주니까. 차별금지법이 선언적 의미로도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산다는 거. 올해 꼭 제정되도록 힘을 냅시다." 
길을 걷다가 이게 반은 행진이고 반은 순례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밖을 향해 외치는 길이기도 하지만 안을 향한 길이기도 하다는 느낌. 무언가 배우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기도 했거든요. 어제 직산역에서 행진을 마치고 소감을 나누며 하나 더 깨달았습니다. 이 길이 평등의 순간들을 만들고 있구나, 함께 걸으면서 나도 우리도 더욱 강해지고 있구나.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겠다... 
어쩌죠? 이제 우리 언제 이길지만 정해요. 2021년 어떤가요?  

11.4.
지난 주말이었나, 종걸이 사람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는데 "도보행진단 활동가 종걸입니다" 그래요 ㅋ 도보행진단? 그게 어딨어? ㅋㅋㅋ 막 혼자 웃었는데, 곱씹어보니 그런 게 있다고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ㅎㅎ 
같이 행진하실 분들 오면 손수건 몸자보 깃발 나눠드리고 참여자들과 인사 나누는 시간 진행하고 하루 경로를 소개하고 위험한 길은 조심하시라 안내하고 길 헤매지 않게 종종 지도 확인하면서 쉴만한 곳이 어딜지 찾고 점심을 어떻게 먹을지 상의하고 잘 알려보자 걷는 길이라 사진 찍고 어리버리 차제연 트위터 계정에 소식도 올리고 이따금 필요한 것들을 서울에 있는 이들과 상의하고 중간에 결합하는 분들 있으면 연락하고 (아직은 별로 없지만 10일까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언론 취재도 응하고 하다 보면 행진이 끝나 있어요. ㅋ 행진을 마치면 다음날 경로를 답사하거나 숙소로 들어가 내일 일정을 점검하고 필요한 준비 해놓고 각자 시간을 보내거나 라이브방송을 하거나 등등을 마치면 잠을 잡니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도 꼭 챙겨서 합니다. 내가 홀몸이 아니다 이런 마음이랄까 ㅋㅋ 이 중 행진이 제일 쉬워요 ㅋㅋㅋ
같이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저랑 종걸이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해서 적어봤어요. 잘 보이지 않는 '활동가'의 역할도 좀 보여주고 싶었고요. 사실 걷는 저희보다 애쓰는 활동가들(우리의 배후조종자 장길완 을 비롯해)이 더 많아요. 
사람이 많아지면 활동가의 일이 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죠? 일이 불어나도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덜 힘든 거, 더 힘나는 거. 함께 걸으면서 얼마간은 모두가 활동가가 된다는 거. 
'피해자'나 '소수자'의 모습으로만 차별금지법의 '당사자'를 상상하는 사회를 향해, '활동가'의 모습으로 차별금지법의 '당사자'가 되어보는 일도 꽤 괜찮지 않나요?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길에서 더 많은 분들 뵙고 싶어요. 사실 앞으로의 일정은 지역의 단체들에서 다 준비해주시고 있어요 ^^;;; 그리고 업계 최강 활동가 차제연 공집장들이 챙기는 11월 10일 시민대행진! 천 명이 와도 끄떡없을 사람들인데 백 명 오면 서운하잖여. 그래서 오늘은 행진 사진 대신 시민대행진 카드뉴스 올립니다! 
모두의 걸음으로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11.2.
함께 걸으러 오신 분들한테는 말씀드리는데, 하루 걷는 게 제일 힘들어요 ㅎ 도보행진 20일을 넘기니 다리는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숙소에 들어오면 다시 못 걸을 것 같은데 아침이면 다리가 먼저 걷습니다. 국회에 가까워지니 대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11월 10일까지 심사하겠다고 통지한 국회는 여전히 별 소식이 없습니다. 
어제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솔직히 몸도 좀 힘들어요 ㅋ) 그런데 신기하게도 행진을 하면서 다시 힘이 났습니다. 한 달 전까지 1시간도 걷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녹아버렸다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예은 아빠가 함께 걸었습니다. 마지막 한 시간쯤이 되니 정말 지쳐 보였습니다. 싸우는 사람들에게 한 발 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의 무거운 다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오후에 수업이 있어 아쉽다며 오전까지 행진을 마친 이의 티셔츠에 짙게 핀 소금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끌어주고 넘겨주며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함께 걷는다면, 길은 이어지고, 길이 열린다는 걸 배우며 갑니다. 저랑 종걸이 걱정돼 힘든 내색 못하고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분들 덕분에 또 하루 시작합니다. (하지만 같이 걸으면서 힘든 티 내셔도 돼요!! 진짜 하루 걷는 게 더 힘들다니까요!)

