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발행하는 공단노동자신문 <바지락> 2019년 9-10월호 합본호 http://metalunion.nodong.org/bbs/board.php?bo_table=ce_B433&wr_id=59 더 나쁜 현장실습,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소식] 일학습병행제지원법의 문제점 직업계고 현장실습 vs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 2005년 11월 엘리베이터 점검을 하다 21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A 씨 ● 2011년 11월 살인적인 맞교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B 씨 ● 2012년 12월 폭풍 속에서 작업 중 배가 뒤집혀 사망한 C 씨 ● 2014년 1월 동료의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D 씨 ● 2014년 2월 졸업식 전날까지 야간근무를 하다가 폭설로 공장 지붕이 무너져 사망한 E 씨 ● 2016년 5월 현장실습 후 취업해 구의역 안전문을 홀로 고치다 사망한 F 씨 ● 2016년 5월 현장실습 후 외식업체에 취업해 장시간 노동, 동료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G 씨 ● 2017년 1월 콜센터 해지 방어부서에서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H 씨 ● 2017년 11월 음료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I 씨 2005년부터 작년까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통해 확인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관련 사망 사건들이다. 2017년 1월 H 씨의 자살 사건이후,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현장실습 대책회의’를 구성해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폐지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I 씨의 사고가 발생했다. 2017년 12월 1일, 교육부총리 김상곤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2월 말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방안(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을 폐지한다면서도, 사실상 ‘취업 중심의 현장실습’을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나온 개선안은 취업률 60% 달성을 내걸고 말았다. 게다가 지난 8월 1일, 일학습병행제지원법(지난 3월 환경노동위 안으로 제출된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일학습병행제의 고교단계인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3학년 때 시행하게 되어있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형태를 1~2학년으로 앞당겨 더 빨리, 더 오래 산업체에서 일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학벌, 학력보다 능력중심사회? 박근혜 정부 초기 교육부는 ‘능력중심사회 기반구축’이라는 핵심과제를 발표한다. ‘학력-스펙이 아닌 직무능력 중심의 능력중심사회를 구축해 미래인재를 양성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실습과 마찬가지로 일학습병행제 역시 기업에 맞춤한 인력을 공급받는 통로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운영해왔다. 시키는 대로 ‘배우는 마음으로’ 일할 만큼의 ‘능력중심’을 갖춘 사람을 찾으니 기업과 구직자의 부조화는 당연하다. 기업은 고등학생에게 몇 달 동안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2018년 전라남도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기업에서 노동자가 주로 하는 일은 기타>청소>허드렛일 순이다. 전체 응답자의 43.9%가 선택한 ‘기타’ 항목에는 박스 옮기기, 창고정리, 지게차 운전 등의 일이 포함됐다. 청소 20. 4%, 허드렛일 12.1%, 그 외 조립 5%, 포장 4.2%였다. 일학습병행제 참여기업은 원칙상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공동훈련센터형은 20인 이상인 기업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참여기업 요건을 점차 완화하려 한다. 기업 규모가 크다고 도제교육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기업의 규모에 따라 인력과 자원을 마련할 여력이 달라진다. 현실적으로는 도제담당교사들이 기업의 일인 도제교육계획안을 써주면서까지, 도제교육을 수락해 달라고 사정하는 일이 숱하다. 상황이 이런 데도, 법은 통과되었다. 게다가 도제기업에 대한 근로감독이나 산재예방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교육부와 노동부 두 부처 중 어디서 책임질지도 의문이다. 더 나쁜 현장실습,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최근 미용, 외식/조리, 보건 분야 그리고 보육 분야로 도제교육이 확장하고 있다. 이 분야들은 이미 자격증 제도가 있는 상황이다. 학원에서 배우고, 실습을 해서 자격증을 따면 취업이 된다. 학원 다니면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을 굳이 학교로 끌고 들어와 3년 교육과정으로 운영해야할 근거는 뭘까. 8월 20일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는 도제학교가 아직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 시작 단계의 제도인데, 당연하다며, 차차 보완해 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왜 무조건 반대만 하느냐고 했다. 백번 양보해 제도는 차차 고칠 수 있다고 치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떠안고 있는 제도 안에서, 모든 문제를 온몸으로 고통을 감당하게 될 직업계고 청소년들이 당신들은 보이지 않는 게 분명하다.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 제도를, 정책을 반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진설명 : 일학습병행제의 고교단계인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3학년 때 시행하게 되어있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형태를 1~2학년으로 앞당겨 더 빨리, 더 오래 산업체에서 일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전교조 등 현장실습 대응회의와 현장실습 피해가족이 8월 1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른바 도제학교양성법 폐기를 촉구했다. 사진 교육희망제공 글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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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00:47 2022/09/16 00:47

