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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1.

 

저번 주말, 학우들과 함께 광주순례를 갔다 왔다.

 

뭐 순례 자체는...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는.

 

반미투쟁을 외치는 금남로의 노동자대회, 광주를 '승리의 역사'라고 자랑스레 기록한 기념관들, 구묘역과 신묘역의 대비, 그리고 신묘역에 들렀던 금뱃지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광주라는 그 아이콘 자체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의 느낌은 다른 문제다.

 

 



2.

 

'불멸의 인간애' 친구가 활동하는 맑스주의 동아리의 아지다.

 

맑스의 비판 작업의 모든 원천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다는 해석이다.

 

뭐, 굳이 맑스를 끌어다 쓰지 않더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모든 운동하는 사람들의 꿈이리라.

 

어찌 사람으로서, 어찌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느냐. 이런 분노가 비판을 낳는다.

 

광주는 거대한 비판이었다. 비판이 총을 들면 저항이 된다.

 

그 날 광주라는 거대한 도시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너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을 들 수 있겠느냐?"

 

매순간 전사로 살아가기를 결의해야만 하는 근거를 다시 한 번 찾고 왔다.

 

내 시대에 맞는 '총'을 들고, 내 시대가 요구하는 사수투쟁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을.

 

총을 들고 실천하는 인간애야 말로 진정한 '불멸의 인간애'임을.

 

 

3.

 

역시 광주는 논쟁적인 코드다.

 

혹자에게 광주는 한미연합사를 떠올리게 하는, 반미투쟁의 뿌리일 것이다.

 

혹자에겐 꼬뮌의 기억으로, 혹자에겐 당이 없었던 패배한 투쟁의 기억으로 남는다.

 

혹자에겐 '시민'들이 나섰던 '민주화'를 위한 싸움, 승리한 투쟁으로 기억된다.

 

내게 광주는 무엇일까?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꼬뮌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아스라한 혁명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순례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있다.

 

광주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투쟁을 할 것인가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것.

 

끊임없이 현재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바로 '역사투쟁'이라는 것.

 

 

4.

 

새내기들에게 광주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정리발언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잘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광주에 가서 애들과 얘기를 많이 한 느낌이다.

 

광주와 함께 나도 의미가 될 수 있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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