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일기: 민족주의로는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다.

2022/08/16 21:49

민족주의로는 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다.
세계 열강이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또아리를 죔 이후로 자본주의의 장수 제국주의에 대한 계급사회 대안으로 민족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흘러간 물레방아의 물처럼 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세력은 자본가들의 국가주의에 맞설 만큼 충분하게 결의와 조직이 세워지지도 않았으며 계급투쟁에 대한 국제주의의 단결투쟁에 견줄만큼 다양한 역사적 봉기에서 승리의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봉건시대 전제 왕권은 황제제후와 귀족들간의 투쟁으로 시민혁명을 야기했으며 역사에서는 프랑스 혁명이후 파리코뮌을 낳기도 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앞으로의 해방투쟁에서 그들로부터 혁명 전장의 야수성처럼 배울만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지만 붉은 색깔의 확고부동함이나 과학적 세계해석의 철학적 강령과 이로부터 도출된 전략과 전술이 아직은 부재하다.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시대를 주도하는 독점자본과 그들의 동맹세력을 지배자로 맞이하여 그들의 전장동맹에 맞서서 투쟁하고 승리를 거둘만한 위인과 영웅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학습의 부재라는 것을 반증한다. 조국의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영웅은 이미 다 죽은 옛날의 봉건영주 장수들의 발자취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의 전면적인 공격과 그들의 제국주의자 정권인 파시즘이 반공의 깃발아래 전세계적인 중상주의 흐름과 그것의 결과인 시장패권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적재산에 광분하여 노동 무산계급을 핍박하고 착취 수탈하는는 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온갖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정권의 안보를 생명줄처럼 여기고 국가들의 폭력기관을 단단히 단속해서 전국적으로 무산계급을 억누르기에 이런 반공세력에 맞서서 싸워온 단체와 당이 반제국주의 깃발을 명확하게 드러나지지 않는다면 투쟁은 때때로 패배로 끝나고 지도적 권위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당 창당과 아울러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한 노동학도병단을 창건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농노해방 반봉건 투쟁의 선도자인 인민주의자처럼 한번의 혁명물결로 끝날 수 있고 남녘의 인민주의 또한 반제 반파시즘 전황에서 승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적으로 보복을 응징하는 것을 최고의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전황을 계급에게 이롭도록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 아니 전혀 바꿀 수 없다. 이는 투쟁전선의 확산을 부르는 선전선동가의 고립성과 조직가 활동가당의 부재 때문이다. 최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전 수상 아베 살해처럼 아무런 승전보의 성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주도권을 쥐어주기를 거부하는 한국의 나로드니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민중속에서 인민을 뒤따르자는 나로드니끼는 인민속으로 들어가 어떤 깃발과 어떤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었는가? 혁명가당이라는 최고의 결사조직과 그들의 민주기지안 민족민주의 투쟁을 만들 의지가 있었던가? 또한 노동자계급의 민주기지인 공장을 요새화하고자 어떤 선전선동을 펼쳐왔다고 자신하는가? 나로드니끼의 지배적인 사상은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처럼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현실타협 세계관과 일치한다. 노동자단체를 저버리고 인민속으로 들어가서 반봉건 혁명을 어떻게 민주주의 혁명으로 바꾸어 내고자 항쟁과 학습을 조직하고자 한 적이 있으며 어떤 실천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는가? 마르크스주의를 버린 인민의 벗은 인민속의 지도자를 어떻게 계급의 장수로 훈련시켜 노동자군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기본소득을 혁명의 단초로 여기지 않고 최고강령으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러시아혁명의 브나로드 농촌투신운동인 나로드니끼로 규정되어야 한다. 