[이주의한문장] 한 발자국의 몰락이 어떤 도약보다 의미심장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병역거부 길라잡이-현민의 병역거부 소견서> _『맑스를 읽자』 (고병권 외 저, 2010)

 

아마도 병역거부는 내가 지닌 안전한 위치와 거리조절 능력, 그 밖의 자원을 상당히 박탈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생긴 상처는 쉽게 지울 수 없으면서 오랜 세월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 즉 병역거부는 몰락의 순간이다. 하지만 나는 몰락을 기꺼이 선택함으로써, 내게 부착된 권력을 백일하에 드러내고자 한다.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이를 통해 개별적인 삶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삶을 다른 이들과 포갤 수 있는 위치에 이르고 싶다. 물론 그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금물이다. 유쾌한 경험이 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삶은 운명일 수 있다. 나는 이제 병역거부자라고 불리는 전혀 새로운 삶으로 이주한다.

 

겨우 딛던 자리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내려왔을 뿐이다. 아래로 한 발을 딛는 데 이토록 힘이 들고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그동안은 위로만 시선을 향했지, 아래에도 발을 디딜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봤자 한 번인데. 하지만 지금 내겐 이 한 발자국의 몰락이 이전의 어떤 도약보다 의미심장해 보인다.

 

– 『맑스를 읽자』 (고병권 외 저, 2010) 중 <다음 세대를 위한 병역거부 길라잡이-현민의 병역거부 소견서>

 

 

나의 최애 SNS는 페이스북이다. 예전 일간지 구석에 실리던 ‘오늘의 역사’와 비슷한 성격의 서비스메뉴, ‘과거의 오늘’을 특히 좋아한다. 1년 전 혹은 몇 년 전의 오늘, 내가 했던 고민을 떠올리기 좋아서다.

 

3년 전인 2016년 3월 어느 날, <다음 세대를 위한 병역거부 길라잡이-현민의 병역거부 소견서>에 대해 어느 페이스북 친구가 쓴 글을 내 타임라인으로 끌어왔었다. 오늘 고른 문장도 그 소견서에서 발견한 것이다.

 

‘피해/생존과 자부심, 몰락과 자부심을 연결’하는 것에 대해 고심하던 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읽다가 나는 피해자, 생존자, 혹은 낙오자 중 어디쯤 있는지 생각해 본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일 잘하고 육아도 거뜬히 해내면서, 주변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폐 끼치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이렇게 나열해서 글로 쓰는 것만큼이나 숨차고 닿기 어려운 것인데……. 그것을 희망했고, 그 희망은 당연했다.

 

요즘 ‘적당히 살면 정말 안 될까’에 대한 메모를 종종 쓰다가, 무슨 일이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적당한 존재’가 되기로 문득 마음먹었다. ‘의미심장한 한 발자국의 몰락’을 향하는 나만의 시도가 될 수도 있겠다.

 

*작성: 림보(활동회원)

 

2019-03-22 인권교육센터 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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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23:40 2021/01/17 23:40

[이주의한문장] “언제 쳐들어올지(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를 죽이는(가르치는) 연습을 ‘방어(교육)’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곳들이 있다는 발견”

<체벌 거부 선언 - 폭력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겠다는 53인의 이야기>, 교육공동체 벗,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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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며! 잔소리 좀 그만해.”

 

요즘 거의 매일 아침, 등교를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진다. 활동량이 많아진 어린이가 방과 후 (돌봄) 교실이나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온 힘을 다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아파트 1단지부터 6단지까지의 넓은 동네를 헤매며 잘 노는데 보내기 때문일까. 점점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며 늦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일어나서 부리나케 밥 먹고 옷 입고, 머리 빗고 양치하고 가면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맘에 드는 옷을 고를 때까지 심사숙고해야 하고, 밥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 여유를 즐기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학교 가기 40분 전에 일어나는 것은 대단히 늦게 깨어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자꾸 나가기 전까지 밥을 다 먹을 수 있는지, 양치하고 갈 수 있는지 걱정되는 마음에 5분 간격으로 시간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말하면 할수록 잔소리가 되어 버린다. 나도 늘 친절하게, 어린이의 짜증을 돋우지 않게 얘기하고 싶다. 같은 얘기 여러 번 하게 하면 혼내던 엄마 밑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른들 말을 바로 듣지 않으면 혼났기 때문에 혼나지 않으려고 바로바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애쓰고 살아오면서,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같은 부탁(사실은 명령이나 지시)을 여러 번 하면 화가 쌓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어린이와 살면서 내내 트리거로 작동하고 있기는 하다.

