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로는 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다.
세계 열강이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또아리를 죔 이후로 자본주의의 장수 제국주의에 대한 계급사회 대안으로 민족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지나간 물레방아의 물처럼 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세력은 자본가들의 국가주의에 맞설 만큼 충분하게 결의와 조직이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계급투쟁에 대한 국제주의의 단결투쟁에 견줄만큼 다양한 역사적 봉기에서 승리의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봉건시대 전제 왕권과 황제제후와 귀족들간의 투쟁은 시민혁명을 야기했으며 역사에서는 프랑스 혁명이후 파리코뮌을 낳기도 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앞으로의 해방투쟁에서 그들로부터 혁명 전장의 야수성처럼 배울만한 기상을 가지고 있지만 붉은 색깔의 확고부동함이나 과학적 세계해석의 철학적 강령과 이로부터 도출된 전략과 전술이 아직은 부재하다. 제국주의시대를 주도하는 독점자본과 그들의 동맹세력을 지배자로 맞이하여 그들의 전장동맹에 맞서서 투쟁하고 승리를 거둘만한 위인과 영웅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학습의 부재라는 것을 반증한다. 조국의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영웅은 이미 다 죽은 옛날의 봉건영주 장수들의 발자취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의 전면적인 공격과 그들의 제국주의자 정권인 파시즘이 반공의 깃발아래 전세계적인 중상주의 흐름과 그것의 결과인 시장패권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적재산에 광분하여 노동 무산계급을 핍박하고 착취 수탈하는는 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온갖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정권의 안보를 생명줄처럼 여기고 국가들의 폭력기관을 단단히 단속해서 전국적으로 무산계급을 억누르기에 이런 반공세력에 맞서서 싸워온 단체와 당이 반제국주의 깃발을 명확하게 드러나지지 않는다면 투쟁은 때때로 패배로 끝나고 지도적 권위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당 창당과 아울러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한 노동학도병단을 창건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농노해방 반봉건 투쟁의 선도자인 인민주의자처럼 한번의 혁명물결로 끝날 수 있고 인민주의는 전황에서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적으로 보복을 응징하는 것을 최고의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전황을 계급에게 이롭도록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 아니 전혀 바꿀 수 없다. 이는 투쟁전선의 확정을 부르는 선전선동가의 고립성과 조직가 활동가당의 부재 때문이다. 최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전 수상 아베 살해처럼 아무런 승전보의 성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주도권을 쥐어주기를 거부하는 한국의 나로드니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민중속에서 인민을 뒤따르자는 나로드니끼는 인민속으로 들어가 어떤 깃발과 어떤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었는가? 혁명가당이라는 최고의 결사조직과 그들의 민주기지안 민족민주의 투쟁을 만들어냈으며 또는 노동자계급의 민주기지인 공장을 요새화하고자 어떤 선전선동을 펼쳐왔는가? 나로드니끼의 지배적인 사상은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처럼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현실타협 철학과 일치한다. 노동자단체를 저버리고 인민속으로 들어가서 반봉건 혁명을 어떻게 민주주의 혁명으로 바꾸어 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버린 인민의 벗은 인민속의 지도자를 어떻게 계급의 장수로 훈련시켜 노동자군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기본소득을 혁명의 단초로 여기지 않고 최고강령으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러시아혁명의 브나로드운동인 나로드니끼로 규정되어야 한다. 나로드니끼 깃발의 비판적 결론은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인민속으로 들어가는 곧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예속되거나 국짐당 국민의당 애국주의로의 전락 즉 국민군으로의 백의종군일 것이다. 문재인 장수가 민족주의의 대장군이다. 