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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어린이학교를 떠나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신입이사진 교육에 참석하느라 산어린이학교 졸업식에 참석을 하지 못해서 졸업생들에게 축하도 하고, 산어린이학교 방과 후 교사를 그만 둔다는 인사도 할 겸 이렇게 마음을 전합니다.

 

산어린이학교 방과 후 교사를 시작하던 2010년 어느 날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나 문주언니 동생인데 내 이름이 뭔지 알아? 당돌한 아이의 질문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깡통이 군대생활 중 고참들에게 가장 많이 맞았던 이유가 사람 이름과 암기 사항을 잘 외우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이름을 학년 별로 정리 된 프린트 물을 들고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있었는데, 머뭇거리던 내게 자기 이름은 도혜라며 다음에 또 물어 볼 것이라며 경고를 한 뒤 자기 갈 길로 가던 도혜.

 

추운 날에도 반팔로 운동장을 누비던 가람, 긴 머리 휘날리던 상윤. 학생회장 선거가 끝난 뒤 한 동안 자신을 따르는 1학년들을 떼어 놓느라 애쓰던 의림. 6학년 2학기가 다가올수록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이 많아졌던 기현, 집에 갈 차비가 없거나 버스를 타고 가기 싫으면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섭외하던 유림.

 

복싱을 배우러 다른 아이들과 버스를 타러 나가던 은석, 방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세연. 드럼을 배우러 광명에 가던 동하,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던 가연,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보던 은빈.

 

깡통이 2년 동안 방과 후 교사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걸었던 이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2011년 1월에 졸업한 수빈, 혜원, 영태, 형준, 상진, 정환의 지지도 깡통에게는 큰 도움이었습니다.

 

얘들아 2년 동안 방과 후 시간에 깡통을 지지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1학년 아이들이 자라 졸업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하경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겪었던 짧은 4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졸업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6년의 시간을 산어린이학교에 몸을 담았던 부모님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깡통은 2012년 산어린학교 방과 후 교사를 그만 두고 열린사회 구로시민회 반상근 활동을 하면서 지역 활동을, 한국입양홍보회를 통해 초중고 ‘반편견입양교육’을 합니다. 혹시 학교 선생님으로 계신 부모님들 중 창체시간에 아이들에게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으신 분은 ‘한국입양홍보회’에 연락해주세요. 보건 복지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강의 신청만 하면 됩니다. 학교에서는 강사 비용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2010년 3월 23일 쓴 ‘산어린이학교와의 만남’이라는 글로 첫 인사를 했던 깡통이 이제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아내인 징검다리가 생활교사로 있기 때문에 안녕이라는 말을 하긴 뭐하지만 깡통이 공식적으로 방과 후 교사의 직에서 물러나기 때문에 안녕이라고 인사드립니다. 2년의 산어린이학교에서 보낸 시간 정말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의 삶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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