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로 안전해지는 것은 누구인가

 

 

길을 가는데 편의점에서 내건 텔레비전 화면에, 전자발찌 소급입법 추진 합의, 라는 뉴스가 나온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8차선 대로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문득 전자발찌 생각이 났다.

맞은편에는 십수 명의 남성들이 있었다. 대개는 정장이나 코트를 걸친 차림새였고 가벼운 점퍼 차림도 있었다. 얼굴 생김새나 머리 모양도 각양각색. 그 남성들 중 누군가가 성폭력 재범 경력이 있고 전자발찌 착용 조건에 해당해 바지 안쪽에 발찌를 차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나는 살아가는 동안 '사건'이 됨직한(현재 수준에서 형사처벌 가능한, 즉 일상에서의 숱한 성폭력은 일단 차치하고) 성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성폭력을 당한다면, 나는 분명히 그 새끼를 잡아서 처벌하고 싶을 테고, 정말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할 때까지 용서하지 않고 싶을 테다. 하지만 나를 피해자로 드러내고 그 과정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신고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했기 때문',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신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주위 친구들의 도움과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10%에 못 미친다는 신고율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마 그 가해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85%라, 피고소인을 지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15%인 모르는 사람인 경우에는, 경찰이 어떻게든 그 가해자를 찾아내야 한다. 초범이라면, 경찰의 열정을 믿는 수밖에 없겠으나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여성의 성폭력 신고에 경찰이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는 모르겠다. 고소인 조사하는 동안 괴롭히지만 않아도 고마운 세상이니. 그러나 혹시 재범인 경우, 강간의 동종 재범율은 14% 정도(대검찰청, 전체 범죄의 동종 재범율보다 15~20% 낮다)가 되니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람들이 사건 발생 시각 어느 장소에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요긴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잡히기만 한다면야, 전자발찌가 고맙기까지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누구로부터도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즉 사건을 예방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과연 안전해지는가.

이때 문득, 나와 같은 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역시나 십수 명의 남성들이 있었다. 내가 맞은 편의 남성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때, 왠지 나와 같은 시선으로 맞은 편의 남성들을 바라볼 것만 같다고 느껴졌던 이들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불안해 하며 맞은 편의 남성들을 볼 때, 이들은 '난 아니야'라며 안도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전자발찌로 안전해지는 것은 바로 전자발찌를 차지 않은 모든 남성들이다.

돈이든 권력이든 관계든 여성이 신고할 수 없도록 할 '능력'이 있는 남성들,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일 뿐이라는 오래된 훈육과 관습에 세뇌되어 과감해지는 남성들, 그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동안, 그들은 전자발찌를 차지 않음으로써 안전해진다. 그래도 전자발찌인가?

나는 형벌의 하나로써, 또는 재범 발생에 대한 감시 방법으로써 전자발찌 자체를 반대하지는 못한다. 물론 몇 차례의 큰 사건들을 계기로 추진되어 이제는 더욱 폭넓게 확장될 뿐더러 소급적용이라는 황당한(이명박이 그리도 좋아하는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전자발찌 자체가 사회적 맥락에서 떨어져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특정 기술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공포를 부추기며 사회를 통제하는 정치다. 하지만 적절한 목표 아래, 적절한 절차를 거쳐,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전자발찌로 절대 내가 안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통계는 2008년 여성부 조사 참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11 15:22 2010/03/11 15:22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aumilieu/trackback/68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ong 2010/03/12 10:3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안전해지는 것은 '남성'들이다. 안전의 감각이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문구인 것 같애요.

  2. 들사람 2010/03/12 18: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안전해지는 이들/것은 정작 따로 있다.. 이번 김길태 사건은 정말이지, 무언가 열심히 부산 떨며 안 하는 게 없다는 식의 '스펙터클'을 통해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의지와 사태파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발찌를 채우기로 치면, 룸싸롱 등을 통한 성구매-상납 "문화"가 습관성 질환을 방불케 할 일상이 돼 있을 간부급 관료-공무원-기업가들부터 이중삼중으로 채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도 싶고. 지들이야 김길태란 피의자 따위완 '격'이 다르다며 물론 발끈하겠지만, 한마디로 *까는 소린 거고.. 쩝.;

    • 미류 2010/03/15 11:06 고유주소 고치기

      그러니 이럴 때마다 전자발찌 들먹이며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야말로 자기의 안전 본능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어요.

  3. oo 2010/03/12 22: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서글픈 현실..

  4. 미류 2010/03/15 11: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서글프지요. 이런 걸 보면서도, 결국 다시 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네요...

  5. 지나가다 2010/03/19 09: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보호대상이라는 '연약한 여성'과 룸쌀롱에서 만지작거리는 여성은 애초에 그'격'이 다른 인격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서 그런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