프노동자정부가 스스로 장수가 되려고 하기않고 노동해방 깃발을 버리고 깃발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주의자들의 수하로 국민군의 병졸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이는 국민군들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고 민족주의 단체 처럼 깃발없는 인민주의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같은 타협은 뒤따르는 노동자들과 민중을 투쟁의지를 꺾여 내리고 자본가에 대한 간접적 투항을 불러올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민군에 백의종군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국민군은 소수정예가 원칙이고 반공주의 깃발을 든 반혁명 세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쟁의를 발판삼아 깃발을 들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사회계급의 최하위 층에서 날마다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의 평화가 옥죄여 오고 생계의 전선에 내몰리기에 노동자들은 합법적이든 반합법적이든 투재을 결의해야 한다. 열강에 의한 간섭으로 민족적 단체고립이라는 민족전쟁의 일상화속에서 정세 주도권을 국민군에게 빼앗긴 채 외세의 전쟁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터에서 계급지배 현실의 장벽에 부딪쳐서 자주성을 잃거가고 해방을 빼앗기고 수구세력의 억압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나로드니끼는 민족해방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내일의 꿈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군이 사회적으로 무장면에서 월등히 우세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주의로 주저앉게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대공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근저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만의 조직과 그들만의 장수를 가지고 출중한 군대를 쥐고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김일성장군처럼 사회주의적 투쟁의 조직화로 국제주의적 협력의 성과로서 붉은 장수를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군대와 노동동맹 깃발의 단체가 정세를 이끌고 가게끔 정치선전과 반제국주의 가두투쟁 선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활동가전위에 힘입어 1년중 광복절 단 하루가 승리의 날이 아니라 매월 매주 매일 계급투쟁 전선을 떨쳐일어나 날마다 승리해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펼치고 떨쳐일어나 자신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투쟁속에서 단련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붉은 깃발과 함께 노동자당의 깃발아래 뭉쳐야 하고 매월 매주 매일의 생계를 쪽박깨뜨리고 표주박을 와해시키는 정권의 정치 공작에 맞서서 거의 매주 매월 매일 매시 혁신하는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혁명운동사처럼 가두출정을 결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민족주의자와 노동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의 꿈처럼 미국과 일본에 벗어나고자 한다면 공개적인 그들의 앞잡이 선전가들과 매일의 전투를 벌이어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 전투를 하자면 노동자동맹을 조직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오늘날 민족주의자는 몇백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민족전쟁을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투쟁이라면 열강과의 전쟁을 상정하지만 프롤레타리아에게 큰 전투는 물론 작은 전투는 매일 공장과 현장에서 빚어지고 쟁위가 일어난다. 이러한 전투를 민족주의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풀뿌리 민주주의 와해로 가기에 사회주의 방어력에게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실천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인민주의도 마찬기지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저항전술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주의단체나 인민주의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서는 자기 계급을 해방시킬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매번의 전투에서 승리해야하고 승세를 잡기 위해 농민들과 계급동맹을 결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군대와 동맹을 맺을 때만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를 건설할 수 있다. 제국주의에 비타협적이더라도 현실의 자본주의에 타협적인 국가주의는 즉 민족주의는 언어 민족주의라기보다 혈통민족주의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인 정의당의 더 우측에 있는 파시즘 지배계층인 국민전선이다. 국민전선이 광범위하게 언론과 신문을 지배하고 의회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해방 투지와 노동자당의 깃발은 빼앗길 수 밖에 없으며 임금노예의 깃발로 만족해야 한다. 국민전선이 등장하게 된다면 한 사회에서 계급해방투쟁에서의 승패는 더 어려워지고 해방투쟁의 전술은 무지의 단계에서 경험에 의한 학습과 정치학습이 부재한 채 무장해제되어 백군에게 승산의 깃발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국민전선의 대중화는 매우 위협적이다. 저들끼리 싸우면서 노동자와 무산자로부터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한다. 