 

어린이가 나날이 자라면서, 가장 나를 붙드는 고민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같이 만든 약속이나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라는 요구’이다.

 

사실 이 어린이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엄마인 나에게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거침없이 요구하고 있다. 생후 3개월부터 보육 기관에서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전적으로 알차게 휴식에 집중하며 보내고 싶어 한다고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적어도 엄마와 지내는 시간만이라도 긴장 없이 보내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을 모르진 않는다. 오히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어린이‧청소년 인권옹호자가 되고 싶은 ‘나’와 모성이 없어서 괴로운 ‘엄마로서의 나’ 사이에 있는 심각한 갈등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저는 당신이 만들어 내는 모범답안, 그 자체를 거부합니다.” – <체벌 거부 선언 – 폭력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겠다는 53인의 이야기>, 교육공동체 벗, 2019. 172쪽, 필부의 글

 

나도 모범답안을 거부하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왜 어린이의 삶에 대해 나는 어떤 답안을 들이밀며 아침마다 싸우고 있을까. 왜 학교에 매일 가야 하는지, 숙제를 꼭 해야 하는지, 제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지 어린이가 질문할 때마다 나는 멈칫하고 만다. ‘그러게. 학교를 안가고 숙제를 안 하고 지각할 수도 있지. 그러나 엄마인 나는 너를 ‘이기적이고 저만 아는 사람’으로 키웠다고 비난받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어나고 씻고 밥 먹고 세수와 양치하고 옷 입고 가방 챙겨서 학교 가라는 말에 재깍재깍 움직여주지 않는 그에 대한 분노를 꾹꾹 누르면서 ‘쟤는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쥐어짜)는,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가.’ 하는 원망이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도 그이에게 원하는 모범답안이 있었다는 것.

 

“언제 쳐들어올지(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를 죽이는(가르치는) 연습을 ‘방어(교육)’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곳들이 있다는 발견” – 앞의 책, 192쪽, 날맹의 글

 

‘들’이 여는 고개 넘기 워크숍을 참여하고 활동회원을 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결합한 모임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교사연수 기획팀이었다. 이때 세 살이던 어린이와 살며 확인한 ‘고함치는 엄마’로서의 ‘폭력성’을 알게 되었고, 내가 직면해온 수많은 폭력의 순간을 되새기기도 했다. 2018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체벌 거부 선언을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참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선뜻 참여하게 되지 않았다. 선언하고 나서. 그 뱉어놓은 말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선언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번 생에는 안 되는 문제라며 도망치지는 않을까. 체벌 거부 선언을 하고, 그걸 다듬은 글이 책으로 실려 나오자 사실 나는 두렵다. 나에게 어린이‧청소년인권은 내가 단지 나이를 먹고 엄마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매 순간 확인하기 위한 잣대라고 쉽게 고백하고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긴 했다.

 

그러나 책은 나와 버렸다. 체벌이 폭력이다. 때리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분위기와 언어로 너를 제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역시 폭력이다. 날맹이 써주었다시피 폭력의 언어는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내 몸을 통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어버린 어린이를 ‘언제 기어오를지 모르는 상대’로 설정하고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통제하고 휘두르고 막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나는 언제까지 갈등하게 될까.

 

*작성: 림보(활동회원), 2019.5.31. 인권교육센터 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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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23:37 2021/01/17 23:37

말과 행동의 괴리

 

 

요즘 나는 상담을 받고 있다. 내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하며 떠들고 다니는 말과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이 내 일상에서는 도통 풀려 나오질 않았다. 집에서는 오직 만 보였고 내게 부과되는 사회적인 역할들은 그저 나를 숨막히게만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특히 엄마와 여동생 과의 사소한 다툼이 쌓였다. 어느 순간 두려움이 커지기도 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의 괴리에 대해 내 자신이 너그러 워지지가 않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책도 있던데, 두 달 가까이 상담을 받으면서도 내 생각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은 아직 남아 있다. 며칠 전 읽은 정희진의 글1)에 따르면 나는 머리(이상 혹은 희망 사항)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머리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내가 살아온 동안 감당하기만 하고 꾹꾹 눌러 담았던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올해를 시작하는 겨울이었다. 결혼하고 딸을 낳고 키우면서, 또 주말마다 만나는 조카와 부딪히면서 어린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지적받기도 하고 숱하게 반성하기도 했다. ‘훈육을 왜 하지 않느냐, 육아도 공부해야 한다는 타박, ‘아이를 완전한 존재로 대한다면서 어른에게는 쉽게 못 할 상처되는 말을 아이에게 퍼붓는 건 아니냐는 지적, ‘청소년인권을 위해 활동을 한다더니 너와 가까운 아이들과의 관계는 왜 이러냐는 비난을 들었지만 그 말들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어 나도 나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활동가들이 공부하고 있는 adultism 관련 문서들을 발견해 읽다 보니 나의 징후는 영유아 혐오/아동 혐오일 가능성이 높은 것도 같았다. 저 단어들에 쓰인 혐오라는 단어는 공포를 포함하는 건 아닐까, 이리저리 합리화도 해 보고 고민을 해 보아도 딱히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과 행동의 괴리로 괴로울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집에서는 마초적인 가부장. 결혼 전에는 함께 활동하는 동료였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의 활동을 내조만 하게 되었다는 여성들의 넋두리 속에, 줏대 있는 사람이 되라며 책을 사 주던 아버지였지만 막상 청소년운동을 시작하자 그런 건 (명문)대학 가서 하라고 격하게 반대를 해서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다는 어느 청소년 활동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런 인물들. ‘운동하는 활동가라면, 진보 논객이라면 가정이나 개인적인 관계에서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젖어 있어도 괜찮다고, 그건 개인적인 문제니까 우리가 일일이 지적할 순 없다고,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겠느냐며 함께 변명해 주는 사람도 많다.