나로드니끼 깃발의 비판적 결론은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인민속으로 들어가는 곧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예속되거나 국짐당 국민의당 애국주의로의 전락 즉 국민당군으로 반동적 백의종군일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장수가 민족주의의 대장군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민족주의 시절에 소리 높였던 노동자정부가 스스로 장수가 되려고 무엇을 결의하였으며 노동해방 깃발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무슨 투쟁을 결의하였는가? 깃발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주의자들의 수하로 격하되어 국민당군의 병졸로 들어가는 것이 맞는가? 그것은 노예화이기에 이는 국민당군들의 전쟁 하수인이 되는 것이고 민족주의 단체 처럼 깃발없는 인민주의로 낙오병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즉 숫송아지가 다시 모기에게 피빨리는 축사밖 머슴살이 황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굴욕적 타협은 뒤따르는 노동자들과 민중을 투쟁의지를 꺾여 내리고 자본가에 대한 간접적 투항을 불러올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민당군에 백의종군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국민당군은 소수정예가 원칙이고 반공주의 깃발을 든 반혁명 골수 세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쟁의를 발판삼아 승리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사회계급의 최하위 걔급에서 날마다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의 평화가 옥죄여 오고 생계의 전선에 간단없이 내몰리기에 노동자들은 합법적이든 반합법적이든 투쟁을 결의해야만 한다. 열강에 의한 간섭으로 민족적 주권의 종속화와 의인혁명 단체의 고립이라는 민족전쟁의 일상적인 패배의 연속선상에서 정세 주도권을 국민당군에게 빼앗긴 채 등에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외세의 전쟁하수인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터에서 계급지배 현실의 장벽에 부딪쳐서 자주성을 잃어가고 해방구를 빼앗기고 수구세력의 얼토당토않는 억압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나로드니끼는 민족해방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내일의 꿈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당군이 사회적인 무장면에서 월등히 우세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주의로 귀착되어 레닌 기치를 놓쳐버리고 진영의 구석에 주저앉게 되고 투쟁을 주저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대공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지배사회의 근저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만의 조직과 그들만의 장수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정당방위의 무력조차도 없다.

파국이 임박했다. 그것을 어떻게 돌파하고 해결책이 되는 돌파구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파국을 맞이하게된 까닭이다. 강조하건대 노동자계급은 출중한 군대를 당의 기반으로 쥐고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김일성장군처럼 사회주의적 투쟁의 조직화로 국제주의적 노동계급의 민족간 협력의 성과로서 붉은 장수를 배출할 수 있어야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군대와 노동동맹 깃발의 단체가 정세를 이끌고 가게끔 정치선전과 반제국주의 가두투쟁과 선봉의 가두동맹을, 기관지에 의한 선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활동가 전위에 힘입어 1년중 광복절 단 하루만 승리의 날이 아니라 매월 매주 매일 계급투쟁 전선을 떨쳐일어나 날마다 승리해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펼치고 산과 강에서 강고한 동맹세력으로 떨쳐일어나 자신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투쟁속에서 투사를 단련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붉은 깃발과 함께 노동자당의 깃발아래 뭉쳐야 하고 공황의 일상화 속에서 매월 매주 매일의 생계를 쪽박째 깨뜨리고 표주박을 와해시키는 정권의 정치 공작에 맞서서 봉기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이에 호응하여 거의 매주 매월 매일 매시 농민동맹을 자발적 봉기를 노농동맹이라는 연대의 기치로 이끌고 대동단결을 결사해야 한다. 