11.1.
어제는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 버스를 대절해 청주에 왔습니다. 행진 때 들고 다닐 무지개 깃발이 부족할까 걱정했더니 같이 걷는 종걸이 걱정 마라 해요. 다들 들고 올 거라고. "그게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역시나 그랬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무지개 깃발이 유난히 반짝이는 하루였습니다.

10.31.
오전에 행진을 마치고 변희수 하사를 만나러 다녀왔습니다. 고향인 청주에서 조금은 따뜻하게 잠들었기를. 조용히 묵념을 하고 나오는데, 얼마 전 다른 이를 찾아 들렀던 봉안당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나 왔어."라며 소리 내 인사하던 이. 만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있는 것처럼, 저도 소리 내 인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들어가 입속에 삼켰던 말들을 꺼냈습니다. 
변희수 하사님, 
저희 차별금지법 제정하려고 
도보행진 중이예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는데 
보고 싶어서 왔어요. 
강제 전역 취소된 거 알고 계시죠? 
너무 늦었지만, 당신이 이겼어요. 
함께 계속 이기고 싶어요. 
너무 늦지 않게. 
차별금지법 올해는 꼭 제정할 거예요. 
같이 걸어주세요. 
다시 올게요. 
반가운 소식 들고. 
조금 울고 싶었습니다. 
숙소에서 예은 아빠를 만났습니다. 내일 같이 걸으려고 찾아온 그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이런 반가움과 고마움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보행진 스무날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10.31.
대전에서 청주로 이틀을 같이 걸었던 분이 있습니다. 외국에 거주하는데 휴가로 잠시 한국을 들르면서 시간을 내어 찾아주셨어요.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보수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정하는 분위기가 되자 해외의 지교회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라, 시간을 쪼개어가며 A4 60쪽짜리 리포트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함께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차별금지법 찬성 입장까지는 못 갔지만 반대 설교는 하지 않기로 하는 데까지는 갔습니다." 못내 미안한 듯 말하셨지요. 
몇일 전에는 행진 중간쯤에 라이브방송을 보면서 위치를 찾아온 분이 있었습니다. 행진을 마치면서 소감을 나누는데 목사님이었어요. "옥천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미안함은 왜 이분들의 몫이 되었을까요. 
교회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많은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있습니다. 최근 수 년 동안 반대보다 지지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운 이유로 교회를 듭니다. 
어떤 제도든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요, "동성애는 에이즈 확산의 주범", "차별금지법은 가정 파괴법", "동성애는 전환치료가 필요한 대상" 같은 주장이 귀 기울여야 할 의견인가요? 본인의 신앙이든 신념이든 성소수자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들도 있겠죠. 그러면 시민들도 그걸 따라야 하나요? 
정치인들은 '논란이 많다'는 말만 하고 자신의 입장은 밝히지 않습니다.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무엇을 토론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 비겁함이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애쓰는 분들까지 모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은 많은 분들이 교회를 가는 날이네요. 누군가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곳으로, 신앙을 버릴 수 없어서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신앙을 지키는 일이란 얼마나 고될까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교회를 바꿀 건가요? 아니라면, 돕기라도 하세요. 교회 안에서 비합리적 억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려 애쓰는 수고라도 좀 덜어주세요.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길입니다. 

10.30. 
"처음엔 왜 이 길로 걷나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길이라." 트위터에서 우연히 도보행진 소식을 보고 온 분. 도로로 행진하는 건 처음이라 좋은 시간이었다며 들려준 이야기.
"그러다가 이 길로 걷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길은 대전에서도 소외된 길이거든요.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예요. 이런 활동도 다 핫하고 예쁜 데만 찾아가면 다시 소외될 수 있잖아요. 차별금지법이 더 필요할 텐데, 사는 게 바빠서 오히려 관심 갖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잖아요. 평등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경로를 짜면서 길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11월 10일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찾았을 뿐입니다. 길마다 의미가 있을리가요. 하지만 같이 걸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길에 뜻이 피네요. 

