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마르크스 별이 지다

2015/08/0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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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신념’ 꿋꿋이 지켜낸 지식인의 전형

등록 :2015-08-0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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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행 교수.

 

 

가신이의 발자취 김수행 교수님을 떠나보내며

 

지난 주말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계의 태두이자 진보 학계의 원로이신 김수행 교수님께서 별세하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쳤던 분이기에 갑작스러운 소식이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선이 굵고 진퇴가 분명하며 남에게 폐 끼치기를 싫어했던 성품대로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홀연히 떠나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이별하는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극적인 방식으로 남기고자 하신 것인가?

 

젊은 학자들 한때 연구 대부분 포기
나이들수록 쌓여가던 연구실적 ‘모범’
“현실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이탈”
소련·동유럽·중국·북한 등 ‘경계’
평생 흔들림없던 ‘멋진 학문 인생’

 

김수행 교수님은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의 개척자였다. 분단국가이자 반공냉전국가인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오랜 기간 학문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공식적 학계가 아니라 대학 운동권 학생들의 지하서클 등에서 비밀리에, 그리고 당연히 아마추어적으로 학습되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중요한 경제학 사조이자 현대 지성사의 빠뜨릴 수 없는 유산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일에서 교수님만큼 기여하신 분을 찾기 어렵다.
김수행 교수님은 <자본론>을 완역했고,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대중적 저술과 대학 강의, 그리고 대중 강연 등을 통해 마르크스 경제학의 보급과 대중화에 그 누구보다 많이 기여했다. 또 마르크스 경제학에 입각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수십권의 저서와 역서, 그리고 100편에 육박하는 학술논문이 그분의 중단 없는 학문적 정진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젊은 시절에 연구에 매진하다가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안정되면서 연구에서 멀어져 간 데 반해, 교수님은 나이가 들수록 연구 실적을 더 많이 내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갖는 질문의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소련-동유럽, 중국, 북한 등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 또는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이리라. 이 문제에 대해 김수행 교수님은 초기부터 분명한 시각을 밝혔다. 소련-동구 등의 체제는 마르크스주의의 구현물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중대한 이탈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지향한 미래 사회는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고, 사회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며, 개인 간의 협력과 연대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섰기에 1990년대 초의 소련-동구권 체제 전환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서 신념을 견지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이자 후배로서 오랜 기간 가까이서 지내온 필자가 보기에 김수행 교수님은 매우 소탈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분이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멋진 표현이나 현학적 표현을 멀리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에두르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어법과 톤이 높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인해 전형적인 경상도 ‘상남자’로 보이기 쉬웠겠으나, 사실은 몸매만큼이나 넉넉하게 품이 넓고 따뜻한 인품을 가진 분이었다.
후배나 제자들, 그리고 사회운동가들을 도울 일이 있을 때면, 자상하고 헌신적으로 도우면서도 이런 일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그리고 남의 입을 통해서야 교수님의 미담을 듣게 되는 사례가 많았다. 인간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자적 면모를 보이셨다. 당신과 인연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을 폭넓게 받아들이셨고 이런저런 이유로 당신과 멀어지는 사람들을 붙잡지 않는 ‘쿨’한 분이셨다.
김수행 교수님은 자신의 학문적 시각을 견지하기에는 참으로 험난하고 열악한 현실에서 자기 몫의 운명을 불평 없이 감당하며 본인이 달려가야 할 길을 일직선으로 주파해냈다. 지식인이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켜가기에는 참으로 혹독한 조건을 가진 사회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양심에 따라 인생을 일관하는 지식인의 한 전형을 보였다.
김수행 교수님, 한평생 수고 참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멋진 인생을 사셨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신정완/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성공회대 교내에 오늘부터 분향소
성공회대는 지난달 31일 미국에서 별세한 김수행 석좌교수의 분향소를 운영한다. 향년 73. 서울 항동 교내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설치되는 분향소는 4~7일 오후 2∼9시 열린다. 또 4일 오후 2시 첫 추모예배를 시작으로 매일 오후 7시 추모예배도 하기로 했다. 고인은 2008년부터 이 대학 석좌교수로 재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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