날마다 혁신하는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혁명운동사처럼 용맹한 투사들이 되기위해 가두출정을 거리낌없이 결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인민의 당파와 노동자들은 저 단군 민족주의자들의 꿈처럼 미국과 일본에 벗어나고자 한다면 공개적인 그들의 앞잡이 나팔수들과 그들의 잇권 독점에 맞서서 물러섬이 없이 매일의 사상 전투를 벌이어야 하고 국민당군과의 반정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인민이 전투를 시작하자면 노동자동맹을 조직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오늘날 민족주의자는 몇백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민족전쟁을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투쟁이라면 열강과의 전쟁을 상정하지만 남조선 프롤레타리아에게 큰 전투는 물론 작은 전투조차도 버겁다. 매일 공장과 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품삯전투 즉 쟁의가 필연적이어도 이것이 일반적인 투쟁의 모습이다. 오늘날 필연적인 왕국에서 자유로운 왕국으로의 사적 전투는 사업장안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전투를 민족주의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풀뿌리 민주주의 혁명전선의 와해로 줄달음치기에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 방어력있는 민주진지를 지켜내자는 생산적 민주기지론의 전술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은 공장을 거점으로 삼자는 의식화이외에도 가두에서의 투쟁에 걸맞는 다른 대중노선을 요구받게 된다. 선전선동가가 없는 활동가 조직은 정치노선도 조직노선도 미래의 단결과학도 찾아낼 수가 없게 된다. 현장성과 대중성을 잃기 때문이다. 대중적 전위당 조직노선의 부재는 노동자단체 조직화를 통한 경제주의적 실천의 범람은 정치투쟁을 따로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봉사할 뿐이다. 붉은 국제주의를 깃발로 단결한 일군의 모임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대중쟁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족주의 이외의 전투에서 수평주의 평등파처럼 투쟁한 보람도 없어지고 앞서서 싸운 의미가 반감되어 없어지게됨으로써 반혁명적인 분위기에 압도하게 된다. 역사적 투쟁에 관한 과학이 없다면 이것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맴도는 일과투쟁에 머물러 노조관료들의 수정주의에 암묵적으로 기여하게 될 뿐이다. 이러한 수정주의는 계급투쟁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회피함으로써 패배를 맛보게 된다. 깃발없는 인민주의도 깃발없는 민족주의처럼 마찬기지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승리이다. 깃발을 접는 타협은 강령없는 민주화이고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없는 맹목적인 항전전술일 뿐이다. 민족국가에서는 사상투쟁이외의 무기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다. 또한 제국주의에 대한 전민 항쟁이 국보법으로 부르주아 노동법으로 그리고 그외의 민법 판례와 정부의 유권해석으로 탄압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보법 철폐를 대중적 투쟁강령으로 제기해야 한다. 파업에 대한 족쇄를 풀자면 계급적 대중정당과 전위정당에 대한 족쇄가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쟁을 결의해야 햔댜.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노동자당도 노동적군도 가두에서 깃발을 내걸 수 있고 행군도 투쟁도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서둘러 노농총동맹 깃발아래 공안 악법철폐 전선을 만들어내고 반노동 반사회주의자 규범제도 철폐를 위해 투쟁을 결사하고 이러한 결의가 확산되도록 목숨으로 전선을 사수토록 선전선동을 조직하라!! 마르크스레닌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주의단체나 인민주의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서는 자기 계급을 해방의 국면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는 노동의 전위이면서 민족의 전위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주체가 되기위해 매번의 전투에서 승리해야하고 반독점 자본주의 저항에서 항상 최후의 보루 마지막까지 반대세력을 자처하고 반독점 전투에서 승세를 잡기 위해 농민들과 계급동맹을 결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군대와 동맹을 맺을 때만 동등한 위치에서 반독점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강령 또한 과학성을 쟁취하게 된다. 