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1/02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1/02/26
    주구장창 밀리는 독서일기
    hongsili

주구장창 밀리는 독서일기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새로운 직장의 장점 ㅋ

의식적 노력 없이도 하루에 한 시간씩은 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어서 행복해요 ㅋㅋㅋ 뭔 소리냐

책은 좋은데 정리는 귀찮고, 정리를 안 하면 좋은 내용과 감흥을 영구삭제하게 되니... 이게 숙제여...

 

# The great influenza: the story of the deadlist pandemic in history (by John Barry, 2005)

 

The Great Influenza: The Story of the Deadliest Pandemic in History

 

내가 뭘 읽은 거냐 ㅋㅋㅋ 인플루엔자는 핑게일 뿐.
역사물을 가장한 과학 아라비안 나이트, 아카데미 버전 무뜬금 사랑과 전쟁, 영웅호걸들의 웨스턴 삼국지냐 뭐냐..
와, 인플루엔자를 다룬 책인데 내내 미국 의학계의 후진성 이야기하다가 90쪽에 와서야 처음 유행 시작됨. 그래서 이제 뭔가 스토리가 나오나 했더니 다시 160쪽 될 때까지 1차 세계대전 미국 뻘짓 이야기 ㅋㅋㅋ 그리고 나더니 이제 수십 페이지에 걸쳐 미국 방방곡곡 유행이 본격화되면서 진짜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이 쓰러져감...  보스턴 외곽 군대 훈련소에서 중서부의 작은 시골, 알라스카의 에스키모 마을까지..  일단 유행이 시작되니 정말 생생하게 비극과 공포와 좌절을 방대한 사료를 이용하여 손에 잡힐 듯이 그려냄...
'재미있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큰 비극이었지만, 엄청 흡인력 있게 빨려들어가며 읽었음.. 진짜 이야기꾼일세!!!

 

유럽과 비교하면 후발주자였던 미국 근대 의학교육 체계에 대해서도 좀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19세기 말 무렵 최대 20% 정도의 의대는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요구하지 않았고 등록금만 내면 누구나 받아줬다 ㅋㅋ 예컨대 1981년에 하버드 의대에서도 9개 과목 중 4개 낙제해도 의사 졸업장 ㅋㅋ
대학과의 관련성도 적었고 (직업학교니까!!!) 병원과의 연계도 없었음. 플렉스너 리포트 이전의 참상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해줌...  사실 이런 거 읽을 때마다 히포크라테스 전통 이야기하며 천부의권 운운하는게 떠올라 정말 실소가 나옴....
존스홉킨스는 교수도 뽑았고 병원도 열었지만 돈이 없어서 의대를 아직 못 열고 있었는데 ㅋ 여학생을 받아주면 50만 달러 기부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지만!!!) 이들을 받아주면서 겨우 개교.... 이건 또 뭐냐.. 돈 앞에서는 성차별도 무너지는구나 ㅋ 홉킨스 문 열던 1893년, 대부분의 의대는 수련병원이나 대학과 연계가 없었고 대부분의 교수 월급은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환자는 만져보지도 않고 졸업 ㅋ 어쨌든 홉킨스가 개교하면서 미국 의학교육의 새로운 장이 열림...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1차 대전이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기여한 부분이 훨~~~씬 더 컸다는 것도 깨닫게 됨. 전쟁 총동원 체제 하에서 군사훈련, 이동, 밀집환경을 통해 전파가 가속화되었던 것은 물론 언론 통제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일본에서만 적십자가 군대의 하수인으로 일했나 했더니만,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음. 특히 간호 인력을 전선에 투입하는 핵심 기구.... 앙리뒤낭 어디 간 거냐???
한편 민족 자결론으로 한민족에게 유명한 윌슨.... ㅡ.ㅡ  실상은 기독광신도..... 평화협정 체결하러 파리에 갔다가 인플루엔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제정신 아니었던 것 같음 ㅋ
 

