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자축

2008/10/11 09:13 생활감상문

<루마니아식 블라우스>, 앙리 마티스, 1940.

 

"살아 있는 모든 날을 축복하라"는 말, 한순간도 허비하지 말라는 말, 뭐 그런 말에 이끌린 지 적어도 3년은 되었으니... 생일과 생일 아닌 날을 구분한다면 언행일치가 안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도 떠받들려 키워진 온실 속의 화초(?)인지라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 있으면 기념하는 게 좋다.

어쩌면 별다른 이벤트가 없던 우리 집안에서 생일만큼은 이모도 오시고, 친구도 불러 맛있는 것도 해먹고, <빨간머리앤> 흉내내며 초대장 보내서 티파티도 하고, 맛있는 음식 먹은 다음엔 말뚝박기도 하고... 나름 그런 것 다 해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일이나 기념일 따지는 걸 촌스럽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인이 된 다음에도 졸라서 선물도 받아내고, 매일 마시는 술이지만 기념으로 모여 마셔 주기도 하고... 내 생일 챙겨달라고 안 챙겨 줘도 된다는 지인 생인들 앞장서서 사람들 모아 챙겨 주기도 하고 말이다(별반 어렵지 않은 일이던 게 어째 나랑 친한 사람들은 생일이 비슷해서 1월 하순~2월 초, 아니면 8월 초 등에 몰려 있다. 천칭자리가 원채 물병자리와 사자자리를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生日을 '태어난 날'이 아니라 '모든 날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의 '살아 있는 날'로 생각하면... 뭐 그리 형용모순은 아니니까... 축하하기로 한다. 영아사망율이 높던 시절에 백일, 돌을 크게 기념한 것은 '얘가 이제 곧 죽을 위험은 벗어낫구나.' 뭐 이런 거겠지만.... 갓난애가 아닌데도 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살아 있는 날'을 기념하는 일은, '살아 있는 나를' 축복하는 일인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라고.

 

그런데 직장 다니고 친구들과 제각각 생활이 달라지고, 집에서도 독립해서 식구들과도 생일 기념 행사를 주말에 미리 하거나... 뭐 그리 되자... 일종의 생일 주간처럼... 최소 세 그룹(집, H양+누군가들, 회사)과 생일파티를 다 제각각 하기는 하는데... 정작 생일날에는 혼자 지내게 되는 일이 생겨 버렸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기도 하고, 일을 싸가지고 와서 집에서 혼자 보내기도 하고... 초보 편집자 시절에 그러니까... 좀 우울해져서... 서른 살 생일부터는... 정책을 조금 달리하기로 했다. 생일에는 가장 나답게 보내는 것이다.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 평소에 시간에 좇겨서 못 하는 일을 꼭 한 가지 이상 하는 것이다. 못해 본 일을 해본다던지. 우리 달님처럼 매번 새로 태어나는 일은 못하지만, 생일을 맞이하여 전에 했던 대로 전에 만난 사람과 똑같은 생일 축하를 받기만 하는 일 대신... 뭔가 안 해본 일을 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쯤 하는 것.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하나 키우는 일이 되니까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 되는 셈이다(물론 물적으로도 나한테 선물을 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엄마가 보내주신 맛있는 미역국으로 아침식사 하고, 요가 가서 몸과 마음의 평안을 내게 선물한 다음, '처음으로' 이사 간 필름포럼 가서 영화 보고, 미장원 가서 오랜만에 파마하고, 생일엔 혼자 지낸다는 원칙에 매달릴 것도 없이... 오늘 함께하기로 한 H양과 [뜻하지 않게 같이 놀아준다는] Y양 커플과 저녁 먹고... 내키면... 간만에 [한동안 갈 사람 없다고 못 갔는데... 정 안 되면 혼자라도] 춤을 추러 갈 계획이다. 계획이 너무 많으면 이지러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상관 없이 오늘 하루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즐기는 일을 아주 잘해서... 매일매일을 그렇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ㅎㅎㅎ 

 

 

보탬/

오늘 필름포럼에 간 것은 <해변의 폴린느>를 보러 간 것인데... 영화 속에서... 내가 저 위에 놓은 마티스 그림이 벽에 포스터로 걸려 있는 장면이 나왔다. 아니,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사실은 마티스의 <붉은 마드라스 쓴 여인>을 걸고 싶었으나... 전에 미니홈피에서 써먹은 적이 있어서.. 아침에 글 전부 쓴 다음에... 마티스 그림 새로 보면서... 내 기분에 어울린다 싶은 그림을 새로이 고른 것인데... 우연이 필연 같고, 로메르와 오늘 제대로 통한 기분이어서 더욱 상큼했다. 물론 영화도 재미있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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