세상을 향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말하는 활동가, 진보 인사의 이미지가 사적인 공간에서의 위계, 권력, 폭력을 덮어 버리는 일이 나라고 다를까 하며 털썩 주저앉곤 했다. 솔직히 좋은 의도를 내세우는 여러 조직들이(시민사회단체건 회사건 협동조합이건) 그 좋은 의도를 내부에까지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 많지 않은가. 그 조직에서 노동은 존중받지 못하고, 내부적인 문제를 지적하거나 고발한 사람들은 괘씸죄로 몰려 그 조직에서 밀려나는 일이 허다하다. 보리출판사를 비롯해 그린비출판사, 자음과모음, 함께일하는재단, 평화박물관, 마인드프리즘의 노동 문제들이, 10년 전에 활동했던 100인위의 존재 자체가, 지금도 많은 조직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나이차별, 성차별 사건이 그런 현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래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좋은 의도는 밖으로만 드러날까. 왜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이 질문이 나의 상담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내 옆의 존재들에게 그런 횡포를 부리는 건가 하는 질문. 그리고 이런 질문을 《오늘의 교육》이 구성하고자 하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담론을 향해 던지고 싶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이상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사소하고 지질해 보이는 문제들을 간과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이 대체 뭐길래

 

 

《오늘의 교육》 20155·6월호, 7·8월호 두 권의 특집을 읽으면서 우선 떠오른 질문은 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파고들지 않을까였다. 윤상혁이 <전환을 위한 사유>에서 인용한 사티쉬 쿠마르의 문장 만약 우리가 지구를 집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5·6월호, 40)를 이렇게 패러디해 보고 싶었다. “우리는 교육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토론은 미루고 어떻게 다룰 지 말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가 교육해야 할 생태학의 개관은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파도처럼 넘실대며 반복되는 파국적 상황에서 살아남고, 싸우고, 연대하는 삶과 기술에 대해 가르치는 것. 그런데 그 방법이 지금의 도시적 삶에서 탈출하고, 반기술적, 반과학적 사유를 통해 아름다웠던 과거로 회귀하자는 게 아니고, 내 삶이 도시에 기반하고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실행할 수 있는사유의도구를 손에 쥐어 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니짱, <우리는 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말하게 되었는가?>, 《오늘의 교육》 5·6월호, 20

 

 

학생들은 이런 파국적 상황에서조차 같이 토론하고 길을 모색하는 동료, 동시대인이 되지 못한 채, 그들의 손에 사유의 도구를 쥐어 주고연대하는 삶과 기술을 가르쳐야하는 교육의 대상이 될 뿐이다.

과연 교육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앞에서 가르치고 어떤 여럿은 그것을 배우는 것인가?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배우는 사람이 중요한가 아니면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한가? ‘교육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뭐냐고 물으면 대개 칠판이 있고 뭔가 말하는 한 사람과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라 답한다. 필자들의 글에서 드러나는 교육이 여전히 필자인 우리(학교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변화시키려는 것에 고정되어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너는 가르치고 나는 배우는 게 아니라 너랑 나랑 같이 토론하고 공부하는 교육, 배우고 싶은 것을 내가 정하고’, ‘배우고 싶을 때에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교육, 그래서 국가와 사회가 정한 교육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면 좋겠다. 노동권에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를 함께 포함할 것을 고민하듯이 쉬고 싶을 때 쉴 권리와 즐겁고 알차게 놀 권리도 보장하는 교육, 배우는 동안 먹을 음식, 사용하는 모든 도구, 이동에 드는 비용도 제공하는 교육을 꿈꾸고 만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일은 아닌가 싶다.

