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05년 8월 15일부터 담배를 끊었다. 내가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특별한 공휴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배를 "끊은 날"이라는 나만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날을 기점으로 확실히 끊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나는 그날부터 니코틴의 노예로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사정은 이러하다. 2005년 8월 14일 밤. 나와 동료들은 창원의 모 술집에서 늦은 저녁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생맥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니 우리가 얼마나 담배를 많이 피웠는지는 기억난다.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꽁초를 여러 번 비우기도 했지만 대화도중 한시도 손가락에서 담배를 뗀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나의 상태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천장이 빙빙 돌고 머리는 어지럽다 못해 역겨움을 느낄 정도였다. 일어나 앉았지만 구역질이나 제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기막힌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니코틴에 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 밤 얼마나 피웠을까? 아마 6시간 동안 3갑 정도를 피웠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깨어있었던 만 하루 동안 4갑의 담배를 피운 셈이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끊었다. 정말 8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단 한 개비의 담배도 입에 물지 않았다. 2005년의 나머지 네 달 동안 가끔 어떤 유혹 때문에, 또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몇 번 입에 담배를 물기도 했지만 2006년부터 전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담배를 끊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담배를 참 쉽게 끊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도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성공한 셈이다.

물론 나는 나의 정신력이 대단해서 그렇게 담배를 누구보다도 재빨리 끊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담배가 나의 체질과 그렇게 잘 맞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꾸준히 실행했는데, 가장 먼저 나는 대중목욕탕에 자주 갔다. 일주일에 세 번, 어떤 달은 20번을 가기도 했다. 당연히 몸에서 땀을 빼기 위해서였다. 반신욕과 한증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담배를 끊은 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목에서 1년 정도 가래가 끓었다. 알아보니 담배를 끊으면 1년에서 2년 정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정상적인 과정이란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만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담배를 끊기 전까지는 하루에 두세 번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무얼 먹으면 금방 화장실에 가곤했다. 당연히 아침에 한번만 화장실에 가게 되니 2년 정도 지나자 몸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몸무게를 57kg으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내가 건강 체질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몸무게가 68kg정도다. 요즘은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혀 나오지 않던 배도 나온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변화는 술을 많이 마시게 되더라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술을 마셔도 쉽게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술이 느니 자연스레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로 담배를 끊은 지 만 4년째다. 그런데, 최근 담배를 핀다. 심지어는 담배를 피기 위해 술을 마신다. 한번, 낮에 피워봤다. 낮에 피는 담배는 소위 맛이 없었다. 연기만 매캐하고 어지럽고 손가락에서 심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피는 담배는 낮에 필 때와 달리 좋았다. "좋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최근 자주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담배를 핀다. 어떤 날은 반 갑 정도 핀다.

물론 다시 목에 가래가 끓고 손가락에서 심한 냄새가 나고 손톱 밑에 니코틴 때가 낀다. 화장실에도 자주 들락거린다. 그리고 나는 체념과 절망이 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작은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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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18 2012/01/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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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16 2012/01/09 16:16

오늘 부산대 비정규교수노조는 부산지방노동청에 부산대 김인세 총장을 임금 체불 건으로 고소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부산대의 임금 체불에 대한 기자회견문

부산대학교는 2000년부터 2007년 1학기까지 8년 동안 시간강사의 강의료 일부를 지급하지 않았다. 수차례에 걸친 부산대분회의 지급요청에 대해 대학 측은 매 학기 마지막 주는 기말고사 기간이고 기말고사는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강의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기말고사 기간인 학기 마지막 주는 시험감독료만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1시간 분만 지급했다. 이렇게 대학이 지급하지 않은 강의료가 한 학기에 수천만 원이다. 8년 동안 지급하지 않은 강의료를 모두 합하면 수십억 원에 이른다.