10.29.
길을 걷다 보면 차별금지법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신기하게도 첫 질문이 한결같다. "무슨 차별 금지하는 거예요?" 차별을 금지한다는 말이, 너무 뻔한 말이라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리라. 몇일 전 만난 분도 그랬다. 
심천역에서 출발 준비를 하는데 한 분이 배낭을 메고 서성이고 있었다. 혹시 같이 걸으시려는 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는데, 안 그래도 우리가 안 그래도 궁금했는지 질문을 하셨다. 대답도 뻔하다. 
"모든 차별요. 성별, 나이, 장애, 학력, 성적 지향, 가족형태..."
"회사와도 관련 있어요?"
"그럼요. 회사가 사람 뽑을 때나 짜를 때나 차별 진짜 많잖아요."
"비정규직 차별도 해당돼요?"
"물론요.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도 금지해요." 
"와. 그거 꼭 필요한 법이네. 애쓰시네요. 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기다리고 있던 무언가를 만난 듯 기념사진 제안까지 내달리는 그의 반응에 조금 얼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이 비슷하다. 필요하고 당연한 법이라는, 어쩌면 뻔한 반응. 그러니 정말 뻔하지 않은 것은 따로 있다. 이런 상식을 두고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못하는 세력이 개혁이나 진보를 자처하기도 한다는 사실. 뻔하지 않고, 뻔뻔하다. 
어제 홍준표("동성애 합법화" 운운)와 이재명("사회적 합의" 운운)의 발언을 보니, 홍준표는 대선 후보 되면 동성애 반대하냐고 다시 물을 기세, 이재명은 차별은 안 되지만 시기상조 같은 말 반복할 태세네요. 촛불 이후 5년 어쩜 이리 한결같은지... 올해는 차별금지법 꼭 제정해봅시다. 

10.28.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다짜고짜 묻는다. "그 깃발 동성애 그런 거예요?" 말이 좀 그렇잖은가. 게다가 말투도 퉁명스러워서 조금 긴장이 됐다. "네, 저희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서울까지 걷고 있어요." 또박또박 답했다. "저 예전에 호주에서 그 깃발 본 적 있어요." 긴장은 무색해지고, 아 그러셨구나... 
몇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무지개깃발을 들고 여럿이 행진하는 걸 보고 맞은편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분이 큰소리로 물었다. "타이완? 타이완에서 왔어요?" 대만이 동성혼을 합법화했다는 뉴스를 기억하셨나 보다. 무지개깃발을 볼 때 저 먼 나라들을 떠올리는 사람들. 이 나라에는 없는 깃발인 듯, 자신 곁에는 없는 사람인 듯. 
혐오의 가장 큰 효과는, 눈 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외계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반동성애세력만 벌이는 일일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십수년째 미루는 국회가 동조하는 일이다. 우리 여기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라는 요구를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어제는 옥천에서 간담회를 했습니다. 풍성한 질문과 귀기울이는 모습들 덕분에 절반쯤 온 행진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네요. 

10.27.
엊그제 영동길에는 쌍용차 노동자 윤충열 님이 함께 했어요. 점심시간에 쉬면서, 아직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고 자랑을 하려했더니만, 2011년 소금꽃행진 때는 짧으면 38km, 길면 52km를 하루에 걸었어요... 20km쯤 걸으면 물집 안 생길 수 있죠... 자랑이 쏙 들어가버렸네요 ㅋㅋ 
소금꽃행진은 길고 고된 행진만은 아니었습니다. 2009년 정리해고와 파업 이후 절망의 시간이 2011년 희망버스에 함께 하면서 달라졌다고 해요. 밖으로 연대하면서 안이 더 단단해졌고 2013년 대한문 앞 분향소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그 얼굴들이 기억납니다. 동료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싸우던 이들이 용기내 짓던 웃음. 그 자리에서 키워낸 또다른 연대의 씨앗. "인권은 목숨"이라고 외치며 서울시청에서 벌인 무지개농성에 먼저 찾아오고 아이다호데이에 열었던 서울역 집회에서 지보이스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던 사람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참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살아서 함께 싸우자고 길을 냈던 이들이 지켜낸 삶의 시간을 기억합니다. 혐오가 칼이 되는 시대,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라는 다짐이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이들과 함께, 오늘도 걷습니다. 