학생 시절 왜 바이러스 인플루엔자와 헷갈리게 Hemophilus influenza로 이름 지었을까 궁금했던 것도 풀림.
당시 정말 많은 과학자들이 인플루엔자의 병원체를 밝히기 위해 애썼고 그 시도 자체는 당시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과학적 성과들을 부수적으로(?) 거두었다는 것도 알게 됨. 그 중의 하나가 무려 DNA를 통해 유전이 이루어진다는 것!!!
어쨌든 병원체는 아니었지만 2차 세균감염을 저지하기 위한 폐렴구균 백신이나 혈청의 대량 생산도.. 내 막연한 추측보다 너무 본격적이라 깜놀함. 당연히(?) 공중보건체계도 강화되고 통계학적 연구도 발전!

 

1918년 봄의 1차 유행이 비교적 마일드했다면 (증상이 매우 마일드해서 1918년 7월에 출판된 란셋 논문조차 아무래도 인플루엔자는 아닌 것 같다고 결론.. 하지만.. ) 가을 2차 유행이 엄청 폭발적이고 사상자를 많이 냈는데, 특히 군대를 중심으로 청년 집단의 피해가 극심했고 cytokine storm 에 의한 ARDS 가 하도 급격하게 나타나고 청색증이 심해져 심지어 인종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다고... ㅡ.ㅡ 사람들이 '흑사병'이라고 오해할만했다고 하니... 그래도 오늘날 코로나 유행에서 극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됨. 사실 유행 시작 1년도 안 되 백신이 개발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음 ㅡ.ㅡ 예전에 영화 contagion 보면서,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 바로 신속한 백신 개발이라고 그랬었는데...

 

인간사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이렇게 무서운 유행이 몰아치고 매장을 할 수가 없어 집안에 시체를 두고 살아가는 환경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또 익숙해졌다는 것....... ㅡ.ㅡ
그리고 흥미로우면서도 좀 서글펐던 것은 인류의 바보짓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이 발간된 것은 이번 코로나 유행 한참 이전인데, 마치 지금 유행을 보고나서 글을 쓴 것 아닐까 의심할만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그 시절에도 있었음.


빠른 시간에 급격히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워 관을 쌓아두고, 구덩이를 크게 파서 시체를 한꺼번에 매장하는 모습, medical surge 때문에 의료인, 특히 간호사 부족으로 난리가 나는 모습, 모이지 말라는데 말 안듣고 모여서 전파 확산시키는 모습, 괜히 겁주는 게 더 위험하다며 별거 아니라고 가짜 안심을 주는 모습 ("이제 피크는 지나갔다!" ㅋㅋ), 가짜 뉴스 ("독일인이 바이러스를 몰고 왔다!" ㅋ), 탑 저널도 제대로 된 과학적 검증이나 리뷰 없이 말이 될만한 논문은 어지간해서 다 실어줘서 아무말 대잔치 난리가 난 모습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 쓰는 것까지 똑같네 그려.. ),  섬나라 호주 빗장 걸어잠그고 초기에 전파 차단에 성공했던 것... ㅋ  무엇보다 백미는 웰치가 1920년에 이 유행 사라지고 나면 다 까먹게 될 것이라는 예측 등등....
이렇게 인간 사회의 도저에 자리한 본성, 의식, 사회적 질서가 좀처럼 변하지 않으니까 '고전'이 사랑받는 것이겠거니... ㅡ.ㅡ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를 다룬 문학작품은 많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발견.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공포 (홀로코스트, 전쟁)에 대한 책은 많지만 자연이 초래한 공포는 글쎄올시다 아니었을까라고 해석. ...
 