<부산대학교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규정>에는 학생의 수업 시수 이수에 대해 “이론과목은 주당 1시간 15주 이상의 수업을 1학점으로 편성하고, 실험․실습 및 실기 관련 교과목은 주당 2시간 15주 이상의 수업을 1학점으로 편성한다.”고 명시 되어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부산대 학생은 예외 없이 매 학기 15주 이상의 수업을 듣지 않으면 학점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졸업할 수도 없다. 지난 2007년 1학기까지 모든 교수와 시간강사가 기말시험만 치르고, 3학점 과목의 경우 나머지 2시간은 수업을 하지 않았으니 학생들에게 불법으로 학점을 주고 책임 시수를 이수하지 못한 학생들을 졸업시킨 셈이다.

부산대학교는 2007년 11월 부산대 시간강사들이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를 설립하자 부랴부랴 그해 2학기에는 정상적으로 강의료를 지급했다. 2007년 2학기부터 정상적으로 강의료를 지급한 근거를 묻자 대학 측은 2007년 1학기까지는 각 학과로 발송한 “기말고사 시행계획 통보”라는 공문에 기말고사와 별도로 나머지 시간에 수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언급이 없었지만 2007년 2학기에는 ‘기말고사 기간 중 교과목별 시험시간 외에는 수업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강의료를 모두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산대의 이러한 주장은 부산대의 <강사료 지급규정>에도 어긋난다. 대학 측이 들고 있는 2007년 1학기 이전과 2007년 2학기의 <기말고사 시행공문>은 대학이 그 동안 규정을 어기고 불법을 저질러왔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사례다. 어떻게 규정을 바꾸지도 않고 규정보다 하위에 속하는 공문에 “기말고사 기간 중 교과목별 시험시간 외에는 수업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문구 하나를 삽입하였다고 하여 이전에는 지급하지 않았던 강의료를 지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부산대의 이러한 처사가 다른 어느 지역 국공립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부산대는 그 동안 지급하지 않은 시간강사의 강의료를 조속히 지급할 것과 수십억에 달하는 미지급 강의료의 사용처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 부산대와 부산대 총장은 부산대의 행태가 불법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부산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2009년 4월 29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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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13 2012/01/09 16:13

벼룩의 간을 빼먹은 국립대학교 (Ohmynews 2009. 4. 3)
부산대는 왜 시간강사 강의료를 다 지급하지 않았나

공사판에 가면 일용잡부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노가다'라 불리는 이들의 하루 일당은 대략 7만~10만 원선이지만 소개료·교통비 따위들을 빼면 실제로는 5만 원 정도를 손에 쥔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최하층에 속한다.

대학에는 '시간강사'가 있다. 이들은 특정한 대학에서 일하지만 그 대학이 그들의 직장은 아니다. 이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당조차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알바생'처럼 한시적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실제' 강의 시수에 의해 강의료를 받는다. 리포트 평가라든지 시험 채점과 성적 처리, 거기에 학생 상담 등은 결코 '실제로' 한 것이 아니다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 시간은 주 4.2시간이고 평균 연봉은 487만5000원이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다. 반면, 2008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는 월 126만5848원이다. 전국에 이런 강사가 7만2419명이다.

존경은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

시간강사는 대학의 최하층 계급이다. 이들은 대학의 '노가다'며 '알바생'이다. 계약서 한 장 없이 조교의 전화 한 통으로 학기를 시작하고 조교의 전화 한 통으로 해촉된다. 몇 푼 강의료조차 방학 중에는 아예 없다. 대학의 방학은 얼마나 긴가? 이들은 없어졌다는 보릿고개뿐 아니라 추석고개까지 넘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연구실이 없기 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질문을 하고 싶은 학생이 찾아오면 복도에 서서 간단하게 듣고 답해야 한다. 강사라도 계속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가 있어야 하지만 연구할 여력이 없고, 방학을 틈타 연구를 한다 하더라도 그 성과를 수업에 반영하기도 어려우니 이들에게 수업과 연구는 늘 겉돈다.

