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의 복잡함에 마주하여 머리 속이 마구 헝클어질 때, 심호흡을 하면서 내 기준을 다시 살피는데, 내가 비록 겉핥기 수준이긴 하지만 나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존심 덕분에 전공과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의 틀이 있다.
전공과 관련하여 내 오랜 숙제(멋진 말로 하면 '화두'쯤 되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멋진 말이 내겐 가당찮은 거 같으므로)는 이론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인권이었고, 실천적 차원에서는 정치의 동학과 주체의 삶이었다(하,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제법 거창해 보이긴 하다).
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이 민주주의의 특성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효율과 비용을 이야기하는 것에 극도로 주의했다. 비록 대의제가 현실 민주주의의 절차적 대세가 될 수밖에 없고, 그 대의제야말로 민주주의를 비용대비 효율에 기반하여 다루는 대표적 사례임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물론 비용 대비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긍정적이기에 민주주의의 장점이 거기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 미래에 지금의 나비짓이 태풍이 될지 아니면 지진이 될지를 예측할 수 없다. 그저 지금 이렇기에 이러하다는 면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난 대의제의 효용은 그것이 그나마 현실에서 가장 합의 가능한 범주를 구획한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비용과 효율의 측면이 아니라. 주의해야 할 점은 대의제가 정형화된 형태로 고착되고 거기에 관료주의가 결합하면 효율과 비용의 문제를 이유로 정치를 질서와 치안의 문제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한때 진보진영에서 직접민주주의 3종 세트(발안권, 소환권, 투표권) 도입을 진보적 정치개혁과제로 들고 나온 적이 있다. 난 한국 정치현실에서 직접민주적 제도들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진보적 정치개혁과제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직접민주제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각 제도들, 예컨대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제는 돈 없고 힘 없는 데모스들이 써먹기보다는 돈과 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기득권층에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이걸 자꾸 진보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 더구나 직접민주제는 대의제의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동원될 수 있다. 유신헌법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킨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난 이런 문제의식을 이 블로그에 여러 경로로 밝힌 바 있다.
직접민주적 제도들이 필요한 이유는 대의제가 강화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정치를 질서와 치안으로 치환하는 부작용을 제어하는 장치로 역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민주적 제도들이 민주주의의 본원적 특성, 즉 어쩔 수 없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고비용일 수밖에 없는 특성에 더 부합하기도 하고.
그래서 난 지금도 대의제의 대체제로서 직접민주제를 제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공동체의 규모, 의제, 주체의 구성 등에 따라 절차적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선거제, 추첨제, 숙의제, 만장일치제, 직접소환 등 제도를 맞춰서 사용하면 된다.
민주주의의 어지러움은 주체에서도 나타난다. 난 뭐든 일단 누가 그 말을 하는가, 누가 그 일을 하는가를 먼저 살핀다.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더라도, 그가 누군지에 따라 일단 판단의 시간과 방향이 달라진다. 조선일보가 분절화된 노동의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다고 할 때, 윤석열이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때 그 내용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일단 이런 싸패들의 말은 판단과 결정을 유보한다.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정치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막상 데모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단적으로 이거다라고 하기 어렵다. 이미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한 데모스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권리의 행사를 보장받은 사람, 공동체에서 일정한 발언권을 가진 사람, 국가 안에서 주권을 부여받은 사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데모스라는 개념 자체는 민주주의, 혹은 민주정이라는 실체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그들은 일정한 제도적 기준에 근거한 권리가 부여되기 이전의 존재들이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데, 공동체라는 범주 안에서 민주주의적 질서체계를 유지하는 데 함께하는 사람들은 주권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은 사람들이라서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하여 끊임 없이 기준을 제시하게 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을 공동체 바깥으로 배제하거나 공동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차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체 안에서 권리 있는 자들이 만끽하는 민주주의는 자칫 그들 안의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애초 민주주의가 혼란과 비효율, 고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면, 외부의 주체들과 내부의 주체들이 교합하는 과정의 어지러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최근 한 포럼에서 나는 '근본 없는 민주주의'를 헌법의 체계에서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제를 했다. 여기서 근본 없다는 뜻은 애초 민주주의(민주정) 자체가 데모스에 의한 지배인데, 그 데모스의 본질이야말로 "아르케가 없는"(anarchos) 주체이며 따라서 민주주의는 통치주체의 제한이나 근원적 원리(arche)의 고정성을 부정하는 아르케가 없는 민주주의(an-archos democracy/grdoundless decomcracy)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법과 제도를 공부하면서도 그 경계선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건, 근거 없는 민주주의가 법적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과 어떻게 갈등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이다. 특히 헌법은 체제의 근간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달리 보자면 체제의 정당화 근거(groundnorm)를 찾는 학문이며 따라서 보수성을 강하게 가지게 되는 학문분야다(물론 그렇게 보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기에 체제의 정당성을 찾는 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 즉 권력이 주권자로부터 나왔는지를 확인하는 건 헌법학의 기본이 되는데, '근거 없는 민주주의'를 전제하게 될 때 이것은 기성 질서에 도전하는 배제된 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주권의 행사범위 안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 만일 외부에 부유하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주체들을 주권자의 범위와 그대로 동화하게 되면 사실상 법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붕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고정된 제도가 아닌, 기성 질서 밖으로 배제된 목소리가 체제 안의 목소리와 같은 규모로 밀려 들어올 때 이는 기존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질서의 교란이며 체제 자체가 뒤집어질 수 있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계선 바깥의 목소리를 부각하고 경계선 내부의 목소리와 경합하게 하는 것은 주체의 각성을 필요로 하며, 안팎이 소요하고 경쟁/투쟁하며 그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정치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는 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질서를 교란하며 이 교란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된 치안의 논리와 부딪친다. 이 사태에 직면할 즈음, 어떤 기준으로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를 제대로 수급하지 않아 발생한 선거 오염 사건은 나의 이러한 고민을 다시금 심각하게 재가동하도록 만들었다.
선관위의 문제에 대해선 내가 더 말을 얹을 필요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고, 실제로 선관위의 책임을 묻고 이후 선관위 체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각계의 입장들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정리되지 않는 건 선거 그 자체다. 거리에서는 '부정선거'론자들이 물 만난 것처럼 횡설수설 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수세에 몰린 듯 일단 큰 파도만 피해보자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반면, 제1 야당은 그동안의 내분이 무색할 정도로 대립했던 세력들이 이 사태에 공동대응하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우며 재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 사태의 본질을 뭐라고 봐야 하나? 내가 그동안 공부했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른다면 사태의 해결을 위한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가? 선거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근거로 재선거를 주장하는 저 음모론자 또는 내란잔당들과 연대할 수 있나? 거리로 몰려나온 저 '시민'들의 성격은 뭘로 봐야하나? 저들이 근거 없는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배제 받던 자들인가? 재선거를 하자고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선거소청의 절차로 국한하자고 할 것인가? 소위 진보-좌파세력은 이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제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인가?
나름의 결론은 좀 더 생각해 본 후 내리겠지만, 그 결론이 너무 늦은 시기에 나올까 두렵다. 난 자꾸만 지쳐가고, 이젠 판단력도 떨어진 거 같다. 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숏츠에 뇌가 너무 쩔어서인지 이젠 공부도 하기 싫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