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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턴가 ‘야구의 여신’이란 표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야구의 여신’이라니, 이 얼마나 명예로운 칭호란 말인가. ‘전쟁의 여신’ 아테나나 ‘승리의 여신’ 니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같이, ‘여신’의 칭호는 각각의 일반명사를 감히 대표할 수 있는 인물에게 붙여지기 때문이다.
‘야구의 여신’이 김석류, 김민아, 최희 등과 같은 전현직 여성 아나운서를 지칭하는 말이라 알려주자, 한 지인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오히려 안향미 선수와 같이, 차마 모두 말하지 못할 고난 속에서도 ‘여자 야구’를 이끌어 왔던 이에게 주어져야 할 칭호가 바로 ‘야구의 여신’ 아니냐는 항변이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안향미 선수야 ‘야구의 여신’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여성 야구 아나운서들은 자격이 없을까. 나는 김석류 씨나 김민아 씨, 최희 씨가 어떤 길을 거쳐 현재의 ‘여성 야구 아나운서’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야구 전문 여성기자’에게는 ‘야구의 여신’이란 이름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졌다.
[사진] 기아 타이거즈 이현곤 선수와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 김석류 전 아나운서. 김 씨는 '야구의 여신'이란 칭호를 처음 얻을만큼 인기가 높았다.(pinkchu.tistory.com에서 퍼옴)
“잊지 말아라. 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 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앉을 수 있느냐고.”
베르톨르 브레히트의 <전쟁교본> 마지막 장에 실린 사진시다. 아마도 대학으로 보이는 계단식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젊은이들 사진이 배경이었다. 야구전문 여성 기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브레히트의 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금이야 흔한 풍경이 됐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야구 경기장에서 ‘여성 기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여성 기자나 아나운서들이 지금의 그들보다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야구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 N 최희 아나운서는 최근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자 아나운서들이 덕아웃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세대 여자 아나운서들은 덕아웃에 들어 가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여자 아나운서들이 덕아웃에 출입하는 걸) 부정 탄다고 소금뿌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사진] 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전쟁교본' 마지막 장에 실린 사진.
야구는 ‘미신’이 지배하고 있는 경기 중 하나다. 근거 없는 ‘징크스’가 진리로 통용되기도 한다. 어떤 선수는 유니폼 안에 여성 속옷을 거꾸로 입기도 하고, 다른 선수는 타격 전 헬멧에 베인 자신의 머리 냄새를 맡기도 한다. 연승 중 수염을 깎지 않거나, 투수가 이닝을 마무리한 뒤 걸어 들어갈 때 3루 베이스 라인을 밟지 않거나, 이긴 경기에 썼던 모자를 질 때까지 빨지도 않고 쓰는 건 오히려 흔한 일이다. 미국 Benbrook High School 야구부 소속 남학생 두 명은 최근 병아리를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었고, 이 학교 야구부원 사이에서는 병아리를 죽이는 ‘의식’을 통해 경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미신이 돌고 있었다. 이런 ‘미신’을 ‘이성’으로 돌파하기란 쉽지 않다. 병아리보다야 조금 나은 운명이라지만, 여성 기자와 아나운서가 소금 세례를 맞은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출입은커녕, ‘삼일 동안 입은 속옷 하나만 달라’는 무례를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런 ‘미신의 벽’은 한국과 일본, 미국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있다. ‘여성’을 대하는 야구계의 풍토도 미신의 한 형태다. 그리고 이 천인공노할 ‘미신’이 처음 허물어진 곳은 미 연방법원이었다.