학교로부터도, 정규직 교수들로부터도, 학생들로부터도 존경은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놀랍게도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맡고 있다. 이러고도 대학 강의의 질을 논할 수 있을까?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이 사회는 시간강사들이 좋은 강의를 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아, 물론 세상 물정 모르고 간혹 질 높은 강의를 하는 강사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 강사의 눈물겨운 희생 위에 피어난 꽃일 뿐이다. 좋은 강의를 하건 나쁜 강의를 하건 이런 식의 대접밖에 못 받는 시간강사들은 대학에서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 대학의 시험은 무조건 한 시간짜리

부산의 한 국립대학에서는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이 대학은 2000년부터 2007년 1학기까지 무려 7년이 넘도록 기말고사 기간에는 강의료를 1시간만 지급했다. 비정규직 강사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대학에서는 "2007년 2학기부터는 3학점의 경우 시험시간 1시간 외에 2시간은 수업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2시간치 임금을 더 지급했을 뿐이다"고 답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 대학의 시험은 무조건 한 시간짜리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는 한 학기 수업 성과를 엄밀히 평가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시험을 친다는데 이 대학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물론 그래도 되지만 강의료는 없다. 다른 대학들은 시험기간에 시험만 치더라도 그 주의 수업 시간까지 쳐서 강의료를 지급하지만, 저 대학은 한 시간 시험만 쳤다면서 강의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두 시간 이상씩 열심히 시험을 치른 강사들, 억울하겠다.

그랬던 그 대학이 2007년 2학기부터는 기말시험 기간에도 수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강의료를 준단다. 기말시험 기간에는 시험 준비 하느라 학생들이 바쁘다. 그 와중에도 수업을 하라고? 아무리 대학이 막나간다 해도 설마 몇 푼의 강의료가 아까워서 그랬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험기간이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열심히 수업을 해야한다는 의미일까? 학생들 위하는 마음이 하늘을 찌른다.

정문을 쇼핑몰 출입구로 바꾼 대학?

그러니까 초점은 이렇다. 2007년 1학기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기준은 강의료 지급 여부가 아니라 수업 여부고, 수업을 하지 않았으니 강의료를 주지 않은 것이고, 수업을 했으니 줄 뿐이라는 것. 그런데 왜 자꾸만 초점이 강의료 지급으로 보일까?

이 대학이 시간강사에게 배정하고 있는 예산은 전체 예산에서 3%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강의는 45%를 맡기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증액하거나 강사를 줄이는 두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저 대학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정규직 교수들이 더 많은 강의를 맡을 것을 강제하고 분반 확대를 불허했으며 2010년부터는 박사 학위 소지자만이 교양과목을 담당하도록 했다.

교수의 연구 시간보다 시간강사 임금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수업 환경이 나빠지더라도 강사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듯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사 학위 소지자만 강의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드디어 대학원조차도 없애버릴 태세다. 참, 듣자하니 저 대학에서는 얼마 전 대학 정문을 아예 쇼핑몰 출입구로 바꿔버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빠뜨린 게 있다. 사실은 나도 그 대학의 시간강사다. 그리고 그 대학은 '아시아로 세계로' 국립부산대학교다.

덧붙이는 글 | 부산대학교는 2000년부터 2007년 1학기까지 3시간 강의료 가운데 매 학기 마지막주 강의료는 시험 감독료라는 명목으로 1시간 분만 지급했다. 대학 측은 기말시험은 (3학점의 경우 3시간 강의를 하지 않고) 1시간 시험만 치렀기 때문에 시험 감독료만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산대학교 비정규교수노조는 관련 규정에 대한 법률 검토를 마치고 부산지방노동청에 총장을 임금 체불건으로 고소 고발할 예정이다.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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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10 2012/01/09 16:10

블로그에 글쓰기는 한 번 버릇을 들이면 계속 이어지지만, 한 번 마음이 멀어지면 글쓰기도 점점 멀어진다. 마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블거그뿐만 아니라 홈페이지건, 다른 웹사이트의 게시판이건 온라인에서의 글쓰기는 노트에 끄적거리는 글쓰기와, 또는 노트북에 저장해둔 일기 파일을 열고 자판을 구들기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좀 덜 사적인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따라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대학의 신문이나 이러저러한 매체에서 청탁을 받고 쓰는 글과 이런 종류의 글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떤 글이 더 나은 글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내킬 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로그는 편하다.

