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어제 진료요청을 받은 이후 내내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진료를 받지 않으시겠다는데 내가 가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앞은, 자리가 좋아서인지, 늦은 저녁의 도심과는 달리 선선했습니다.

날은 어두웠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차라리 얄궂었습니다.

 

파병철회를 위해 단식 중이신 김재복 수사님을 먼저 만나뵜습니다.

아직은, 담배냄새가 좋다고, 막걸리 생각이 난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십니다.

혈압을 재고 맥박도 짚어보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지율 스님께서 벌써 40일 넘게 단식 중이신데도

한사코 진료를 받지 않으시겠다셔서 수사님을 먼저 뵜던 것입니다.

 

지율 스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이내 혈압 한번 재보자며 팔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나누다가 결국 혈당도 재보자며 손을 내미셨습니다.

 

아직은,

건강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신 듯했습니다.

물론 혈압도 낮고 소변량도 적어졌고 언제 갑자기 악화될지 모릅니다.

아마 스님의 간절한 소망이 스러지는 몸을 일으켜세우는 마지막 며칠 중의 하루인지도 모릅니다.

괜찮다고 안심시켜드릴 수도 없고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릴 수도 없습니다.

그냥, 결국, 제가 마음놓자고 다녀온 셈인가요?

 

돌아오는 버스에서 가만히 돌아보았습니다.

도롱뇽 소송인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참신한 기획이다,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

뭐 이런 생각밖에 못해보았더군요.

고속도로가 이 땅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내가 속도를 내는 것인지, 속도가 나를 내모는 것인지 모를 세상에

고속철이 산을 뚫고 지나가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을까

하며 지켜보는 자,가 내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애완동물을 제 새끼인 양 아끼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마음으로

도롱뇽을 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마주앉은 스님의 눈은

연민의 서글픈 눈이 아니었습니다.

생존의 절박함을 담은 단호한 눈이었습니다.

도롱뇽이 소송을 한다고, 도롱뇽밖에 머릿속에 담지 못했던 내가 부족했습니다.

도롱뇽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도롱뇽과 친구가 되는 싸움이었던 것을...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행렬에 짜증을 내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노동강도를 강화하며 노동자들을 죽이는 자본에 불만을 제기하고

말보다는 무력을 앞세우는 전쟁에 치를 떨면서도

속도를 위해 나무와 풀꽃과 도롱뇽쯤은 밟아버리는 현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네요. 

 

스님께서 열흘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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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0 22:10 2004/08/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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