10.25.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네요. 걷다 보니 배운 건, 한 걸음 내딛으면 그 다음 길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오늘도 열심히 조심히! #평등길1110 오늘이 월요일이죠? 저희는 내일이 쉬는 날이라 오늘이 토요일 같네요 ^^;;
어제도 함께 걸어주신 분들 덕분에 힘나는 하루였습니다. 강정마을 활동가와 정택용 사진가, 서울에서 온 친구들, 변혁당 충북도당, 유성기업 영동지회 분들이 저희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주었어요. 고맙습니다~

10.24.
어제는 추풍령 지나 경상북도에서 충청북도로 넘어왔습니다. 김천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걸어주셨고 멀리 경산, 안동에서도 찾아와주셨어요. 전동휠체어 밧데리가 무한대라면 서울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던 분은, 대학에 입학해서 늘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줬던 한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성소수자 친구를 생각하며 행진에 참여한다고 했어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함께 싸우는 것이 그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시 친구와 소식이 닿기를 바란다면서요. 김천에서 같이 걸었던 한 분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너무 당연한 요구인데도 맘카페에 차마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부담을 말하셨어요.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죠. 지금 누가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인지 제대로 봅시다. 차별금지법은 모두의 자유를 위한 법입니다. 차별금지법 논의를 회피하는 국회는, 거대 양당은, 우리의 권리를 침묵에 가두고 있는 셈입니다. 침묵은 혐오를 키울 뿐입니다. 혐오에 대항하는 첫걸음으로 수많은 안내서들이 제안하는 것은 한결같습니다. 침묵하지 마라. 국회가 혐오에 동조하지 않을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묵하지 마라. 혐오를 혐오라 말하고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라. 차별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라. 
하루하루 걷는 일이 일상이 되니 조금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걷는 것 자체가 무슨 챌린지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11월 10일, 국회 앞까지 가야 하니까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걷습니다. 우리의 챌린지는 도보행진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10.23.
주말... 이라는 그런 날이군요 ㅋ 오늘은 소소한 소식들  
1. 마스크를 벗어도 마스크를 쓰는 내공을 쌓는 중. 종걸이 한 수 위. 
2. 종걸, 미류 두 사람 모두 아직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 (비법은 추후 공개) 
3.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트위터 계정에 소식 올리는 걸 하는데 이제 꽤 익숙해졌어요. 걸으면서 폰 보는 걸 주의하는 게 관건. 
4. 폰이 뭔가 화가 났는지 어제 찍은 사진들이 모두 오류라며 사라졌... 어제 트위터에도 다 올린 사진들이 갑자기 왜... 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나 ㅡ,ㅡ;;
5. 어제 함께 걸었던 KEC지회에서 법률비 마련을 위한 재정사업 중이라고. 사과즙과 전병 드셔보세요~ 
오늘도 하늘은 겁나게 맑네요. 네. 마스크 자국은 더욱 선명해질... 추풍령 가는 길,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10.22.
열흘쯤 되니 요일 감각이 없어집니다 ㅎ 곧 주말이라니... 그런데 주말이 뭐죠? ㅋㅋ 마침 그 길이 그 길 같은 그런 길을 걷는 때라 시간과 공간 감각이 한꺼번에 흐려집니다. 함께 걷는 분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구분합니다. 
어제는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아침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남색 조끼에, 앙증맞은 무지개 깃발을 손에 든 모습이 뭔가 어색하면서도 예뻤(?)습니다. "무지개 깃발은 뜻이 뭐예요?" 같이 걷던 한 분이 물으셨어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거라고 간단히 설명 드렸습니다. 어떤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용기와 도전을 뜻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깃발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공부 못해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던 이가 세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긴 시간, 그리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어떤 순간. 누구든 그런 순간에 축하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사히 동지들이 평등길 스티커 순삭 해주셨 ㅋ 왜관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오후에는 성주에서 한 분이 함께 걷겠다고 멀리 찾아오셨어요. 고3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오후 행진 시간이 좀 짧아 아쉬웠는데, 다시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또 그 길이 그 길 같은 그런 길을 걷습니다. 

