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참 좋다. 다른 "궁"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들이 숨어있는 공간이다. 아늑한 느낌만으로도 다른 "궁"과 비교할 수 없는 순위를 매길 만하다. 관람시간을 정해놓고 안내원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아늑함이 그 덕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창덕궁 앞을 지나다가 자유관람을 시작한다는 공지를 봤다. 매주 목요일은 자유관람이라고. 우와. 월차휴가 한번 내야겠네... 그런데 자유관람 관람료가 자그만치 만오천원이다. 에헤...

 

이용을 제한하기 위해 비용을 높이는 것은 참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 중에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본인부담 부과처럼 목적 자체가 동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급권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다는 문제인식이나 재정절감을 위해 끼니 걱정만으로도 삶이 팍팍한 사람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물려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쳇, 저리가라. 하지만 창덕궁을 아늑하게 보존하기 위해 자유관람을 제한하는 것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왜 돈이냔 말이다.

 

가난하다고 창덕궁을 모르겠는가. 헛. 창덕궁에 대한 애정을 만오천원 정도의 관람료를 마련하는 정성으로 증명하라는 발상이라면 창덕궁 지척에 있는 돈의동 쪽방이라도 한번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끼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껴서 더욱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관람객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만들어라.

 

창덕궁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들을 보고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먼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창덕궁을 지어올릴 때 대들보를 올리고 기와를 쌓았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 창덕궁 자유관람을 하고 나서 먼지가 쌓인 구들과 마루를 한 시간 이상 닦을 수 있는 사람, 이런 특별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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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19:37 2007/04/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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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zrael 2007/04/25 23: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별로 볼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만오천원이라니..헉!!
    그냥 창경궁으로 가요~

  2. 미류 2007/04/27 14: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래도 창경궁이랑 창덕궁은 정말 다른데... 자유관람은 포기하더라도 창경궁에 더 가고 싶어요. ^^;

  3. 지나가다 2010/02/03 21: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관람객을 선택하는 그 특별한 기준, 감동이에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저도 창덕궁을 참 좋아하거든요. ^^

  4. 미류 2010/02/04 22: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요즘도 계속 이런 것 같던데, 가본지 오래돼서... 정말 이렇게 되면 좋겠죠? ^^

  5. 비밀방문자 2010/02/06 17: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미류 2010/02/06 19:56 고유주소 고치기

      아, 반가워요~ 글쓰기가 참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공감해주는 한 사람을 만나면 참 행복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가끔 놀러오세요. 오며가며 지나갈 때 사무실도 한 번 들러보고요~ 공감! 나눠요~ ^^

  6. 영진 2010/02/07 16: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대학원 수료하고 지금 논문쓰고 있어요. 네, 그럴게요. 공감 나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