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황망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닥 할 말이 없었더랬는데 간만에 기사검색하다보니 기가차서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 문성현... 한때, 운동판에서 "문단심"으로 축약되던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잊고 지내던 그 이름을 프레시안 기사에서 보게 되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하던 말던 그거야 개인적인 일이므로 가타부타할 필요야 없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성현의 발언은 그냥 넘어가기가 곤란하다.
- 우선,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은 단지 두 단어로 요약 정리가 충분하다. 무능력, 무책임.
- 원내 2기 당 지도부의 중추에 있었던 문성현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도대체 왜 당대표가 되었을까? 그 의문은 여지껏 풀리지 않는다.
- 그가 당 대표로 재임하고 있었던 때에,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미 FTA와 평택, 비정규직법 3종세트, 북핵이며 기타 등등...
- 돌이켜보면 당은 내내 무력했다. 정책이 없거나 조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깃발이 없었다는 것. 적어도 지도부라면, 그것도 당 대표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당내 정리를 하고 당외 활동을 진두지휘했어야 한다.
- 그러나 문성현은 그렇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두어 차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는 것은 곤란하니 대표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때마다 그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렇게 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 봐."
- 처음에는 그가 뭔가를 하고 싶어도 당내 역학관계 때문에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무능력하고 무책임했을 뿐이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그는 정당활동이라는 것, 그것도 원내에 진출한 정당의 대표가 해야할 일이 뭔지를 모르고 대표를 했었다는 것. 그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여기서 출발한다.
- 그리고 그러한 지도력의 부재는 결국 당이 파열되는 부가요소로 충분히 작동했다.
- 그런데 이제 와서, 그는 그 때를 회고하며 "어떻게 보면 우리는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결국 그의 무책임과 무능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 망자에 대한 덕담을 넘어, 이것은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모욕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역할분담"의 쑈를 위해, 그렇게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야 했던 것이었나?
-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그것을 어떠한 차원에서도 "역할분담"이라고 여겼던 적도 없었거니와 그렇게 느낄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것이 "역할분담"의 차원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의 탈당은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 어느 순간, 적대적 관계였던 과거가 실은 암묵적 공조관계였었다는 고백이 늘어난다. 그런가? 물론 행인 역시 90년대를 통틀어 관심있게 바라보던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 노무현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고백이 가지는 의미는?
- 노무현이 원칙주의자였다고 한다면, 그를 제대로 보내주는 방법은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자들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주는 것이다.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덕담을 가장한 자기위안은 종래 자신들과 함께 했던 살아있는 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거다. 차라리 그런 면에서 변듣보나 조갑제나 김동길은 노무현만큼이나 원칙적인 자들이고. 문성현은 이 차원에 비추어보자면, 변듣보나 조갑제나 김동길만큼도 안 되는 사람이었던가?
- 그렇잖아도 꾸리꾸리한 감정이 아주 개떡이 되고 있다. 졸지에 문성현의 "역할분담"을 위해 허구한 날 밤샘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로 전락한 이 기분. 솔직히 좀 더럽다.
- 지금 이 순간, 박종태 열사의 명복을 빈다.
- 문성현... 한때, 운동판에서 "문단심"으로 축약되던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잊고 지내던 그 이름을 프레시안 기사에서 보게 되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하던 말던 그거야 개인적인 일이므로 가타부타할 필요야 없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성현의 발언은 그냥 넘어가기가 곤란하다.
- 우선,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은 단지 두 단어로 요약 정리가 충분하다. 무능력, 무책임.
- 원내 2기 당 지도부의 중추에 있었던 문성현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도대체 왜 당대표가 되었을까? 그 의문은 여지껏 풀리지 않는다.
- 그가 당 대표로 재임하고 있었던 때에,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미 FTA와 평택, 비정규직법 3종세트, 북핵이며 기타 등등...
- 돌이켜보면 당은 내내 무력했다. 정책이 없거나 조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깃발이 없었다는 것. 적어도 지도부라면, 그것도 당 대표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당내 정리를 하고 당외 활동을 진두지휘했어야 한다.
- 그러나 문성현은 그렇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두어 차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는 것은 곤란하니 대표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때마다 그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렇게 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 봐."
- 처음에는 그가 뭔가를 하고 싶어도 당내 역학관계 때문에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무능력하고 무책임했을 뿐이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그는 정당활동이라는 것, 그것도 원내에 진출한 정당의 대표가 해야할 일이 뭔지를 모르고 대표를 했었다는 것. 그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여기서 출발한다.
- 그리고 그러한 지도력의 부재는 결국 당이 파열되는 부가요소로 충분히 작동했다.
- 그런데 이제 와서, 그는 그 때를 회고하며 "어떻게 보면 우리는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결국 그의 무책임과 무능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 망자에 대한 덕담을 넘어, 이것은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모욕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역할분담"의 쑈를 위해, 그렇게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야 했던 것이었나?
-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그것을 어떠한 차원에서도 "역할분담"이라고 여겼던 적도 없었거니와 그렇게 느낄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것이 "역할분담"의 차원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의 탈당은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 어느 순간, 적대적 관계였던 과거가 실은 암묵적 공조관계였었다는 고백이 늘어난다. 그런가? 물론 행인 역시 90년대를 통틀어 관심있게 바라보던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 노무현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고백이 가지는 의미는?
- 노무현이 원칙주의자였다고 한다면, 그를 제대로 보내주는 방법은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자들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주는 것이다.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덕담을 가장한 자기위안은 종래 자신들과 함께 했던 살아있는 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거다. 차라리 그런 면에서 변듣보나 조갑제나 김동길은 노무현만큼이나 원칙적인 자들이고. 문성현은 이 차원에 비추어보자면, 변듣보나 조갑제나 김동길만큼도 안 되는 사람이었던가?
- 그렇잖아도 꾸리꾸리한 감정이 아주 개떡이 되고 있다. 졸지에 문성현의 "역할분담"을 위해 허구한 날 밤샘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로 전락한 이 기분. 솔직히 좀 더럽다.
- 지금 이 순간, 박종태 열사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