1974년부터 스포츠 전문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지의 야구 기자였던 멜리사 루트케(Melissa Ludtke)는 뉴욕 양키즈(New York Yankees)와 LA 다저스(LA Dodgers)가 맞붙은 1977년 월드시리즈 취재를 위해 구장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경쟁매체에 비해 취재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 기자’란 이유로 선수들이 머무는 럭커룸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뒤 주요 선수에 대한 인터뷰는 대부분 락커룸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여성 기자의 락커룸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리그 사무국이 발간한 ‘월드 시리즈 매뉴얼’에는 ‘경기 직후 5분간 기자단에게 클럽하우스(칵커룸)를 공개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리그 사무국은 1975년 4월 2일 각 구단에 발송된 커미셔너의 편지에 ‘여성 기자의 락커룸 출입 금지’ 내용이 있다며 여성 기자를 차별했다. ‘탈의가 이뤄지는 락커룸의 특성상 (남성) 선수들의 사생활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사진] 여성기자의 락커룸 출입제한에 항의하는 소송 끝에 승소한 멜리사 루트케. 이 소송은 야구계의 '여성차별'을 허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루트케 기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트케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사전에 공문을 통해 ‘여성의 락커룸 취재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저스는 선수단 투표를 통해 (리그 사무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양키즈는 거부했다. 리그 사무국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보위 쿤(Bowie Kuhn) 커미셔너(Commisioner)은 그나마 다저스의 승인마저도 직권으로 취소시켰다. 결국 그녀는 법정으로 향했다.
소송의 피청구인은 세 명이었다. 보위 쿤 리그 사무국 커미셔너와 (뉴욕 양키즈가 속해있던) 아메리칸 리그 릴랜드 맥파일(Leland MacPhail) 회장, 뉴욕 시장이었다. 뉴욕 시장이 피청구인 명단에 들어간 이유는 ‘시 공용 시설인 야구장에 여성 출입을 금지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루트케는 소장에서 ‘프로농구와 프로하키 모두가 이미 여성기자의 락커룸 출입을 허용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1978년 9월 25일. 판결이 나왔다. 흑인 여성이었던 콘스탄스 베이커 모틀리(Constance Baker Motley) 판사는 루트케의 손을 들어줬다. 연방법원은 ‘루트케를 비롯한 여성 기자들 모두에게 락커룸을 공개할 것’을 명령했다. 지금의 상식에선 당연한 결과이지만, 당시엔 달랐다. 흑인이자 여성으로 판사와 변호사, 주 상원의원과 여성운동가로 차별과 모순에 스스로 부딪히며 살아온 모틀리 판사였기에 가능한 판결이란 해설도 뒤따랐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을 통해 리그 사무국은 더 이상 출입기자의 성별을 기준으로 한 락커룸 출입 차별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뒤이어 야구 전문 여성기자도 동등한 취재 기회를 부여받게 됐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된 셈이다.
[사진] 루트케 사건 판결을 내린 모틀리 판사. 변호사와 판사, 상원의원, 인권운동가로 활약한 그녀는 지난 2005년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한국과 미국, 일본 모두에서 ‘여성 야구기자’는 평범하다 못해 거의 ‘주류’의 수준에 이르렀다. 각 한국의 방송3사 야구 프로그램 아나운서는 죄다 여성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경기 직후 선수 인터뷰는 여성 아나운서에 의해 이뤄지는 게 보편적이다. 이제 브레히트의 시를 다시 한 번만 확인하자. 잊지 말아라. 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 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앉을 수 있느냐고. 최근 들어 야구장 여성 아나운서(혹은 기자)의 노출 심한 옷차림을 두고 말이 많다.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선수들과의 스캔들도 듣기 거북할 때가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했다. 신계에 살던 ‘야구의 여신’이 어느 날 갑자기 ‘야구선수의 부인’이 돼 인간계로 내려오는 동시에 그라운드를 떠나기도 한다.
한국 나이로 61살인 루트케는 현재 하버드대가 발행하는 ‘니만 리포트’의 편집장이다. 승소 직후인 1979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를 떠났던 그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타임지 지면을 통해 스포츠와 정치는 물론, 여성과 아동, 가족을 주제로 한 많은 기사를 발표했다. 청소년 임신을 주제로 한 ‘Children Having Children' 기사는 오늘의 그녀를 있게 만든 대표적인 기사다. 그녀의 소송은 단지 ’야구장 락커룸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여성 전문 저널리스트‘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이었을 게다.
부디 많은 ’야구의 여신‘이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구장을 누비며 생생한 소식을 전해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아름다운 야구 아나운서가 단지 섹슈얼 마케팅이 아니란 것을 자신의 삶으로 입증해 줄 그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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