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전쟁보다 쉽다

여러분, 평화가 전쟁보다 쉽다는 것을 모르나요?

 

극중 류시스트라테(류씨) 역을 맡은 배우의 연습장면이다. 

연극 '평화씨'는 이 질문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작은 소통의 시도이다.

 

극은 한 아파트 단지의 주부들이 지하실에 모여

'류시스트라테' 공연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과

연습장면을 교차시키면서 평화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극중 여성들은 이름/자리를 얻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녀들은 새댁이거나 용이 엄마이거나 801호 아줌마이거나, 그렇다.

그녀들은 '오늘 의회에서 평화협정을 맺었나요?'라는 질문에

'계집이 그딴 거 알아서 뭐해?'라는 핀잔밖에 듣지 못하는 존재다.

또한 그녀들이 사는 사회는

아파트 지하실조차 마음놓고 사용할 수 없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이고

공권력의 관리와 감시로 연극연습조차 보고해야 하는 사회이며

남성이 없는 동안만 여성들과, 여성으로서 만날 수 있는 사회다.

 

그런 그녀들은 무대에서나마 평화협정을 이루어내는 소중한 씨앗이 된다.

그렇게 그녀들은 이름/자리를 얻고 세상을 바꾼다.

 

다양한 인물들을 소화시켜내는 배우들의 노력과

끊임없는 애드립(그래서 가끔은 피곤하기도 한)이 주는 웃음이 시원한 연극이다.

정신없이 웃게 만들면서도 '평화'라는 문제의식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일 듯하다.

 

여성들은 단지 그것이 여성적이기 때문에,

혹은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없는 일상을 강요받는 이들이기 때문에

평화를 원한다.

국익이다/아니다, 안전하다/그렇지 않다, 종속적이다/자주적이다 등등.

파병을 철회시키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말들이 너무나 많다.

평화를 원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인지

현실의 투쟁에서 별다른 의미를 얻지 못한다.

너무 맑고 투명해서 잡을 수 없는 무엇,

기억 속에서만, 상상 속에서만 구성될 수 있는, 잊어버린 지 오래된 미래.

 

하지만 파병철회를 위해서든, 파병철회를 통해서든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할, 처음이자 가장 나중의 무엇이 평화이지는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김선일씨의 죽음만큼 김주익 열사, 배달호 열사의 죽음이 기억되는 세상,

외국인노동자도, 이주노동자도 아닌, 그냥 노동자로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

가난한 것이 죄가 아니라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를 벌할 수 있는 세상,

성적 지향도, 장애도, 학력도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그저 사람이라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

그리고 풀꽃들과 도롱뇽도 잊지 않는 세상,

일 테니까...

 

평화는 전쟁보다 쉽지 않다.

평화는

지랄맞은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을,

첫사랑의 기억과 같은 설레임을,

평화롭지 못한 일상에 아파할 수 있는 예민함을,

그리고 간절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평화가 전쟁보다 아름답다면

우리는 그렇게 싸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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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5 16:13 2004/08/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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