그들의 조직화의 무기는 개인적인 신상발언과 권력찬탈 사견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사적 전투를 벌이고 자신만이 국민군의 장수라고 우겨서 얻는 명망성이며 이로부터 뻗어나는 적자생존의 기로에서 살아남기 적자생존의 적통성이다. 그들이 조직 폭력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공통된 투쟁의지의 원천인 사적소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각개의 전투에서 국유화강령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국민군들은 사적인 출세주의자들이고 그 당은 사당들이다. 친법 반민중 전쟁도반들이다. 그들에게 국유화란 국가의 무형 유형의 공동자산을 팔아넘기고 그 댓가로 사당이 생기는 것이자 돈 가진 자들에게 국가의 재산을 넘겨주어 투기꾼으로 키워주는 것이다. 저들의 국유화는 사유화를 강행하기 위한 인민들을 패배시키는 법비난동이다. 이같은 반민족 사유화의 깃발인 국가재산 자산매각과 공유경작지 해체는 사적 출세욕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 노동자들은 승리를 장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계층을 전술적 동맹으로 묶어세워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최고강령이 사적소유로 기울여진다면 승리는 백일몽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경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서로 상통하여 국민당과 같아진다면 사적전투밖에 남지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무기로 삼고자 경제투쟁을 강화한답시고 국민당파와 국민전선 국유지매각 사유화주의와 손잡아서는 안된다. 경제투쟁에 쫓기어 경제주의자 동맹을 만들려하지도 말라! 매달 매주 매일 매시 자신들의 노동계급조직 집단방어를 위해 집회 시위 결사를 계획하고 조직해야 한다. 그 계획의 정립에 따라 붉은 깃발과 붉은 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민주주의 혁명의 군대의 결성과 계급동맹으로 정치투쟁이 경제투쟁 그리고 이데올로기투쟁과 결합되어 있다,반자본 정치투쟁이란 활동가들의 정치결사체와 그들의 사상투쟁 이것을 의미하고 그것의 실현과학은 노동조합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혁명적 노동자 동맹 즉 노동자들의 단결의 투쟁 참모부 정치결사체가 강령을 도출하려는 매일의 투쟁방침의 선포이다. 그 임무를 부여받은 자가 혁명적 노동자당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동맹의 응결된 참모부인 노농총동맹이다. 지금 시급히 요구되어지는 것은 노농동맹의 민주적 결사와 항전의지의 체계화 즉 붉은 노동자 군대의 창설이다. 붉은 군대의 주도적 활동가조직인 혁명적 노동자동맹과 그 당은 마르크스의 코뮌 깃발과 레닌의 정치투쟁 과학을 손에 움켜쥐어야 한다.
세계 열강이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또아리를 죔 이후로 자본주의의 장수 제국주의에 대한 계급사회 대안으로 민족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지나간 물레방아의 물처럼 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세력은 자본가들의 국가주의에 맞설 만큼 충분하게 결의와 조직이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계급투쟁에 대한 국제주의의 단결투쟁에 견줄만큼 다양한 역사적 봉기에서 승리의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봉건시대 전제 왕권과 황제제후와 귀족들간의 투쟁은 시민혁명을 야기했으며 역사에서는 프랑스 혁명이후 파리코뮌을 낳기도 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앞으로의 해방투쟁에서 그들로부터 혁명 전장의 야수성처럼 배울만한 기상을 가지고 있지만 붉은 색깔의 확고부동함이나 과학적 세계해석의 철학적 강령과 이로부터 도출된 전략과 전술이 아직은 부재하다. 제국주의시대를 주도하는 독점자본과 그들의 동맹세력을 지배자로 맞이하여 그들의 전장동맹에 맞서서 투쟁하고 승리를 거둘만한 위인과 영웅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학습의 부재라는 것을 반증한다. 조국의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영웅은 이미 다 죽은 옛날의 봉건영주 장수들의 발자취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의 전면적인 공격과 그들의 제국주의자 정권인 파시즘이 반공의 깃발아래 전세계적인 중상주의 흐름과 그것의 결과인 시장패권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적재산에 광분하여 노동 무산계급을 핍박하고 착취 수탈하는는 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온갖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정권의 안보를 생명줄처럼 여기고 국가들의 폭력기관을 단단히 단속해서 전국적으로 무산계급을 억누르기에 이런 반공세력에 맞서서 싸워온 단체와 당이 반제국주의 깃발을 명확하게 드러나지지 않는다면 투쟁은 때때로 패배로 끝나고 지도적 권위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당 창당과 아울러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한 노동학도병단을 창건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농노해방 반봉건 투쟁의 선도자인 인민주의자처럼 한번의 혁명물결로 끝날 수 있고 인민주의는 전황에서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적으로 보복을 응징하는 것을 최고의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전황을 계급에게 이롭도록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 아니 전혀 바꿀 수 없다. 