나는 여기 알라딘에서,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주제별로 정리하여 제공하고 있는 블로거들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노고를 가상(嘉尙)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그렇게 칭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을 세세하게 올리고 있는 블로그를 접하게 되면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일종의 노출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편인가? 나의 블로그는? 나의 글쓰기는? 아, 나는 잡종이 아닌가? 아직 진화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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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05 2012/01/09 16:05

파괴가 없으면 생성도 없다. 이 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파괴가 긍정될 수도 있는가? 생성은 반드시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가? 파괴는 나쁘고 생성은 좋은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단순한 생각이 어느새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언젠가, 아마 10년도 더 전에, 잘 알고 지내던 전교조 선생님들과 저녁을 겸해 담소를 나누던 중, "학교가 무너져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왔다. 좀 썰렁하던 상황에 내가 아마 이런 말을 덧붙임으로써 완전히 분위기를 망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공교육이 죽어야 학교가 산다."

물론 내가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사교육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했던 말은 결코 아니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이 말은 사실, "교육개혁은 사회개혁이다"는 말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고 세월이 좀 흘러 나는 생계를 핑계로 한쪽 발을 사교육 시장에 담그고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그 때 험악한 분위기에서 상황을 부드럽게 정리해준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허허 이거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이시는구만" 하고 껄껄 웃었다. 나는 이미 학교가 무너지고 교육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만 선생이 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비정규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강의를 하면서도 나는 자꾸 방향을 잃고 만다. 나는 여기 왜 이렇게 서 있는 것일까? 이 모순덩어리의 현장에 나는 왜, 무슨 열망으로 존재하는가? 나는 답을 찾고 싶다.


시간강사 처우개선 외면한 대학자율화
(경향신문 입력: 2008년 09월 18일 00:11:57)

대학에 개설된 모든 강의의 셋 가운데 하나는 ‘시간강사’가 맡는다. 학생들은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대학은 교수로 보지 않는 경계인이 시간강사다. 학자로서 이 대학 저 강의실을 전전하며 대학생을 가르치는 게 본업인 이들에 대해 교육법은 대학교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박사학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도 제외됐다. 전임교수 임금의 20%를 받으며 전체 대학 교양강좌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박사 시간강사가 5만명이 넘는다. 세계적인 대학육성이 요란한 요즘에도 이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엊그제 확정 발표한 대학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과제에서도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는 어디에도 없다. 교과부는 교원 직급을 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3단계로 줄여 ‘전임강사’를 없앴다. 전임교수인데도 ‘강사’라는 명칭이 ‘시간강사’란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배려한 것이다. 교과부가 교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정책적 배려를 한 것은 가상하다. 문제는 그들이 없으면 대학이 굴러가지 못하는 시간강사의 사기 진작에 대해선 왜 이처럼 무심한가 하는 점이다.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해선 그들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 단지 ‘돈 타령’에 진전을 보지 못할 뿐이다. 대학은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고, 정치권은 사학 눈치보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결코 돈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안전망의 문제이자 우리나라의 지적 수준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시간강사를 지금처럼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젊은 지성은 학문의 길을 멀리하게 되고, 지식의 곳간은 바닥을 드러낼 터이며, ‘세계수준 연구중심 대학 육성’(WCU) 사업은 쭉정이 구상이 될지 모른다. 시간강사의 처우개선과 사기 진작을 우리 사회가 시급하고도 절실한 교육투자로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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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6:04 2012/01/09 16:04