교육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우리가 내면화한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떻게 넘어설지 먼저 얘기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우리가 함께 손잡고 새 하늘 새 땅을 상상하기위해 먼저 합의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마을, 골목, 공동체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각자 그리는 그림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령 박복선이 처음 글에서 제시한 건 후쿠시마 등 생태적 위기, 파국이 도래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사유하고 고민하지 않는 교육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였죠. 인류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한데 그걸 외면하고 있다니, 이건 죽은 교육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러려나요? - 공현, <우리는 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말하게 되었는가?>, 《오늘의 교육》 5·6월호, 14

 

 

도래할파국은 어쨌거나 앞으로 올 시간에 대한 얘기다. 파국이 도래하기 전까지 살아야 하는 나날들은 그냥 버티면 되는 것일까? 솔직히 한 순간도 인간답게 지내기 힘든 학교생활은 어쩌자는 것인지 궁금하다. 경쟁적인 대입 시험으로 인한 압박은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내려가고 있으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곳에서도 여전히 체벌이 자행되고 있다고 밝히는 학생이 10명 중 4명이나 되고, 나머지는 대체 체벌인 벌점제에 시달린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감시와 통제의 시선마저 억압이 되는 와중에 교육은 인간에 대해서도 아직 끈질기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정용주의 글 <‘생태적 탈근대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5·6월호)은 꼼꼼하게 탈근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생태적이라는 말이 환경/생태주의의 범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모든 부분을 다루게 될 것임을 생태적 교육학의 통합적인 세계 인식세계 내 모든 존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상호의존의 관계 을 통해 강조한다. 하지만, 그 통합적인 세계 인식은 윤상혁의 <전환을 위한 사유>에서, “나와 지구는 분리되어 있지 않내가 바로 지구라는 인식으로 흐른다(같은 책, 42). 여기서 나는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이 거대하고 거창하다 못해 위험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맺고 있는 교사-학생의 관계 역시 사회적인 관계라고 볼 때, 교사인 내가 발생시키고 있는 지위 권력, ‘위계의 문제는 그 통합적인 세계 인식 앞에서 절대적이고 전능한 권위로 변질되기 쉽다. ― 내 말이 법/하느님의 뜻/진리가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 ‘지구와 통합된내가 가르치는 일이 도전받을 수도 있고 어떤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과연 용납할 수 있을까? 비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권력 관계가 활약하는 공간은 그 어이없는 비약을 현실화하곤 한다는 걸 나는 여러 차례 경험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의 고통과 당신의 고통이, 내가 겪은 차별의 어떤 측면과 당신이 겪는 차별이. 그래서 공감하고 연대도 할 수 있다. 밀양, 쌍용차, 용산, 강정, 세월호라는 서로 다른 사건들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 왔으니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혹은 국가, 종교)과 통합적 인식이 만나는 일은 좀 더 조심스러웠으면 좋겠다.

삶과 교육의 전환 국면 가운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질문하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이다. 우리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멋진 그림을 그리고 먼저 앞서 나가듯 도망치는 건 아닌가. ‘환경도 생각하고, 생명과 농업의 가치를 얘기하고 소비를 줄이고 풍부한 생태 감수성을 보여 주면 지금 당장은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우리를 욕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덧붙여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해서 너무 어려운 어떤 노력예를 들어 교사/부모를 위시한 어른들이 누리는 권위를 놓는다든가 나이 위계를 넘어서는 시도 같은 을 지금 좀 놓아도 괜찮을 것이다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이 알리바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알리바이는 범죄 현장과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본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을 의미하는 법률 용어지만,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핑계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는 단어다. 학교가 더 인권적인 공간이 되도록 애쓰지 않고 뭐하고 있었냐는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한 핑계가 아닌가를 자꾸 묻고 물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또 교사들은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학교 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관계는 얼마나 평등한지, 학생들의 의견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먼저 확인했으면 한다. 예컨대 나에게는 생태적으로 거듭나는 교육보다는 보다 평등하고 위계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이 더욱 매력적이다. 생태적 전환보다는 학교와 교사/가정과 부모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권력을 어떻게 약화 시키거나 없앨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정희진, ‘몸의 일기’, <한겨레> 2015.8.28.