반독점 반제 반전 강령만이 민중 연대를 건설할 수 있다. 제국주의에 비타협적이더라도 현실의 자본주의에 타협적인 국가주의 즉 민족주의는 언어의 영역권인 백의의 민족주의라기보다 독점자본처럼 혈통 민족주의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의 사상이며 사회민주당보다 더 우측에 있는 권위주의 파시즘 지배계층을 지지자인 국민전선의 충효사상추종자들의 봉건정신일 것이다.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화자찬으로 세력화를 넓히고 있는 국민전선이 광범위하게 언론과 신문을 지배하고 그 역학으로서 의회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해방 투지와 노동자당의 깃발은 앞으로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얻지못해 두해가 지나면 의회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으며 그때에 가서 재야와 야권에 대한 탄압은 불을 보듯 확연해지고 폭압적인 사회주의자탄압법이 만들어져 파국을 만들고 반동이 지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장의 사회주의자들이 파업결의를 한다해도 노조가 자기계급의 우호정당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냉소주의에 물들어 정치투쟁을 접는다면 투쟁이 패배하게 된다. 이때 노동계급이 파멸적인 국면으로 파탄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 법사공화국은 날마다 성장하면서 국가의 공적인 부를 탐욕하고 그 수단으로써 괴뢰악법 제정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사법비위는 친범법자 위주로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다. 법조계는 좌익적 반대파가 사라져서 건국초기 이승만정권의 악법 제정기로 후퇴하고 야당에 대한 탄압도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독재를 중단하게 된다면 인민은 정권교체라는 희망을 잃게 되고 체제 전환 또한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처럼 있으나마나하는 빛바랜 보물이 될 것이다. 이처럼 정치냉소와 정치혐오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의 희망을 접게될 것이고 정치포기하자는 청산파가 득세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임금노예의 깃발로 불완전한 임금노예 세상에 자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르주아지를 부정한다면 부르주아지 정치 독식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 혁명이란 토대를 억압하는 상부구조를 파괴하는 민중의 봉기와 반자본 반전제주의 깃발을 든 정파적 폭동이다. 제도를 뜯어고치도록 투쟁을 결의하고 가두를 반제와 반파시즘 깃발로 믈들여야 민족주체와 함께 노동중심성이 바로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을 힘들다 불가능하다고 주먹질을 사린다면 국회로부터 국민전선이 등장하게 되고 한 사회에서 계급의 억지균형은 균열을 일으키고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출세주의자들이 독점자본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정치냉소주의는 노동자가 보기에는 냉랭한 놀부의 인심이고 놀부처럼 다른 관념을 가지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대오를 파괴하는 패배주의로 귀착되게 될 것이다. 조직되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악력은 계급해방투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지 못하게 된다. 무는 힘이 달릴수록 무는 횟수가 적을수록 부르주아 착취체제 변혁은 더디어지고 토대로부터 제기되는 생산관계의 혁명은 더 어려워지고 그만큼 부르주아지는 발빠른 계산으로 정계와 재계에 지지자를 만들어 우익을 사주하는 진짜쿠데타를 사주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조직이 없는 정치는 수구보수 정당의 위기를 가져다주기는 커녕 상부구조에서의 반동성은 더 격하게 추동하고 관망 정국을 퇴조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염려하는 정치투쟁에서의 파국이다. 파국이 시작되었다. 파국에서 벗어날 전술과 슬로건을 제시하라!! 노동계급이 정치변혁의 구심점을 갖게 하자는 해방투쟁의 정치투쟁 전술은 냉소주의라는 무지의 단계에 이르러서 마침내 민심이 바닥나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너도나도 잇권장사로 매몰되는 기회주의의 전면화로 우리 운동이 도덕적 우위부터 파탄나게 된다. 진실만이 세상을 변혁하는 힘이다. 진실을 곁에 두고 대중적 반파시즘 전선을 더 예리하게 단련하고 대중적 항쟁을 조직해야 한다. 