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욕나온다

2009/09/29 13:28

가끔 그런 일이 있는데, 소위 좌파 혹은 진보라고 하면서 전혀 그런 가치지향과는 먼 이야기를 마치 진짜배기 좌파 혹은 진보의 입장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웬만하면 그냥 넘길려고 해도, 이런 사람들보면 욕이 튀어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오늘 또 그런 현상을 겪는데, 프레시안에 올라온 김명신의 글을 보다가 그렇게 되었다.

 

"음악, 미술, 체육이 위험하다"는 제목의 글에서,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의 공동회장씩이나 하고 있는 김명신은 교과부가 제시하는 소위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해 비판하면서, "조화로운 인격체 양성"이라는 교육의 대명제가 무너질 것을 걱정하다가 급기야 '사회적 교육과정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정부의 새로운 교과과정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강화해서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야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MB정권에서만 나왔나? 과거 세칭 '이해찬 세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수행능력이 떨어졌다는 둥 어쩌구 하면서 혹평 일변도였고, 그 와중에도 입시교육의 문제로 모든 비판은 집중되었었다. 새삼스레 "MB형 교육과정!" 운운하면서 느낌표까지 붙여주는 센스는 왠지 구리다.

 

아닌 말로, 대한민국에서 교육운동하신다는 분들, 내가 아는 한 극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민교협이고 전교조고 무슨 학부모 모임이고 간에 교육의 궁극적 단계를 '대학'이라는 학제에 맞춰두고 운동이란 걸 해왔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들의 교육운동이라는 건 기껏해야 "내 새끼 대학 잘보내기 운동"의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대학은 누구나 원할 때 언제든 자신이 목표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12년 간 초중고를 마친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이 이상한 구조다. 이 이상한 구조에 대해서 교육운동하는 활동가들이 문제제기한 것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거의 거의 거의 거의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교육운동이 "교육"운동인지 교육"운동"인지 헷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명신의 이번 글 역시도, 구구절절히 입시준비하는 학생들에 대한 염려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얼핏 보인다만,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질문만 남게 한다. 어차피 고교졸업생의 90%에 육박하는 숫자의 학생들이 바로 대학진학을 하는 마당에, 어떤 교과과정이 만들어지고 어떤 입시제도가 도입된다고 한들 지금의 교육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김명신은 이번 정부의 교육과정개편안이 궁극적으로는 "고교생활을 학원처럼 입시준비만 하고 끝"내게 만들 거라고 주장한다. 이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거다. 그렇게 고교생활을 걱정하시지만 말고, 교육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적 학력차별철폐운동을 먼저 펼쳐보심이 어떤가 하는 거다.

 

'청년실업'의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발견한 웃기는 사실은 그 '청년'들은 대졸자들이었다는 거다. 한국에서 문제가 된 '청년실업'에 대학학력 미만의 청년들은 열외인간취급을 받았다. 한때, 상고 졸업해서 은행에 취업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는데, 불과 20년만에 은행창구직원들은 죄다 4년제 대학 졸업자들로 대체되었다. 국제기능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얻은 공고생들이 사회에 나갔다가 사환취급만 받다가 결국대학진학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요새 조선일보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닌 말로 한국 교육운동하시는 분들이 조선일보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의 숨은 목적이 뭐든 간에 이렇게 조선일보는 아젠다를 선점하는 능력이 있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단순 오퍼레이터 노릇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애들이 죄다 대졸자가 되어 있는데 눈높이를 낮추라는 뜬금없는 소리만 해대는 이명박이나 마찬가지로, 도대체 18세 이상이 되어서도 캥거루처럼 자식을 품고 있어야만 하는 이 희한한 구조에 대해선 왜 교육운동하시는 분들이 말씀이 없을까? 이 와중에 무슨 핀란드식 교육이 어쩌구 저쩌구... 핀란드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애들의 9할이 바로 대학진학하던가?

 

그러다보니 김명신의 이번 글 같은 것을 보게 되면 냉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으로 모든 시간을 다 보내는듯 하지만 정작 그 청소년들의 장래보다는 대학진학에 더 신경을 쓰는 교육운동. 까놓고 이명박 정권의 교육부와 뭐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판에 무슨 얼어죽을 '사회적 교육과정 위원회'? 솔직한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같잖다. 정말 같잖아보인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작업(논문) 끝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한국 교육운동이 가지고 있는 이 기괴함에 대해 분석해보는 거다. 사회적 학력차별에 대해선 적극적인 문제제기 하나 없으면서 교육운동이라고 하고 있는 분들의 정신상태를 들여다보고 싶다.

 

할일 정말 많구나... 게으른 것이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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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교과부, 교육운동, 김명신, 차별철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