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에 의한, 의원을 위한, 의원의 ‘예외 조항’ 수두룩
가족 범위 ‘배우자’로 제한…상임위 무관 민원도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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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원들의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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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5일 국회에 넘어온 ‘김영란법 정부안’은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 등이 공익 목적으로 ‘직접’ 공직자에게 의견을 제안·건의하는 행위만 ‘부정청탁 예외사유’로 규정했다.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 활동 등 공식 업무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나 이익단체의 각종 ‘민원’을 받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뿌리뽑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는 ‘선출직 공무원 등이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도 부정청탁 예외로 집어넣었다. 오경식 강릉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의 취지 중 하나가) 과거처럼 이익단체가 국회의원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례를 막자는 것인데, 국회의원들이 이를 쏙 빠져나갔다”며 “‘공익적 목적’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의원 활동에 대해 ‘공익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 가족 범위가 애초 ‘배우자·자녀·형제자매·생계를 같이하는 며느리·사위 등’에서 ‘배우자’로 대폭 축소된 것도 의원들이 정부안에 손을 댄 결과다. 특히 이 부분은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새누리당은 공직자가 금품을 받은 가족을 신고해야하는 규정을 ‘가족해체법’, ‘가족관계 파괴법’이라고 지칭하며 ‘배우자만 규제’로 국한시켰다. 이대로라면 금품을 받거나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상득씨의 사례는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국회는 ‘공직사회 부패 근절’이라는 법안 실효성을 약화시키면서 대신 이 법안의 규제 대상은 대폭 늘렸다. 공직자 외에 언론인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인을 포함시킨 것이다. 공직과 민간에 대한 구분,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침해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없이 <한국방송>(KBS)과 민간언론사의 업무가 비슷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선 새누리당 안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권성동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이 법의 취지는 공공부문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는 건데, 민간영역까지 넘어간 부분이 있다”며 “의사나 변호사 등의 업무도 기자나 사립학교 교원처럼 공공성을 띠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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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통과된 뒤 이상민 위원장(가운데)이 홍일표 새누리당 간사(왼쪽),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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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김영란법의 유예기간이 1년에서 1년6개월로 연장된 것을 두고서도 뒷말이 나온다. 여야 합의 과정에서 유예기간이 6개월 더 늘어나면서 시행시점이 내년 4월 총선 뒤인 9월로 밀려 현행 19대 의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고, 또 이 법 실행 이후 예상되는 파장 등이 총선에 미칠 영향을 원천배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여야 협상 과정에서) 시행은 1년 뒤, 처벌은 2년 뒤에 하자는 안이 있었지만 그것을 합쳐서 1년6개월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의원은 “(지도부가) ‘내년 총선 때 표를 잃을 수 있다’며 김영란법 처리를 서둘렀는데, (이제 와서) 시행 시기를 내년 총선 이후로 늦춘 건 너무 속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