헙... 역시 뒷북이었나요... 여튼 정치철학이라고는 하지만 정의라는 주제는 법학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다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해요. 목적론적 정의관이라는 것을 은근히 가지고 있는 샌델인듯 한데, 거기다가 미국식 정의관이라는 편견을 아예 제끼고 보는 것도 어렵고... 뭐 그렇더군요.
저도 그 분 글을 읽었는데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물론 저는 센델을 안 읽었지만) 필자가 센델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센델에게 중요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개념이고 우리 진보진영에서 공동체라고 하면 진보라고 착각하는 천박한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는 arete에서도 나타나듯이 공동체가 개인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려주는 기능을 합니다. 물론 arete가 남성적 미덕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그리고 개인의 선이나 행복의 범주가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선이 선이라고 결정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칼 폴라니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개념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폴라니의 경우에는 자유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것이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는 사회에 귀속되어야한다는 주장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혹은 서로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잠재성을 최대한으로 발현시켜주는 공동체의 개념을 인습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동체 개념과 등치시키는 대담한 주장을 하고있더군요.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사실 법학적 차원에서라면 샌델의 논의가 더 쉽게 수용될 수도 있죠. 국제법적 측면은 차치하고 국경을 물리적 외곽으로 정형화하고 있는 법률의 논의에서라면 샌델의 논의는 말 그대로 가장 상식적 차원의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것이 '공동체'라는 범주까지 갔을 때, 과연 그 공동체가 가지는 정의라는 것을 '공동체'로 한정된 범주 바깥까지 연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새로운 한계가 드러난다는 거죠. 만일 이 한계를 무시한다면 가장 보수적 담론으로 점철된 법학의 분야에서 법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오게 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바로 지금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법에 대한 논의는 전복이냐 아니냐 이외의 논의가 무용해진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이건 님이 지적하신 아리스토텔레스적 공동체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데요, 닫힌 계로서의 공동체 개념을 넘는 어떤 정의 혹은 사해동포의 관점에서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공동체에 적용되는 정의가 가능한지 여부가 또다른 관심사가 된다는 거죠. 아무튼 기왕에 '정의'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촉발된다면, 그것이 샌델의 공적이든 뭐든 간에 이런 진전된 관심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