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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19회


1


볼일이 있어서 서귀포로 가야하는데 마침 아는 분의 따님이 서귀포로 가는 길이라고 그래서 그분 차를 얻어타고 가게 됐습니다.
20대 중반인 그분은 최근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창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헉, 연세라는 표현은 좀... 내가 그렇게 올드해보여요?”
“아~ 올드해보여서 그런건 아니고요. 그럼 다시 물을께요. 아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 내가 몇 살이더라... 오래 전에 마흔을 넘긴 기억은 있는데 그후로 나이를 세지 않아서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아, 그러세요? 어~ 제가 혹시 나이를 여쭤본게 실례였나요?”
“아니 아니요, 그건 아니고. 제가 정말로 마흔 이후부터는 나이를 세지 않아요. 지금 나이를 센다는 게 죽음이랑 얼마나 가까워지나 세는 것 같기도 하고, ‘야, 너 몇 살이야’하면서 서열 따지는 것도 싫고 그래서...”
“아, 그러세요? 그럼, 조금 이상한 질문, 해도 되나요?”
“예.”
“아저씨는 최소한 사십년은 넘게 살아오셨는데 그 인생, 순식간이었나요?”
“어... 글쎄...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물어봐도돼요?”
“열두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어요. 인생은 정말 순식간이니 1분 1초를 아끼며 되도록 좋은 기분으로 살라고요.”
“좋은 기분이라...”
“네, 좋은 기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래요.”
“인생이 순식간인건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좋은 기분으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은 좋네요.”
“한가지 더, 이상한 질문, 해도 되나요?”
“하하하, 조금 긴장되네.”
“아, 제 얘기가 불편하세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너무 의외의 질문이어서... 아니 뭐, 그래도 얘기는 재미있으니까. 해보세요.”
“아저씨는 어떤 때 좋은 기분이 드시나요?”
“음... 사랑이랑 산책할 때, 혼자 술을 먹는데 술맛이 좋을 때, 아침에 명상과 운동을 하고나서 개운함이 몸과 마음에 느껴질 때, 조금 힘든 일을 하고나서 쉴 때, 뭐 대강 그럴 때 기분이 좋아지죠. 그럼 그쪽은 어떤 때 좋은 기분이 들어요?”
“으음, 저도 많은데, 엄마한테 배운 건 타인을 기쁘게 했을 때 제일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아... 그렇죠.”


그후로 대화는 계속 이어졌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그분의 마지막 얘기가 계속 맴돌더군요.
잔잔한 호수에 누가 자그마한 돌을 하나 던져서 잔물결이 살랑살랑 일렁이는데 그 물결 위에 떠있는 종이배처럼 가볍게 출렁이는 기분이랄까요.

 

(이 얘기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소설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에서 인용하고 제가 각색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2


읽는 라디오를 오래 진행해오면서 느끼는 변화 중의 하나는 방송내용이 밝아졌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읽는 라디오를 시작하게된 것은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였습니다.
빌어먹을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 하는 얘기들를 수없이 해댔습니다.
‘제발 나 좀 봐달라’고 불쌍한 척, 절박한 척, 강인한 척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발버둥을 쳤지요.
하지만 내가 별지랄을 다 떨어도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군요.


그렇게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지만
이 방송에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제 얘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은 저뿐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이 방송을 저의 독백이 되었고
제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제 안의 제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안의 제가 하는 얘기에 귀기울이게 됐습니다.


제 안의 제가 하는 얘기라고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좌충우돌하면서 요동치는 마음이 얼마나 걱정스러운지, 불쑬불쑥 튀어나와서 괴롭히는 과거의 그림자가 얼마나 싫은지 등의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맞장구도 쳐주고, 어줍잖은 위로도 하고, 할말이 없을 때는 가만히 듣고만 있기도 하고, 즐거울 때는 살며시 웃어도 봤습니다.
그렇게 점점 제 안의 저를 달래기도 하고 보듬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면서 지내다보니 서로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게 됐죠.


세상을 향해 얘기를 쏟아내는 것보다
누군가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이
저 자신을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줬습니다.
제 얘기를 꾸준히 들어준 제 안의 저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꾸 제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멀어지는 게 편안하고 좋거든요.
이렇게 달콤한 안식처에서 지내다보면 사람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도 느껴집니다.
그 달콤함을 깨기 싫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가족들이 그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저만의 달콤함이 좋기만해서 저는 좀처럼 이곳을 벗어나려하지 않습니다.
음, 이 문제가 요즘 고민입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널찍한 공간에 공기도 따듯하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소파에 앉아 골라놓은 책을 읽고 있는데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더군요.


차가운 기온 속에 거의 매일 흐린 날만 이어지는 요즘이어서
발끝으로 다가오는 햇살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햇살의 기운을 살며시 느끼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예년보다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춥고 우중충한 겨울의 한복판에서
온기를 잠시 느껴봅니다.

 


(David Darling의 ‘Bach's Per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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