 

 

 

오늘의 교육 [28호/2015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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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06:06 2016/05/24 06:06

청소년들과 노동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비청소년 대상 교육이 최근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청소년노동 인권교육’을 위해 같은 장소에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길이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청소년과 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것,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가자들은 주로 일하는 청소년의 ‘일하는’이라는 상태에 비중을 두고 있으면서 청소년에게 노동을 알려주고 싶은 의지가 높다. 그런데 필자를 비롯한 몇몇 교육진행자들은 ‘청소년’에 더 큰 무게를 실어(일하는) 청소년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맺을지 질문하는 것이다. 참가자와 교육 진행자들의 다른 의지는 묘하게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교육에서나 ‘청소년 노동 인권이라면 청소년이 노동 현장에서 당하는 억울함을 함께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는 거 아니냐, 왜 나의 청소년 인권 감수성을 점검하지?’ 이런 말을 담은 표정을 만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지내는 동안(사실은 학교 다니기 전부터…), 청소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 잘 들어야 착하지!’ 하는 격려(?)를 받으며 자랐고, 학교의 규칙을 잘 지켜야 학생답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고분고분하게 자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 가기만 하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로 변신할 거라는 기대는 과연 합당한가? 노동법이 규율 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아는 일이 모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 사회가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이고, 또 학교라는 괴물 같은 시스템이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법적인 권리를 알게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해도 되는가? 고민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 사회는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 있는 노동을 떠받들고 있지만, 그 신성하다는 노동을 하면서 왜 많은 사람이 숱한 모욕을 당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교육에서, 끝없이 질문했던 것 같다. ‘노동은 정말 신성한가?’

이 교육을 기획하는 자리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정답처럼 말하고, 위계나 속도, 경쟁을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상에서 자신이 청소년들에게, 특히 자녀에게 하는 말 속에서 그런 가치들이 어그러지게 하는 발화를 하고 있지는 않나 살펴보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청소년에게 하던 말 속에서 우리의 평소 주장과 다른 ‘나’와 ‘나의 시선(혹은 무의식)’을 쉽게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뭐가 되려고 그렇게 공부를 안 하느냐’, ‘또 쓸데없이 뭐 하고 있어?’하는 핀잔들의 행간에 담긴 이야기를 보면, ‘어떤’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가 들어있는 것도 같고, 청소년의 ‘내일’의 일을 어떻게 규정하고 또 상상하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청소년 노동 인권교육 속에서 이토록 익숙한 발화에 드러나고, 또 내면화하고 있는 주류사회의 가치들을 살피는 것이 가능할지, 또 어떻게 자신의 말과 행동의 괴리를 알아차리게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2015년 4~5월 동안 진행된 은평지역 청소년노동인권교육 활동가 과정의 한 회차에서  ‘청소년기에 내가 들어왔던 말’, 그런데 다시 ‘청소년들에게 내가 하는 말’을 살펴보는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누구나 청소년기를 거쳐오면서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비청소년들의 잔소리에 숨겨진 ‘의도’는 없는 것일까? 혹은 발화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퍼뜨리고 있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바탕으로 비청소년들의 말을 조곤조곤 살펴보기로 했다. 청소년이던 내가 들어왔던 그 말을 나도 되풀이하고 있다면, 그런데도 그 말이 진리는 아닌 것 같다면, 그 핀잔들의 행간을 읽어보는 일은 재미있을 듯했다.

“너 그러다 아무짝에 쓸모 없게 된다”고 할 때 우리가 쉽게 무시하고 쓸데없다고 치부하는 많은 일은 사실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일이냐는 딴죽을 걸어보고도 싶었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동시대를 사는 비청소년인 나와 청소년이 만나온 노동이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 어설프게나마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찌 이리도 닮았나! “내가 들어왔던 말, 또 내가 하는 말”

참가자들은 다섯 모둠을 이루고 자리를 잡았다. ‘청소년기에 들었던 이 말, 정말 지겨웠다.’ 그리고 ‘내가 지금 청소년 및 어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모둠별로 나누어 5가지씩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들었던 말이나 지금 하는 말은 역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로 가! (저 멀리 가라는…)’, ‘넌 몰라도 돼’, ‘00하지 마’, ‘조용히 해’ 이런 배제하고 차단하는 말들부터, ‘공부할 때가/학생 때가 좋은 거야’, ‘다 경험이야.’ 같은 훈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네가 뭘 알아’, ‘나 자랄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어른들 말 안 듣더니,) 너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은 저주와 무시의 말까지, 우리는 듣고 자란 말을 고스란히 어린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며 살고 있었다. 나도 듣고 살았는데,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뭐 그렇게 문제냐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화이트보드에 붙은 말풍선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자신이 해왔던 평소의 말들의 민낯을 대하고는 ‘저 말들, 참 폭력적이구나…’ 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때리지 않는다고 폭력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다 너희를 위해서’하는 말이라며 해온 말이 결과적으로 청소년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일상적으로 뱉던 나의 말들과 결별하기

이제 스스로 다시 청소년 입장이 되어 댓글을 달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이트보드가 넘치게 많은 말 중에서 청소년들에게 정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말 5가지를 선택한 후 모둠별로 나눠 가졌다.

