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기억 붙들기

유배문화공원에서 본, 그녀의 이름과 죄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서, 더 늦기 전에 기록이라도 남기기로. 하지만 정말 이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으앙. 

 

서울에서 새벽 2시경 출발. 목포여객터미널에서 7시 50분(?)에 출발하는 배 타고 홍도로. 깃대봉. 정상 부근 나무데크 공사 중이라 출입금지 중이었지만 그냥 들어감. 일하시는 분들이 엄청 싫어했음. 죄송했지만 다시 또 오기 어려운 걸 그냥 돌아서기가 너무 아쉬웠음. 내려와서 오후에 뜨는 유람선 탐. 가다가 초입, 남문바위 근처에서 무슨 일인지 배가 멎음. 다른 배로 옮겨타서 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선상에서 파는 회 한 접시 후루룩. 홍도는 동네가 두 개인 작은 섬인데 그 두 마을을 육상으로 가려면 깃대봉을 넘어야 함. 보통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섬을 돌아 다른 마을로 간다고 함. 섬 안에 공사를 하는 곳이 꽤 있었음. 평지가 거의 없는 섬이었음. 섬 이름처럼 정말 붉은 빛깔이 도는 섬. 섬 주위의 여러 바위들은, 아마 오래 전부터 이름이 붙은 것들과, 유람선관광을 상품화하면서 붙인 이름들이 섞여 있는 듯. 섬과 바위들을 보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흑산도로 나오는 배를 타고 흑산도 도착. 오후 너다섯 시쯤 됐던 듯. 예리항으로 들어감. 항구가 있는 마을에서 묵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진리까지 걸어감. 가는 길에 흑산도 성당을 둘러봄. 사람이 없는지 성당이나 관사가 모두 잠겨있었음. 고요하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성당. 천주교가 일찍 시작된 섬인 듯. 중학교까지 운영하면서 무상급식 등을 했던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 진리에서 민박집 간판이 붙은 곳들을 찾았으나 모두들 민박 안 하신다고. 우연히 한 집을 발견했는데(실비아?) 이미 차있었음. 다시 마을을 돌다가 도저히 못 찾고, 그 집으로 돌아가, 동네에 민박하시는 분이 또 없겠냐고 물었더니, 우리를 직접 데리고 가서 민박을 시켜줌. 아주머니는, 시누가 데려온 사람들이니 재워줘야지 하면서 집을 내줌. 석유로 보일러를 돌리니 하룻밤 돈을 받아도 기름값이 안 나온다는 말. 짐을 부리고 모자를 벗었더니 아주머니가 놀라셔서, 어디 아프냐고 몇 번 물어보심. 아니라고 했지만 그냥 아픈 거라고 생각하신 듯. 아주머니가 아구찜이 맛있다고 추천한 진도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음. 예리로 돌아가는데 알려주신 지름길로 가니 훨씬 가까움. 식당 가는 길에 하나로마트 들러서 다음날 필요한 것들을 조금 삼. 갑오징어 말린 게 있어서 하나 샀음. 아구찜은 진짜 맛있었음. 하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서 그랬을지도. 아주머니가 참 좋으셨음. 

 

아침 일찍 일어나 걷기 시작. 진리마을에서 조금만 걸으면 초령목자생지와 진리당산. 걷고 싶은 길, 뭐 그런 분위기로 정돈해놓은 곳인데 숲이 울창한 채로 남아있어서 좋았음. 다음 마을 읍동. 석등이 있고, 오래된 큰 나무가 있는 곳. 무심사지. 할머니가 쑥을 캐고 계셨고, 여행 왔다고 와니 잘 다니라고 손주 걱정하듯 인사를 하심. 열두고개를 걸어 상라봉에 오름. 차도를 걷는 게 그리 즐겁지는 않은데, 그리 길지 않았고 구불구불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라 묘하게 기분이 좋았음. 동백나무가 진짜 많은 섬. 대부분 상록수라 겨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산자락을 끼고 돌아 마리. 지도바위 보이고 다시 내려가면 비리. 간첩동굴. 1969년 간첩이 발견된 곳. 호기심에 아래로 내려가 봄. 약간 위험하기는 하지만 내려갈 수 있음. 정말 숨어 있기 좋은 곳, 아래에서 보면 절벽을 타고 오르는 나무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절경임. 신안군문화관광해설가협회는 반공교육장이라고 ㅡ,ㅡ;; 

비리에서 곤촌리로 넘어가는 길은 길다. 일주도로를 따라 벽화가 있음.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음. 그리 예쁘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보면서 걷는 재미가 있음. 약수터에서 물 한 잔 마시고, 장도를 보면서 걷고, 곤촌리. 흑산도는 예리와 진리 사이를 제외하면 평지로 걷는 길이 거의 없는 섬. 바닷가 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올랐다가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가의 반복. 심리는 쾌 큰 마을.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초등학교 터가 남아있음. 엄청 오래된 무슨 나무가 있었는데. 그 앞에 육영수가 흑산도 아이들을 청와대로 초대했다는, 군함에 태워서, 얘기와 기념사진이 있음. 그 중에 심리에 사는 할아버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 

남쪽의 사리. 정약전의 서당이 있고, 유배문화공원을 막 만든 듯했음. 흑산도에 유배왔던 사람들 전시한 거랑 자산어보에 기록되어 있다는 물고기들 보면서 마을 구경. 사리에서 소사리도 좀 멀어. 산 위로 높이 나 있는 찻길을 따라 걸음. 소사리 샛개해수욕장. 고운 모래. 천촌리는 금방. 최익현 비가 있는 곳. 그 다음 청촌리. 버스 탈까 말까 고민했던 곳. 결국 걸어보기로. 예리로 넘어가는 길, 들어가는 입구쯤, 뒷편의 바다가 참 멋있었음. 해 뜰 때 가보면 좋을 듯. 다시 진도식당으로 가서 저녁 먹음. 홍어찜 반만 달라고 부탁. 아주머니가 세 단계의 홍어를 모두 꺼내서 쪄주심. 직접 담근 막걸리도 파심. 손님이 다 가서, 아주머니도 한 잔 드림. 혼자 장사하시는데, 맛집 출연 제의가 엄청 많았지만, 손님들 많아지면 정성껏 준비하기가 어렵다며 계속 거절하신다 함. 음식이 아주 맛있다. 

진리 민박집으로 돌아가니, 아주머니가 많이 걱정하셨더라. 머리를 삭발했더니 애꿎은 분 괜한 걱정을 시켰다. 민박집 마루에 있는 완전 큰 평면 텔레비전으로 코미디 빅리그 봄. 

 

아침에 예리 마을을 마저 돌고 방파제 나갔다가 홍어탕 먹고 목포로 나옴. 사리에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솟대, 누가 만든 건지 물어봐서 가르쳐주셨던 아저씨를 배에서 만남. 인상이 좋으셨는데, 먼저 인사 건네시는 걸 내가 못 봐서 죄송했음. 점심은 낙지. 장 보고 장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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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6 13:39 2012/04/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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