10.21.
종이신문을 오래 봤어요. 뭐든 손에 잡혀야 읽히는 편이기도 하지만, 단신기사들을 찾아보느라 그렇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단신들에서 보이거든요. 떠들썩한 뉴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누군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이야기, 살면서 겪는 크고작은 차별과 폭력의 이야기, 새롭지 않아서 뉴스가 못 되는 일들이 단신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물론 뻔한 일상을 조금씩 비틀며 맞서거나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설레는 이야기들도, 온 세계에 맞서는 용기와 비교하면 너무 짧은 단신에 그칩니다. 
종이신문을 못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듣는 라디오가 전부인데, 맨 대장동 얘기네요. 누굴 위한 싸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개발이익이 민간 어느쪽에 넘어갔느냐 따지는데요, 공공이 더 많은 이익을 환수했더라도 그게 모두의 이익은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발설하지 않습니다. 임대주택은 늘 쥐꼬리만큼 짓는데다가, 혼인 여부나 자녀 수로 줄 세우며 차별하고, 얼마 안 되는 물량으로 경쟁하게 만들 뿐인데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죄다 이재명 편과 반-이재명 편으로 나눠 싸우는데, 국민 편에는 누가 있나요? 본인들은 국가의 미래를 두고 다툰다고 생각하겠죠. 어떤 미래든 차별을 이대로 둔다면 그게 우리의 미래는 아닐 겁니다. 차별금지법이 대선에 앞서, 지금 당장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서울이 멀었지만 하루하루 걷다 보니 가끔 화가 나요. 6월 국민동의청원, 차별금지법 바라는 정말 많은 마음이 모였는데, 국회는 종이 한 장으로 그걸 무시했습니다. "심사를 연장"한다는 통지서 한 장의 무게가 10만 명의 목소리를 눌러버려도 되는 건가요? "국회 밖에서 더 많이 말하라"고 훈계하는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왜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국회가 스스로 밝힌 시한인 11월 10일이 오늘로 20일 남았습니다. 30일이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는데, 20일이면 법안 네 개를 정독하고 토론하기에 부족하진 않겠죠. 
늦기 전에 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국회에 촉구합니다. 저는 당신들의 세계와 다른 단신들의 세계에서, #평등길1110 오늘도 걷습니다. 
어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길 걸었는데, 화를 한 번 쏟고 가려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 오늘은 연화역에서 왜관역, 약목역 거쳐 보손보건진료소에서 마칩니다. 화는 아주 가끔씩만 조금씩만 낼게요 ㅎ

10.20.
대구에서는 차도를 따라 행진했습니다. 오랜만이었네요. 대구 지역에서 행진신고를 미리 해주신 덕분이었는데, 서울시도 집회시위의자유를 보장할 방법을 좀 배워가면 좋겠네요. 아무 근거 없이 안된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아침 뉴스에서는 오늘 총파업도 차벽으로 다 막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 모여본 사람들은 압니다. 느낌 아는 분들, 같이 걸으러 한 번 오셔요~ 
넓은 길로 걸어서 시원한 행진이었는데요, 아침 일찍 간식을 한아름 준비해온, 귤 껍질 하나하나에 해시태그 새겨온 이들 덕분에 따뜻한 행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대구를 떠나 왜관을 향해갑니다. 종착지는 연화역입니다. 

10.19.
팔조령 고개를 넘은 게 까마득한데 엊그제였네요. 길이 참 좋았습니다. 서늘해진 공기도 시리게 눈부신 하늘을 배경으로 하니 마주할 만했고요, 걷다보니 오르막이 끝나고 다시 걷다보니 내리막이 끝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걸으면서 점점 생각이 없어져서 그럴까요 ㅋㅋ 발은 스스로 걷는다! 
그렇기도 하지만, 함께 동행한 분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고개를 넘어 종착지까지 동행해준 종광 님은 휠체어로 팔조령 넘은 사람이 최초일 거라며 웃었는데 "장애인화장실 없어 6시간 동안 참고 또 참고, 했다"는 후기를 남겨주시기도 했어요. 웃을 일은 아닌 거죠. 또다른 동행자 아리 님은 걸음이 늦어 행진단 속도를 늦출까 걱정,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함께 걷고 싶은 마음에 용기내어 오셨다고 했어요. 함께 해서 좋았다고 말씀해주셔서 더욱 고마웠습니다. 
일주일 걷다 보니, 종걸과 제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함께 해주는 분들이 우리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넘겨주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우리는 넘겨질 준비만 하면 서울까지 갈 수 있겠구나 싶어 든든했고 넘겨주는 이들의 따뜻한 응원에 힘을 얻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저마다의 소박한 마음이 조금씩 더 내어주는 용기가 서로의 디딤돌이 됩니다. 이렇게 한걸음씩 내딛는 길이 이어지면,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큰 용기를 요구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게 될 겁니다. 
오늘은 대구로 들어가 시내를 걷습니다. 이슬람사원 증축 반대 주장이 거센 경북대 인근도 지날 예정입니다. 