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 이 말은 누가 들어도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화가 나는 말이다… 그래서 댓글도 간단명료하다. 그런데 싸가지 없다는 평가는 나이에 따른 ‘아랫사람’에게 주로 하는 말인지라 굳이 청소년이 더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할 수 없기도 하다. 나도 가끔 듣거나 하게 되는 말인데, 음음… 이제 나(참가자 자신들)에게 말한다. “고마워, 너나 잘하셔~^^”

2. (어른들 말 안 듣더니,) 너 그럴 줄 알았어 : ‘말 잘 듣는 아이’로 살게 되면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과감하게 저질러버린(?) 분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함에도, 이런 식의 말로 청소년들이 실수하고, 방황할 권리, 다양한 경험을 할 권리를 얼마나 가로막아왔던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회의 결과 중심적인 판단을 문제 삼았던 우리도 별수 없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점집 차리세요~^^’라는 댓글이 인상적인데, 한 치 앞의 인생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인데, 어른들은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늘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3. 00 하지 마 : 청소년도 뭔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온전한 존재,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의견들이 댓글로 달렸다. 청소년의 여러 가지 행동을 금지하려는 이 말들은 정말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말이라기보다는 어른들에게 부여될 미래의 책임을 피하고자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어떤 청소년도 비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대신 감당해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금지하면 된다는 생각에는 청소년들이 저지를 일에 대한 책임을 그들의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를 자처하는 비청소년이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하거나 그 결과를 감당하고 책임지기에 부족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 아닐까? 이것도 저것도 다 하면 안 되는 청소년들의 댓글은 ‘그럼 뭐해요?’였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4. 공부 안 하면 저렇게(노숙자,청소노동자) 된다 : ‘우리는 좀 달라’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청소년노동 인권교육의 참가자들도 역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쟁, 즉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한 경우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힘이 세다. 참가자들이 청소년의 관점에서 적어 놓은 비판 댓글을 살펴보면 ‘저렇게 된다.’라 할 때의 ‘저렇게’를 해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공부해도 다 저렇던데, 저게 뭐 어때서, 대학 가면 잘 되나…, 너는 공부 잘해서 이 모양이셔?’. 우리가 더 주목하고 고민해야 했던 것은 ‘저렇게’로 분류되는 존재와 노동이 사회에는 물론, 우리의 인식 속에도 그대로 건재하다는 것이 아닐까.

5.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넌 몰라도 돼 : 어른들의 일이 따로 있다는 듯이 하는 말이지만, 알고 보면 별거 없다는 사실을 참가자들은 댓글로 적어주었다. 어린 너(청소년)와 말할 이유 없다는 의사표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어떤 주제로든 나이 어린 사람인 너와는 동등한 관계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말이다. 그러니까 청소년에게 하라는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어른들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이며 정치며 성(性)의 영역에 관심을 두느냐는 배제의 말이기도 하다. 여느 조직에서나 권력을 쥔 사람이 정보에 대한 접근권도 갖는다는 사실은 이런 배제가 청소년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다른 권력관계(남성/여성, 상사/부하 직원 등)에서도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와 판사의 임금이 같아진다면, 노동의 위계는 사라질까?

노동의 프랑스어 Travail는 속박과 고문을 의미하는 것처럼 노동은 힘든 게 분명한데, 왜 노동이 신성하고도 숭고하다고 추앙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렇게 숭고하다는 칭송을 받으면서도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다양한 노동을 떠올려본다. 이반 일리치가 그림자노동이라고 이름 붙인 이 노동에는 가사, 돌봄 등 우리 사회를 존속 유지케 하면서도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모든 노동이 포함된다.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이미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청소년들이 노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자신들은 ‘노동자’가 되지 않겠지만, 또 노동은 사회를 이끄는 힘이라고 여기는 모순을 안고 사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었던 말들과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들에는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의 기본태도와 노동에 대한 이런 분열적인 시선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특히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마저 자녀와의 관계에서 ‘네가 정 운동을 하고 싶으면 지금은 공부하고 대학 가서 해’라고 하더라는 얘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지경이다. 일과 노동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이 분열적인 것은 우선 잘게 쪼개어 분절된 노동구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고민하는 노동이 정규직/이성애자/남성/비장애인의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전문직 노동자의 임금이 같아져 보상의 평등이 실현된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 분배의 평등을 위한 실마리를 마련한다고 해서 이런 분열적인 인식에 기댄 노동의 위계를 없애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교육비의 부담은 누가 할 것인지, 노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또 어떻게 일구어갈 것인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모욕당하지 않으면서 살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청소년노동 인권교육에서 나눌 이야기는 무엇이어야 할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사회가 지정해 둔 자리를 벗어나려는 노력, 내가 누리는 소소해 보이지만 끊을 수 없는 권력의 힘들을 어떻게 놓을 것인지 같이 머리 맞대고 찾아보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두자고 초대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인권 오름 제442호(2015.6.11)에 실린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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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05:14 2016/05/24 05:14

[세월호와 청소년⑤] 청소년도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 사회 꿈꾸며

 

#0. 