이는 투쟁전선의 확정을 부르는 선전선동가의 고립성과 조직가 활동가당의 부재 때문이다. 최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전 수상 아베 살해처럼 아무런 승전보의 성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주도권을 쥐어주기를 거부하는 한국의 나로드니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민중속에서 인민을 뒤따르자는 나로드니끼는 인민속으로 들어가 어떤 깃발과 어떤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었는가? 혁명가당이라는 최고의 결사조직과 그들의 민주기지안 민족민주의 투쟁을 만들어냈으며 또는 노동자계급의 민주기지인 공장을 요새화하고자 어떤 선전선동을 펼쳐왔는가? 나로드니끼의 지배적인 사상은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처럼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현실타협 철학과 일치한다. 노동자단체를 저버리고 인민속으로 들어가서 반봉건 혁명을 어떻게 민주주의 혁명으로 바꾸어 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버린 인민의 벗은 인민속의 지도자를 어떻게 계급의 장수로 훈련시켜 노동자군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기본소득을 혁명의 단초로 여기지 않고 최고강령으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러시아혁명의 브나로드운동인 나로드니끼로 규정되어야 한다. 나로드니끼 깃발의 비판적 결론은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인민속으로 들어가는 곧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예속되거나 국짐당 국민의당 애국주의로의 전락 즉 국민군으로의 백의종군일 것이다. 문재인 장수가 민족주의의 대장군이다. 프노동자정부가 스스로 장수가 되려고 하기않고 노동해방 깃발을 버리고 깃발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주의자들의 수하로 국민군의 병졸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이는 국민군들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고 민족주의 단체 처럼 깃발없는 인민주의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같은 타협은 뒤따르는 노동자들과 민중을 투쟁의지를 꺾여 내리고 자본가에 대한 간접적 투항을 불러올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민군에 백의종군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국민군은 소수정예가 원칙이고 반공주의 깃발을 든 반혁명 세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쟁의를 발판삼아 깃발을 들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사회계급의 최하위 층에서 날마다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의 평화가 옥죄여 오고 생계의 전선에 내몰리기에 노동자들은 합법적이든 반합법적이든 투재을 결의해야 한다. 열강에 의한 간섭으로 민족적 단체고립이라는 민족전쟁의 일상화속에서 정세 주도권을 국민군에게 빼앗긴 채 외세의 전쟁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터에서 계급지배 현실의 장벽에 부딪쳐서 자주성을 잃거가고 해방을 빼앗기고 수구세력의 억압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나로드니끼는 민족해방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내일의 꿈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군이 사회적으로 무장면에서 월등히 우세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주의로 주저앉게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대공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근저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만의 조직과 그들만의 장수를 가지고 출중한 군대를 쥐고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김일성장군처럼 사회주의적 투쟁의 조직화로 국제주의적 협력의 성과로서 붉은 장수를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군대와 노동동맹 깃발의 단체가 정세를 이끌고 가게끔 정치선전과 반제국주의 가두투쟁 선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활동가전위에 힘입어 1년중 광복절 단 하루가 승리의 날이 아니라 매월 매주 매일 계급투쟁 전선을 떨쳐일어나 날마다 승리해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펼치고 떨쳐일어나 자신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투쟁속에서 단련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붉은 깃발과 함께 노동자당의 깃발아래 뭉쳐야 하고 매월 매주 매일의 생계를 쪽박깨뜨리고 표주박을 와해시키는 정권의 정치 공작에 맞서서 거의 매주 매월 매일 매시 혁신하는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혁명운동사처럼 가두출정을 결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민족주의자와 노동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의 꿈처럼 미국과 일본에 벗어나고자 한다면 공개적인 그들의 앞잡이 선전가들과 매일의 전투를 벌이어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 전투를 하자면 노동자동맹을 조직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오늘날 민족주의자는 몇백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민족전쟁을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투쟁이라면 열강과의 전쟁을 상정하지만 프롤레타리아에게 큰 전투는 물론 작은 전투는 매일 공장과 현장에서 빚어지고 쟁위가 일어난다. 