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달이다. 12월 1일 때문이다. 그날은 시대의 악법이라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날이고 유엔이 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기도 하고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주관하는 평화 수감자의 날이기도 하다. 이 주제들은 우연히도 1, 2, 3세대 인권이라 불리는 시민·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연대의 권리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게다가 올해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지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12월의 묵직함이 남다르다. 그래서일까. 인권의 시선으로 둘러보는 한국사회는 참담할 지경이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사라질 때가 한참 지나고도 사라지지 못하는 국가보안법은 어떤 ‘의지’를 표상하는 듯도 한데 이명박 정권은 그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방송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거침이 없고 사이버모욕죄와 같은 황당한 발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압하려 든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경찰의 말 한 마디로도 거부될 수 있는 신고제에 붙들려 있고 개인정보는 마치 처음부터 국가의 것이었던 양 차곡차곡 수집되고 있다. 정부 여당의 인권의식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 바닥도 없는 거다.

 

그런 이들이 오매불망 통과시키려는 법들이 있는데 국정원법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테러방지법·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비밀보호법 제정안이 그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통과되면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법들이다. 오로지 권력의 자유만 보장될 뿐,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는 외침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한국의 HIV/AIDS 감염인들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각종 편견과 낙인이 덧씌워져 오랜 시간 동안 차별받아온 그/녀들이 던진 질문은 ‘약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가’다. 제약회사는 감염인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가격을 치료제에 매기고 약값을 낮추라고 요구하면 약을 아예 공급하지 않는다.

 

같은 질문을 인권의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보자. 집은 누구를 위해 지어지며 교육은 누구를 위해 이루어지며 물과 에너지는 누구를 위해 생산되는가. 임대료 때문에 생계비를 줄이면서도 2년마다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들이 줄어들지 않는데 한쪽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간다. 교육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일제고사 부활이나 국제중 설립의 흐름 속에 정작 어린이·청소년들은 배움에 목말라한다. 1등만을 가려내는 경쟁 구도에서 자신의 꿈을 가꿀 기회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의료보험과 물, 에너지의 민영화·사유화 역시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자본에 제물로 바치려는 시도들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총체적인 인권 박탈의 상황을 초래한다. 

 

평화 수감자의 날도 무안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위헌 판정을 받은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 시도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얼마나 ‘신성한’ 곳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다녀온 사람에게는 이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형벌을 부여하는 사회에 도대체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성찰이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북인권법 제정 시도, 대북 ‘삐라’ 살포 등으로 이어지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대결만이 대안이라는 듯 한반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인권선언은 기념될 수만은 없다. 다시 인권‘선언’이 필요하다. 중세의 억압을 거부한 인민들은 저마다의 권리를 선언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읍소하거나 무엇을 해주십사고 청원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왕이나 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밝히고 싸울 때 얻어지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스스로 ‘선언’했다. 그때 이미 중세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전 국가의 이름으로 약속된 세계인권선언이 국가에 의해 버려지는 현실은, 인민들의 선언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선언이 있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2008인권선언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밝힌 우리의 권리들을 모으고 다시 세우는 불씨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고, 평화롭게 평등하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어 얼어붙은 세상은 녹기 시작한다. 당신이 함께 해야 할 때다.

 

 

(고대 학보사에 보낸 글)

 

12월 10일 청계광장에서 많이들 만나면 좋겠다. 그렇게 춥지는 않대서 다행.

오후 4시 한마당, 저녁 7시부터 촛불문화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12/07 09:19 2008/12/07 09:19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aumilieu/trackback/60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