서울에서 나이트클럽 화재로 소방관 3명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형 참사건 소형 참사건, 인재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적어도 한국에서 죽음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어제 경향신문의 <여적>을 읽다, 갑자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제목은 "소방관"이었다. 나는 소방 공무원의 급여 수준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 이들이 화재 1건당 받는 수당이 불과 3,600원이라고 한다. 필자인 김학순 기자는 "목숨을 걸고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예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사실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똑똑이 콤플렉스와 둔재 열등감이 지배하는 사회다. 다들 자기 아이는 영재라고 생각하거나 영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들도 똑똑한 아이들을 좋아한다. 둔한 아이들은 상대하기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학원 안 다니는 아이는 이상한 아이 취급받는 사회(아이 학원 안 보내는 부모는 더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한다)라 누구나 할 거 없이 다들 아이들을 학원 보내는 것이 상식이 된 사회. 학교에서는 더 가르칠 게 없기 때문에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할 수밖에 없는 기이한 교육 현실을 가지고 있는 나라.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못 다니는 소수의 아이들은 학교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머리가 좋고 학교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나와 고시라도 볼 정도가 되어야 사람 취급을 받는 나라. 그 중에서도 검사나 판사 정도는 되어야한다. 경찰 공무원이나 소방 공무원은 저 밑에 널려있는 둔재들이 그나마 악다구니 쓰며 머리 굴려야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좋은 직업이 되었다. 직업의 위계가 그 나라 정신구조의 위계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지난 5월인가 서울대학교에서 "인문대학 진단평가"라는 걸 실시하고 그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진단평가 보고"라는 보고서의 "시간강사"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에서 제공되는 학부 전공 과목에 관한 서울대 전체 만족도를 조사한 교무처 자료에 의하면, 인문대학은 2006학년도 1학기에 평점 4.08로 전체 단과대학 2위, 2006학년도 2학기에는 평점 4.10으로 3위, 2007학년도 2학기에는 만족도 평점이 4.13으로 전체 2위를 차지하였다. 이 자료는 인문학 위기론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맞서서 인문학 중흥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인문대학 교수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문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은 시간 강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자료1>을 통해 볼 때, 실제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학생의 수는 전체 수강생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행정실에 따르면, 비겸직(전업) 시간강사들은 시간당 42,500원 겸직(비전업) 시간강사들은 시간당 30,000원의 강사료를 지급받고 있다.

열악한 처우를 받는 강사들 보다는 정당하고 적절한 보수와 좋은 근무 환경을 보장 받는 강사들이 학생들의 교육에 더욱 더 헌신할 것이며, 헌신적이고 동기 부여된 시간강사들이 훨씬 더 양질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시간강사들을 우리들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동일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며 우리들의 학문활동의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인식에 부합하는 실제적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관점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대학의 규정집에서 실려 있는 '위촉장'이다. 대학의 비정규교수인 시간강사는 대학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부산대학교의 경우 "시간강사에 관한 규정"을 보면 이런 항목이 있다.

제4조 (시간강사의 위촉) ①시간강사는 매학기마다 학과장의 추천으로 대학(원)장의 요청에 의하여 총장이 위촉한다.
②시간강사를 위촉할 때에는 [별지 1] 서식에 의한 위촉장을 교부한다.


규정집에 실려 있는 "위촉장"은 아주 단출하다. 맨 위에 "위촉장"이라고 되어 있는 그 아래 "귀하를 ○○. ○학기 시간강사에 위촉합니다. 년 월 일 부산대학교 총장" 뭐 물론 나는 한 번도 이런 위촉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에 고용된 자이면서 고용과 관련한 어떤 권리와 의무 조항을 들어본 기억이 없고, 그런 규정도 없다. 경북대학교는 비정규교수노조와 학교가 단체협약을 맺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비정규교수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명시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많은 시간강사들은 자신의 고용조건뿐만 아니라 타 대학의 강의료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는 시간강사의 강의료가 다른 국립대와 달리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비정규교수노조가 없는 국립대의 경우 강의료는 동일하게 42,500원이다. 다른 업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급여의 50%에서 70%를 받는 반면 대학의 시간강사는 전임교수의 급여에 비해 5배에서 8배까지 차이가 난다. 전임교수의 평균 연봉이 4천500에서 5천이다(명시된 부분만 고려할 경우). 대학 시간강사가 전임교수 급여의 50%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최소 8만5천원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지금 국립대 시간강사 강의료는 2배로 인상되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차별이 존재한다. 시간강사는 대학에 연구실이 없다. 공동연구실은 말이 연구실이지 독서실 수준이다. 부산대 인문대에는 300여명의 시간강사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자재는 컴퓨터 2대, 프린터 1대, 복사기 1대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서울대에서는 요즘 시간강사를 모두 1년에서 2년 단위의 계약직인 “비정년트랙”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안이 공개되어야 시비를 가릴 수 있겠지만 대학의 치부와 같은 문제를 또 다른 형식의 차별로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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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55 2012/01/09 14:55