이러한 전투를 민족주의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풀뿌리 민주주의 와해로 가기에 사회주의 방어력에게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실천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인민주의도 마찬기지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저항전술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주의단체나 인민주의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서는 자기 계급을 해방시킬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매번의 전투에서 승리해야하고 승세를 잡기 위해 농민들과 계급동맹을 결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군대와 동맹을 맺을 때만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를 건설할 수 있다. 제국주의에 비타협적이더라도 현실의 자본주의에 타협적인 국가주의는 즉 민족주의는 언어 민족주의라기보다 혈통민족주의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인 정의당의 더 우측에 있는 파시즘 지배계층인 국민전선이다. 국민전선이 광범위하게 언론과 신문을 지배하고 의회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해방 투지와 노동자당의 깃발은 빼앗길 수 밖에 없으며 임금노예의 깃발로 만족해야 한다. 국민전선이 등장하게 된다면 한 사회에서 계급해방투쟁에서의 승패는 더 어려워지고 해방투쟁의 전술은 무지의 단계에서 경험에 의한 학습과 정치학습이 부재한 채 무장해제되어 백군에게 승산의 깃발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국민전선의 대중화는 매우 위협적이다. 저들끼리 싸우면서 노동자와 무산자로부터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한다. 그들의 조직화의 무기는 개인적인 신상발언과 권력찬탈 사견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사적 전투를 벌이고 자신만이 국민군의 장수라고 우겨서 얻는 명망성이며 이로부터 뻗어나는 적자생존의 기로에서 살아남기 적자생존의 적통성이다. 그들이 조직 폭력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공통된 투쟁의지의 원천인 사적소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각개의 전투에서 국유화강령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국민군들은 사적인 출세주의자들이고 그 당은 사당들이다. 친법 반민중 전쟁도반들이다. 그들에게 국유화란 국가의 무형 유형의 공동자산을 팔아넘기고 그 댓가로 사당이 생기는 것이자 돈 가진 자들에게 국가의 재산을 넘겨주어 투기꾼으로 키워주는 것이다. 저들의 국유화는 사유화를 강행하기 위한 인민들을 패배시키는 법비난동이다. 이같은 반민족 사유화의 깃발인 국가재산 자산매각과 공유경작지 해체는 사적 출세욕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 노동자들은 승리를 장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계층을 전술적 동맹으로 묶어세워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최고강령이 사적소유로 기울여진다면 승리는 백일몽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경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서로 상통하여 국민당과 같아진다면 사적전투밖에 남지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무기로 삼고자 경제투쟁을 강화한답시고 국민당파와 국민전선 국유지매각 사유화주의와 손잡아서는 안된다. 경제투쟁에 쫓기어 경제주의자 동맹을 만들려하지도 말라! 매달 매주 매일 매시 자신들의 노동계급조직 집단방어를 위해 집회 시위 결사를 계획하고 조직해야 한다. 그 계획의 정립에 따라 붉은 깃발과 붉은 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민주주의 혁명의 군대의 결성과 계급동맹으로 정치투쟁이 경제투쟁 그리고 이데올로기투쟁과 결합되어 있다,반자본 정치투쟁이란 활동가들의 정치결사체와 그들의 사상투쟁 이것을 의미하고 그것의 실현과학은 노동조합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혁명적 노동자 동맹 즉 노동자들의 단결의 투쟁 참모부 정치결사체가 강령을 도출하려는 매일의 투쟁방침의 선포이다. 그 임무를 부여받은 자가 혁명적 노동자당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동맹의 응결된 참모부인 노농총동맹이다. 지금 시급히 요구되어지는 것은 노농동맹의 민주적 결사와 항전의지의 체계화 즉 붉은 노동자 군대의 창설이다. 붉은 군대의 주도적 활동가조직인 혁명적 노동자동맹과 그 당은 마르크스의 코뮌 깃발과 레닌의 정치투쟁 과학을 손에 움켜쥐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