경험에 의한 학습자 조직과 의식적으로 개설한 정치학습이 부재한 봉기는 사회민주주의 역사에서 나타난 조합주의의 단편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바로는 봉기 그 자체에 머물러 러다이트 운동 직후처럼 기회주의로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투쟁을 국민의회를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정치의식과 정당으로 의회내에서 반파시즘 반대파 의원그룹을 형성시키는 내각체제 파괴 국민당심을 빙자한 상부구조 파괴의 대장정이다. 이러한 전술을 놓친 채 싸우게 된다면 국민잇권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로까지 항거투쟁을 섭렵한 법사정부에 의해서 반파시즘 사상이 결정화되지 않고 무장해제되어 백군에게 무상의회 진출이라는 승산의 깃발이 넘겨주게 될 것이다. 밀정이 장관이 되는 시대에 공안검비가 국회의원하는 시대가 과연 노동자세상인가? 우리는 먼저 의석을 얻고자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자를 과학적 사상으로 단련시키고 강령의 의식성으로 대중전선을 결사하게끔 활동가들을 사상운동으로 훈련시켜 정견을 만들어내는 활동가당을 먼저 결사하여야 한다. 노 농 학 부문에서 현실문제를 조사파악하고 정책의 과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사람을 준비하여 사회문제를 각양의 정치상황에 맞게 만들어 제출하고 노동자계급을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 영향권으로부터 차단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으로 통일된 노동운동의 정견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때 지금의 국짐당 위주의 언론선전은 무척 불편하다.국짐당 집안싸움이더라도 몇개의 펴즐로 풀어가는 잡담과 당내분규는 노동자에게 이러한 정치 냉소주의를 불러오게 할 수 있어 서푼짜리라도 국민전선의 대중화는 매우 위협적이다. 국민전선은 저들끼리 싸우면서 노동자와 무산자로부터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한다. 그들의 조직화의 무기는 개인적인 신상발언과 권력찬탈 법료정변의 국면에서 노름대장을 뽑기하듯 각종의 선거운동 사견간의 논공행상 차이로 발생하는 사적인 명예자 다툼이며 줄세우기 전투이다. 이 프라이버시 연줄 승급 전투를 떠벌이면서 자신만이 국민당군의 장수라고 우겨서 땅를 따먹기하듯 명망성의 간판세우기를 자청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뻗어나는 적자생존의 기로에서 인기투표에서 살아남기위한 구명복찾기와 당선도박처럼 권력실세 연줄잡기를 쉬지 않고 하고 있어 저들의 속내에 따라 정치권이 들썩거린다. 뉴스배우 차지하기식 적자생존의 꾐수가 얼마나 인기영합적인지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시이다. 신인 정치배우 콘테스트에 인민의 온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들의 신인배우 선출방식은 반인민 정권의 친일 사대 핏줄찾기에 다름아니며 공직인선은 사다리놀이를 하면서 승자독식을 그대로 내비치는 적통성 세우기일 것이다. 그들이 조직 폭력배들의 형님 줄세우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공통된 투쟁의지의 원천인 소유욕 즉 사적소유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저들이 보여준 정치권력의 목적은 국유화된 국가재산을 얼마나 저항없이 가져가고자 국가을 얼마만큼 무력화시켜 정권도박에서 승리를 담보로 민영화 도박에 국유재산 담보잡기를 적용하고 내기담보물 가져가기와 팔아먹기로 그 허황된 꿈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도박을 끝장내려면 정치도박을 종식시킬 토지국유화강령의 제기와 대중적 제출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도박장이 된 정계에 대한 외면과 묵인을 끝장낼 각개의 전투에서 토지국유화강령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국민당군들은 사적인 인연은 80년대 양김시대 반파시즘 투쟁에서 민주주의 시민운동이 이기자 보수야당이 동교동계 상도동계하며 정권을 쥐기위해 펼쳤던 양육강식의 부르주아 줄세우기와 편가르기 등의 거물급 목줄채우기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당군은 출세주의자들이고 그 나팔수들의 당은 지 잇속으로 결합되어 의석을 탐하는 사당들이다. 친법사와 친윤 친이 등의 정파나누기는 총선을 앞둔 계파싸움이며 마치 반민중 친제국주의 세력이 양김시대처럼 반민족주의 깃발을 든 전쟁 도반들이다. 그들에게 국유화란 국가의 무형 유형의 공동자산을 팔아넘기고 그 댓가로 사당이 잇권을 챙기는 것이고 돈 가진 자들에게 국가의 재산을 넘겨주어 투기꾼으로 키워주는 것이다. 저들의 국유화는 종국적으로 사유화를 강행하기 위해 벌이는 국가분할 절차이고 국유재산을 지켜서 애국하려는 인민들을 패배시키는 난봉꾼 우월의 집단주의이며 법비정부의 공정국가라는 국가정체성에 정통성시비로 분열시켜 정변을 유도하는 정치모리배들의 난동꾼 난장판 만들기이다. 