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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우리의 필리버스터는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가둔 원내정당과 제19대 국회 뒤로 하고
우리의 필리버스터는 끝나지 않는다
– 스스로를 가둔 원내정당과 국회를 뒤로 하고
그간 무수한 사람들이 국회 밖에서 ‘필리버스터’를 벌여왔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생계 수단을 자르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 ‘합법적’일 수만은 없는 ‘의사진행방해’를 펼쳐왔다. 이긴다는 가망이 없어도, 단 한줌의 권력조차 없어도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비단 ‘투쟁 현장’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국회안 필리버스터는 달랐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필리버스터 종료 이후 회기가 열리면 테러법은 자동상정되어 과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에 의해 통과될 운명이었다. 다만 국회안 필리버스터는 끝내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끝은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상대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떤 변동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무릎을 꿇었다. 국민의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10시간 이상 연설한 의원이 있는데도 스스로 ‘이념 전쟁’이라는 말로 의미를 국한시켰다. 국민 사이에서 선거 연기에 대한 근심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새누리당이나 직권상정으로 화를 자초한 정의화 의장이 뒤집어쓸 수도 있는 선거 연기 부담을 손수 솔선하여 뒤집어썼다.
더민주의 무기력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녹색당은 지난 1월 24일 안건조정위원회와 필리버스터를 통해 쟁점법안의 통과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의화 의장 직권상정 이전 테러법을 안건조정위원회로 넘겨버렸다면 최소 90일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필리버스터도 빨리 준비되었다면 여러가지 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부디 노동개악법 등 나머지 악법들이라도 그렇게 대처하기 바란다.
한편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정당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강행론에 섰던 더민주 원내대표까지 굴복시킨 건 김종인 위원장과 박영선 위원을 위시한 비상대책위원회였다. 원내 기구가 당 기구를 따르는 것은 옳다. 하지만 이 비대위는 당내에서도 선출된 적이 없는, ‘위임’받은 권력에 불과하다. 강경하게 테러법을 막아서던 의원들조차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 정치인과 정당에게, 국민과 당원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원내소수정당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애매함의 극치를 달리며 여당도 야당도 아닌 체했던 국민의당은 차치하고, 정의당도 더민주의 행태에 변변한 저항 한번 못하고 ‘당내 개혁파’ 정도로 발언할 뿐이었다.’중간’에 집착하느라 제 소신 하나 정립하지 못하거나, ‘연합’ 에 갇혀가는 원내소수정당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는다.
가장 크게 패배한 것은 새누리당이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의원이 하나도 없다는 걸 증명했다. 새누리당의 ‘최고사령부’는 청와대임이 완전히 입증되었다. 새누리당은 엄밀히 말해 여’당’이 아니다. 1970년대 ‘유정회’ 같은 집단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영원히 패배하는 길로 갈 것이다. 테러법과 노동개악법을 처리하려는 그는 임기 말년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를 벌였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김영삼 정권을 연상시킨다.
이 필리버스터를 뒤로 하며 우리는 또다시 닥쳐온 국정원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테러법을 폐지하기까지 얼마나 큰 수고와 희생이 따를 것인가. 그러나 수많은 삶의 현장에서 벌어질, 폭압적 의사진행에 대한 방해와 저항을 준비한다.
2016년 3월 3일
녹색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