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 오옷... 실시간 리플... 좀 전에 이 시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버렸어요. 그 기분이란... 단어의 선택이나 문장의 앞뒤를 놓는 과정에서 살짜쿵 아쉬운 면이 보이긴 하는데, 그건 몇 번을 읽은 다음의 일이었죠. 고3이면 18~9세인데... 행인은 그 때 이런 글을 써본 적이 없었죠. 지금도 그렇고... 에구... 진짜OTL...
사실 행인님 정도의 세대에서도 저런 시는 이미 나왔어요.
예를 들어 1988년 전남대 주최 5월 문학상에 당선된 박용주 시인의 <목련이 진들>이라는 시가 대표적이죠.
이 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시인데, 5월 광주항쟁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박용주씨는 광주 출생)
어떤 이는 이 시가 대단한 시인의 작품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놀랍게도 이 시가 전남대 문학상에 당선되었을 때 박용주는 15살이었습니다!
박용주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이 시를 썼다고 하는데, 기라성같은 대학생 시인들을 제치고 상을 받았었죠.
이후에 박용주씨가 고등학교 때 낸 시집인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를 보면 진짜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저도 시를 쓰던 입장에서 당시 이 사람의 시들 보고 거의 좌절...
근데 문제는 이 시인이 그 이후로는 전혀 시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여기에 소개되는 고등학교 시인도 그러지를 않길 바랄 뿐이죠.
너무 일찍 조숙한 감수성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음...단지 나이가 어린 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그냥 저 맛깔나는 말투라든가, 그 시대 사람에게 자신을 대입하는 느낌, 그 능청맞음...그래서 저 언니랑 케산님이 인용하신 박용주 씨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뭔가 뜨겁다/차갑다 처럼 딱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대조되는 느낌이랄까..
첨언하자면, 윗글의 여고생이 차용한 시풍은 이미 광주항쟁 이후부터 그 아류작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박용주씨의 시는 그 시를 흉내내려하는 수많은 아류시들을 쏟아내게 했음)
특히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해서 맛깔을 돋우는 것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타지 사람들은 그 사투리에 재밌어하면서 문학외적인 평점을 주곤했지만 그런 형식미를 제하고 나면 실내용들은 그다지 양질의 것들이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저도 한동안 전라도 사투리를 차용해 시를 쓴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위 여고생의 시를 보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샤님도 지적했는데-시의 끝마무리가 완결적이지 않고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는 점입니다.
이건 이 고등학생 시인이 애초부터 자신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했던 것을 역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여고생 시인이 기존 민중시인들의 작풍과 별로 차이가 없는 또하나의 시를 만들어 보태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미숙한 언어일지라도 현대적인 언어와 참신한 발상을 가지고 제한적인 자신의 인식수준이나마 형상화하는 연습을 더 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자신의 언어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용주씨의 시는 자기 자신이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별루 문학외적인 요소-전라도 사투리의 향취-에 기대려 하지 않고 현대적인 언어로 자신만의 냄새가 나는 시를 썼다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애송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위 여고생의 시를 보면, 이 고등학생 시인이 차용한 일종의 '귀신의 모티브'란 것은 아주 많은 시인들이 왕왕 자신의 현실에서의 문학적 형상화 능력의 빈곤을 가리는 유혹적인 구조로 남발했었습니다.
근데, 미리부터 이런 나쁜 습관을 어린 시인이 배운 것은 시인으로서의 성장에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이런 식으로 재주는 있으되 자신의 언어가 없어 중도에 사라진 수많은 어린 시인들을 너무 많이 봐왔던 지라 노파심에서 몇 자 적습니다.
케산/ 그렇습니다. 제가 시를 옮겨놓은 것은 제가 받은 감동때문입니다. 어설프게 시에 대한 평론을 할 푼수가 되지 않기에 그냥 그 느낌만 가지고 시를 올렸습니다.
시를 전공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 저도 글을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만, 딱딱한 논문들의 말꼬리를 잡는 것과 문학을 소재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많이 다른 듯 합니다.
박용주라는 이름은 몰라도 옮겨주신 시는 눈에 익군요. 저 시도 참 좋습니다. 왜 좋은지를 설명하라면... 역시 그건 잘 안 되겠군요. 명멸해간 수많은 천재들이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진력을 다하여서인지 나이들면서 그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사례가 많다는 것은 문외한인 저도 그런듯 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 그릇에 따른 것일 뿐, 이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것은 별개로 제 주제에서는 가타부타 말할 거리가 없습니다.
케산님 덕분에 시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된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제가 케산님만큼 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건 좋은 거대로 느낄 뿐이고, 제 스스로 그 이상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케산님의 그러한 '노파심'이 저 시인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건 분명 아끼고자 하는 마음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