이같은 반민족 사유화의 깃발인 국가재산 도적질과 공공 자산매각과 공유경작지 해체 사들이기는 사적 출세욕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 노동자들은 승리를 장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계층을 전술적 동맹군으로 묶어세워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최고강령이 사적소유로 기울여진다면 승리는 백일몽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경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국민당군과 서로 상통하여 국민당군과 같아진다면 잇권싸움 즉 사적전투밖에 남지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무기로 삼고자 경제투쟁을 강화한답시고 국민당파와 국민전선의 국유지 분할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민주화국가가 집권을 하게 된다면 장애인이나 청소년들에게 노동을 장려하기 위한 공익적 공음전의 토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좌파가 국유지매각 사유화주의와 손잡게 해서는 안된다. 정의당은 부르주아 당이지만 혁명은 아닐지라도 노동을 존중하고 있으며 노동을 통한 당세회복을 바라는 편이 내부에 있다고 추정하기에 진보라고 하지만 당내현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의회투쟁과 당내투쟁에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익 기회주의라 아니할 수 없다. 부르주아 편드는 학생회출신의 정치계모임일 뿐이다. 만약 진보좌파가 정의당을 생각해준다면 정의당내의 진보파 혁신파 노동파 현장파가 생기도록 당내의 반노동 적폐 청산에 엄격한 비판을 해야 하고 현재의 군소할거의 당세를 통합할 새로운 정치가 후보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들에게도 정치라는 직업을 만들고 의석을 상속해나갈 당에 아량을 베푸는 노동자와 민중이 있기나 하는가? 오로지 자신들의 투쟁으로 난세를 돌파하고 노동자당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만 건강한 투쟁이 성숙할 것이다. 그 당의 후보중에서 즉 노동현안의 사회주의 문제에 혼신의 힘과 정력적 투쟁을 쏟을 정파가 과연 대한민국 안에 있기나하는가 말이다? 민노당조차 어렵다고 버린다면 대중정당이라기 보다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정의당은 노란색을 버리든지 인민의 지지를 버리든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들이 갖고 있는 반과학을 과학적 진술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의당에게 노동자당 예우식의 봉사와 기여를 요구하라!!

노동계급에게 민주노총은 그냥 경제주의 직업단체일뿐이다. 혁명을 주장하려면 노동좌파를 재생산해야 하고 청년혁명가를 진보좌파에 심어야 한다.
경제투쟁에 쫓기어 경제주의자 동맹을 만들려하지도 말라! 매달 매주 매일 매시 자신들의 노동계급조직 집단방어를 위해 집회 시위 결사를 계획하고 노조와 노민추 그리고 노동동맹을 조직해야 한다. 그 노동세력화 계획의 정립에 따라 붉은 깃발과 붉은 노동 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민주주의 혁명의 선봉부대 로서 노동해방 군대의 결성과 계급동맹으로 저 모리배들과 전투를 치루는 정치투쟁의 담당자이고 경제투쟁의 선도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의 근저가 이데올로기투쟁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투쟁에 진보좌파가 사회주의자가 함께 하여야 한다. 이들의 투쟁이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국보법과 정당법을 폐지시켜야 한다. 반자본 정치투쟁이란 활동가들의 정치결사체와 그들의 반부르주아 사상투쟁 그리고 노동당에서 쁘띠부르주아지의 터전을 없애는 것이 당의 민주적 통제이며 이것의 실천은 당에서 기회주의자들의 축출하는 것이다. 정군이란 이것을 의미하고 그것의 실현과학은 노동조합운동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혁명적 노동자 동맹 즉 노동자들의 단결의 투쟁 속에서 해방동맹의 뿌리가 내릴 수 있는 정당의 등장이다. 해방동맹의 참모부격의 정치결사체가 사회계급의 갈등과정에서 파생되는 사회문제를 투쟁강령으로 도출하고 전술적 슬로건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코뮌적 강령의 도출은 곧 변혁의 깃발을 든 대중투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주택문제와 집단적 농지부족 해결 문제의 강령화 등 매일의 사회적 계급문제에 대한 투쟁방침의 혁명정강 선포가 전술적 선언의 순례이다. 그 임무를 부여받은 자가 혁명적으로 각성하여 결사하는 노동자당과 전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동맹의 응결된 강령에 의해서 임무를 부여받은 참모부의 정치행진대오가 가두에서의 전위조직이다. 그것의 현상실태는 노농총동맹이다. 지금 시급히 요구되어지는 것은 노농총동맹의 민주적 결사와 항전의지의 체계화 즉 붉은 노동자 군대의 창설이다. 붉은 군대의 주도적 활동가조직인 혁명적 노동자동맹과 그 당은 마르크스의 코뮌 깃발과 레닌의 정치투쟁 사회민주당 과학을 손에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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