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다시! 2회 – 명상의 이유

 

 

 

1

 

농사를 짓다보면 상인들을 접할 일이 왕왕 있습니다.

애써 키워놓은 것들을

좋은 가격에 팔아서

주변에 조금씩 인심을 쓰는 맛이

농사짓는 재미이기도 하기에

상인들을 만날 때면 살짝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상인들은

선한 인상에

서글서글하게 사람을 대하고

가격을 놓고 약간 밀고 당기기를 하지만

큰 무리 없이 계약이 이뤄집니다.

 

즐겁게 수확을 해서 농산물을 상인에게 넘기면

귀신같이 무게가 살짝 모자란 것을 찾아내 흠을 잡으려 하고

품질이 좋지 않다면서 계약된 가격보다 낮추려고 하고

대금결제를 이런저런 이유들로 며칠씩 심지어는 몇 달씩 미루며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 오고가는 상황이지만 단돈 얼마라도 깎아보려고 온갖 수를 다 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고 장비를 설치했는데 저질부품을 사용한 것이 들통 나서 사과를 한 경우도 있고

신품종을 계약재배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노예계약서를 들이밀기도 하고

부부가 같이 하우스로 찾아와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공짜로 얻어갈 것이 없나 하고 꼼꼼히 살펴보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상인들도 많겠죠.

하지만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와 8년 동안 만나본 상인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순박한 시골농부에게서 단돈 얼마라도 더 뽑아내려고 잔머리 굴리는 자들뿐이었습니다.

 

제가 20대 후반에 노동운동단체에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이런저런 단체들과 회의할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곳에 노점상단체와 철거민단체도 있었습니다.

철거민단체 간부들은 무뚝뚝하고 조금 음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노점상단체 간부들은 사근사근하고 말도 잘 받아줘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속한 단체의 주요간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거나 수배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신없이 사건에 대응하면서 뒷수습을 하는 와중에 돈이 들어갈 일이 많아서 집회에서 모금함을 들고 다녔습니다.

마침 그날 집회는 빈민집회에서 평소에 안면이 있는 분들이 많았죠.

모금함을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데

저랑 친하지 않았던 철거민단체 간부들은 선선히 지갑을 열어 모금함에 돈을 넣으면서 ‘고생하라’고 격려도 해주셨지만

저랑 친하게 지냈던 노점상단체 간부들은 제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더군요.

 

제 경험들이 이렇게만 쌓이고 있으니

상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겠죠.

더 오래 전 조선시대 말기에

농민들이 총칼을 들고 일어나 타락한 권력과 맞서 싸우던 동학농민혁명 때에도

보부상들이 정권의 앞잡이 돼서 농민군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데...

 

 

2

 

마을에서 유일하게 연락을 하며 지내시는 분이 있는데

암세포가 발견 되서 항암을 시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주 출신이 아닌 그분은 개 두 마리를 기르며 홀로 살아가고 계신데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나들면서 홀로 힘든 과정을 견뎌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버지의 암 투병 과정을 지켜봤던 터라

항암치료가 주는 힘겨움도 힘겨움이지만

매번 서울로 나들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딱히 도울 일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텃밭에 먹을 것이 있으면 조금씩 나눠먹는 사이 정도로 지내고 있어서

오지랖 넓게 다가서는 것도 부담스러운 참견이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아버지의 경험과는 또 다른 경우일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픈 경험으로 이런저런 조언이나 도움을 권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겠다 싶었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다가 그분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외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죠.

 

그래도 마음이 쓰여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고는

텃밭에 채소들이 많이 올라왔으니 필요하면 뽑아가라고 했더니

몸이 많이 힘들어서 나중에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에게 위로의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3

 

새벽에 일어나면 명상을 합니다.

짧으면 10분에서 길면 1시간 정도씩

매일 거르지 않고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래 명상이라는 것이

머릿속 상념들을 다 비우고 무념무상의 경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 수준은 욕심도 못 내고

그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눕거나 앉아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상념들이 수시로 일어나는데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자기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에도 편안한 기운이 퍼지지요.

 

하지만 짧은 명상을 마치고

일상을 시작하게 되면

머릿속 상념들은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하고

편안한 기운은 곧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형태로 세상과 접하며 움직이다보면

머릿속 상념들은 초스피드로 날아다니고

제 마음속에는 부정적 에너지로 가득차곤 하지요.

 

그 짧은 명상의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도 않고

제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 지도 모르겠지만

습관처럼 일어나자마자 마음의 청소를 합니다.

마음의 먼지들이 쌓여 눌러 붙지만 않아도

제 마음속은 조금 살만한 공간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방송을 마치며 들려드릴 음악은

제가 명상을 할 때 가끔 듣는 곡으로 골라봤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마음속이 환해지면서 편안한 기운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30분가량 되는 긴 곡이지만

여유가 되면 한 번 들어보세요.

Mei-lan의 ‘Self Love’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