올해는 대통령 덕분에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되돌아 보게 된다. 아직 올해가 다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나? 이런 기사를 접하면 새삼 놀라기도 한다. 아! 역사의 수레바퀴가 꺼꾸로 돌 수도 있구나..... 이런 한탄, 혹은 자조.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를 상대로 한 네티즌들의 `광고중단 운동'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 수사팀'(구본진 부장검사)은 19일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개설자 이모 씨 등 운영진 6명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기사인데, 나는 오늘 "'인터넷 신뢰저해사범"이라는 사법 조항을 처음 알았다. 이건 마치 "국가보안법"을 모방한 "인터넷보안법"의 일종이 아닐까? 도대체 누가 이런 발상을 한 것일까? 국가보안법을 한때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불렀다. 동료나 친구와 주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 하다 욱하는 심정에 "이놈의 나라 ~ 이러쿵저러쿵" 했는데, 옆자리 손님이, 혹은 주인이 경찰서 전화해서 바로 잡혀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 조카는 이런 말하면 "삼촌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라"고 우긴다. 과학기술부에서 이번에 초중고 교장들 모아놓고 안보교육 한다는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란다. 나는 이 "올바른 국가관" 때문에 초등학교 때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었다. 바로 "국민교육헌장"과 "애국가"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사는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이런 내용의 종이 쪼가리가 붙어 있기에 떼어 가지고 가서 조카들에게 보여주었다.

체제비판 등 이적행위자로 의심되는 사람

- 한국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혁명선동과 체제부정을 주장하는 사람
- 북한 통일노선, 주체사상을 은밀히 찬양, 선전하는 사람
- 공산주의 사상학습 등 불순모임을 주동하거나 폭력투쟁 선동 등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사람
- 불온 유인물을 제작, 소지, 배포하거나 화염병, 폭발물을 제조, 소지한 사람
- 불법 폭력적인 노사분규를 배후 선동하며 체제 비방하는 사람
- 계급의식을 고취하며 민중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사람

 

"삼촌, 삼촌 나 이런 사람 많이 봤다. 신고하면 얼만데?"
막내 조카는 신고하면 돈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하는 모양이다.
누나 왈, "니 바로 옆에도 있네. 너거 삼촌이 그런 사람아이가."
"응 그래 신고해라. 내가 잡혀갈 테니까 돈 받으면 갈라 쓰자."
조카가 찌라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휙 집어던지고 하는 말, "그런데, 좌익세력은 얼마 주는지 안 나와 있네. 돈도 안 줄거면서 이런 건 왜 있는데, 짜증."

조카 말에 의하면 요즘은 아이들이 대부분 애국가를 4절까지 다 외우는데, 못 외우면 맞기 때문에 외우는 것이 아니라 수행평가라서 어쩔 수 없이(?) 외운단다. 저렇게 발랄한 아이들에게 국가의 억압이 어쩌구저쩌구 한들 먹혀들까? 하지만 문제는 억압이 아니라 내면화다. 나는 그게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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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51 2012/01/09 14:51

친구의 시나리오에 대해 소감을 이야기해 주면서 아고타크리스토프의 <50년간의 고독>에서 이 부분을 인용해서 보내주었다. 나는 어떤 글이건 자신의 머리를 굴려 창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비롭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제일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 .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들은 내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가르쳐준다. 그녀는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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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42 2012/01/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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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불꽃, 촛불들. 나는 그 촛불이 21년 전, 그리고 17년 전 거리에 내려 꽂혔던 그 꽃병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와 증오심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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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40 2012/01/09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