10.17.
"저기가 어딘지 아시죠?" 같이 걷던 분이 씁쓸하게 물었다. 아들 정유엽의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요즘 매일 10시간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정성재 님이다. 
청도대남병원. 코로나19 사망이 처음 보고된 장소였다. 나는 그 병원이 너무나 읍내 큰길가에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작년 많은 언론이 병동의 내부를 취재해 전했을 때, 나는 아주 외지고 인적 없는 곳에 숨어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오며가며 누구나 볼 수 있는 거리에서 그런 병동이 운영될 거라는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청도대남병원 바로 옆 건물이 청도군민건강센터, 즉 보건소라는 사실이었다. 
밀양을 지날 때 우리가 걷는 걸 보고 한 분이 훈계를 했다. "요즘 세상에 차별받는 사람이 어딨어?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얼른 집에 가." 
차별받는 사람만 알지. 차별받는 사람이 어딨는지. 차별에 맞서는 싸움이 어려운 이유다.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나중에 나중에 라며 미루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건 안다. 그러나 '차별받는 사람이 어딨는지' 모른다. 차별,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여달라고 하기 전에 보려고 하시라. 
오늘은 팔조령 고개 넘어 대구로 갑니다. 하늘이 시리게 푸른 날입니다.  

10.16.
송전탑 막으려고 오던 밀양을, 어제는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며 지나왔습니다. 초고압 송전탑이 보이지 않는 길이 없었습니다. "내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걸 봤으면 얼매나 속상했겠나" 하시던 한 할매의 말을, 걸으면서 되새기니 더욱 잘 알 것 같습니다. 어제 함께 걸어준 밀양송전탑대책위 동지들이 그래서 더 고마웠습니다.

10.15.
어제의 양말 오늘의 양말 ㅋ 어제 같이 걸은 한 분이 조금 당황하면서 "여성분이 발가락양말 신은 거 처음 봤네요" 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런 말을 처음 들었네요, 라고 차마 말은 못하고 ^^;;  저도 이번에 처음 신어봤어요. 처음엔 어색해서 발가락들이 어떨 줄 몰라 했는데 이제는 자기자리를 잘 찾아 들어가요 ㅎㅎ 
어제의 풍경들 오늘의 풍경들까지. 오후에 비가 온대서 서두르고 싶지만 점심 시간에는 충분히 쉬기로~

10.14.
아침에 몸을 풀면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장난감회사 엘사가 모든 제품에 여성용/남성용 표기를 없애고 진열점에 '성중립구역'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오네요. 정치하는엄마들이 작년 영유아동 제품에서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구분한 것이 성차별이라고 진정한 것에 대해 얼마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이 있기도 했죠. 화석처럼 굳은 것 같은 성차별의 역사도, 어딘가 누군가 내기 시작한 길이 이어지면서 만드는 작은 변화를 봅니다. 우리의 평등길도 그렇게 이어질까요? 어제 함께 걸은 분들 덕분에 그럴 것 같습니다. 
어제, 조금 많이 걸었지만, 조금 많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어제처럼 긴 거리를 걸으면 안 되겠다는 정신을 차리고 ㅋㅋ 이동거리와 경로를 조금씩 조정했습니다. 혹시 함께 걷고 싶은 분들은, 미리 문의 꼭 하세요~ 

10.13.
어제 지도는 한 장 오늘 지도는 두 장. 축적 차이가 아니라 거리 차이라는 😣 어제 도착지 앞두고는 시키는대로 폴짝 뛰었는데... 오늘도 그럴 수 있기를! 🙏

10.12.
오늘 10시 부산시청 앞 기자회견으로 도보행진 시작합니다~ 아침에 같이 움직일 차에 #평등길1110 새겨넣고 준비.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쳐 다행인데, 어떤 길이 될지... 떨리는 건 비밀입니다. 오늘 제 생일인 건 안 비밀입니다. 페북에서 생일 알려본 적 없는데 오늘은 축하(?) 받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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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3 12:12 2021/11/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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