널리 알려져있든 1918 팬데믹은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과 달리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음. 그 기원은 1918년 초 미국 Kansas state, Haskell county 로 강력 추정됨. 다만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은 1차대전에 총력전 펼치며 대부분의 부정적 뉴스를 검열하던 미국이나 유럽 다른 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은 아직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고, 유행은 오히려 덜 심각했지만 맨날 뉴스 대서특필했기 때문 ㅜ.ㅜ
현재 역학자들이 추정하는 것은 최소5천만 명, 어쩌면 1억명 사망. 이는 겨우 2년에 걸쳐, 그것도 2/3의 사망이 24주, 특히 그 중 절반 이상이 1918년 9월 중순에서 12월 사이에 발생했다고 함. 중세 흑사병이 한 세기 안에 죽인 것보다, 에이즈가 24년에 걸쳐 죽인 것보다 24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 ㅜ.ㅜ
미국에서는 유행 동안 총 사망의 절반 정도가 인플루엔자와 그 합병증 연관되었고, 평균수명을 10년 이상 깎아먹을 정도였다고 함. 젊은이 피해가 컸으니 그럴 만도 ㅜ.ㅜ 당시 추정값을 지금 미국 인구에 대입하면 약 175만명 사망 규모라고 하는데, 2월 23일을 기점으로 미국의 코로나 누적 사망자 수가 50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의학기술의 발전은 다 무엇인가 싶음 ㅜ.ㅜ

 

유행 당시 영아와 노인의 사망률이 당근 높았지만, 청년층 사망률도 높아서 W 모양을 보였는데 아마도 가장 치명률이 높았던 것은 임산부.. ㅜ.ㅜ 입원환자 중 치명률이 23-71%에 이르고, 생존한 이들 중에서도 26%가 유산을 경험했다고 함....  이후 후유증도 적지 않아서 그 유명한 수면병 (encephalitis lethargica)...  칼 메닝거는 인플루엔자와 조현병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는데, 2/3의 사례에서 5년만에 완전히 회복됨...
저자는 인플루엔자 감염이 너무나 보편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인종이나 계급에 따라서 패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해석했는데, 밀집도와 분명히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계급과 사망률 사이에서는 연관성 관찰됨. 물론 치료제가 변변치 않았고 유행이 워낙 대규모여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좀...  게다가 그동안 높은 인구밀도로 도시가 개발되지 않아 면역 수준이 낮았던 저개발국가, 에스키모 등에서 그 피해는 심각..

 

코로나 유행 초기에 아마도 이 책을 읽었으면,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내용을 좀더 많이 알았더라면 조바심이 덜 났을 것 같은데....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  

 

# 이욱연. 루신 읽는 밤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 그냥 나이만 먹을까 두려울 때 읽는 루쉰의 말과 글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 그냥 나이만 먹을까 두려울 때 읽는 루쉰의 말과 글
이욱연
휴머니스트, 2020

 

대학생 때 루쉰 선생의 번역서를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던 것 같은데. 세세한 내용들은 기억이 안 나고 (길이 원래 있던 게 아니라는 그 구절만 기억!)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날이 서 있고 막 야단맞는 느낌이었다는 "분위기"만 기억 ㅋㅋㅋ
심지어 닉네임 노신 님께서 선물해주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아직도 책꽃이에 있는데 시집조차도 마음이 촉촉해진다기보다 또 야단맞는 느낌이었던 기억 ㅋㅋㅋ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신기방기한 느낌... 아니 왜 나랑 생각이 이렇게 비슷한 거야???
나는 내용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했던 고민, 그가 썼던 글들이 어느 덧 내 생각의 회로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버렸던 것이여????
마치 내 생각을 들킨 것처럼 익숙했는데, 그게 내 생각인지, 아니면 그동안 읽었던 글들이 결국 이런 방향으로 체화되어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된 건지 구분이 안 됨...

전집을 다시 읽어봐야 하나 생각.. 대학생 때 그 느낌, 불편하고 생경하고 야단맞는 느낌과는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구..

 

이욱연 선생님의 해제도 깊이 있어서 좋음.

"저마다 삶에는 트라우마가 있다.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 이후다. 루쉰이 전하는 삶의 지혜는 치유를 위해서 지금 이곳의 삶을 응시하면서 말하라는 것, 글을 쓰라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점으로서, 새롭게 자신을 만드는 차원으로서 능동적인 망각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루쉰이 전하는 삶의 지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