가족처럼 함께 일할 분을 찾는다는 흔한 구인광고, 

이모팬, 삼촌팬을 자처하는 아이돌 팬덤, 

영화 국제시장,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또 하나의 가족'을 내세우는 삼성, 

경기도 마을 돌봄공동체의 브랜드명인 '온마을 엄마품'… 

한국 사회가 얼마나 가족의 가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이다. 여기저기 다 가족이고 누구나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언니, 오빠, 형, 누나가 된다. 우리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는 일이 뭐 그렇게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여성의 젠더 위계, 어른-아이의 나이 위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불평등한 조직이다. 가족은 이런 권력 관계와 역할을 중시하면서 가족 구성원 개인을 지워버린다. 개인이 지워진다는 것은 그 가족이라는 조직 안에서는 하나하나의 개인을 온전히 존중 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라는 요구만 남는다는 말이다. 이런 권력의 위계질서가 가족이라는 조직을 유지하는 뿌리가 되고 있다. 

#1.

딸을 출산한 후, 이 사회는 나에게 엄마/아내로서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같았다. 어디를 가도 가족이라도 되는 듯 거침없이 편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딸과 함께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특히 그랬다. '아유~ 애기 옷이 너무 얇네, 발목이 다 나왔네, 모자를 씌워야지, 안 그러면 감기 걸리는데'를 시작으로, 괜찮다고 아무리 만류해도 기어코 사탕을 손에 쥐어주는 사람, 애가 귀엽다며 쓰다듬는 사람, 덥석 아기나 나를 붙잡고 여기 앉으라고 끌어 대는 사람……. 물론 그 이들이 베풀었던 것은 호의였을 테다.

2013년 11월에 진행되었던 밀양희망버스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함께 탔다. 거기서도 숱한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딸이 걷고 뛰며 행렬에 함께 있으면 애기가 힘들겠다거나, 기특하다며 말을 건네고, 내 등에서 딸이 잠들면 아이를 태울 차를 마련해주려던 이들이 많았다.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딸이 힘들건, 지치건, 잠이 들건 간에 '아, 그냥 내버려 두지…….' 하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세 살 된 여자 어린이와 동행하는, 나 같은 희망버스 탑승자는 연대하러 간 시민이 아니라 그저 엄마로만 여겨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이들이 베풀었던 것도 역시 호의였을 것이다.

그 많은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베풀어준 그들의 호의는 내가 바랐던 것이기보다는 그 이들이 해주고 싶었던 것일 테다.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 도와주고 싶거나 챙겨주고 싶은 마음, 아니면 누구 아이든 우리가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 말이다. 그저 내가 도움을 요청할 어느 때에 성심껏 대안을 고민해주는 정도의 응답이면 나는 괜찮았을 것이었다.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대상이 정말 어떤 필요가 있을지 헤아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궁금했다. 넘치는 관심은 접어두고, 도움을 청하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응답하는 사회는 정말 어려운 걸까?

2013년 12월부터 한동안 '안녕들 하십니까' 벽보가 큰 화제를 이루던 어느 날 조그만 벽보가 고대에 붙었다.

"너희들에게만은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너를 키우면서 부끄럽게도 성적과 돈에 굴종하는 법을 가르쳤구나. 미안하다. 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 ― 82학번 너희들의 엄마가"

인터넷과 SNS에서는 온통 감동적인 응답이라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왜 당신이 고려대 학생들의 엄마인지, 어떤 세상이든 그것을 왜 당신이 물려주었어야 했는지 말이다. 이런 나의 반응에 몇몇 친구들은 엄마로 산다는 일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며 농담 섞인 걱정을 해 줄 정도다.

#2.

사실 나는 '세월호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뭔가를 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지금까지 냉정함과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써오고 있고,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재난 참사를 대하는 시민의 자세'라는 문서를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드는 와중에도 끝없이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게다가 세월호 운동에 함께 한 일이 있다면 아주 가끔 집회나 광화문 농성장에 배꼼 다녀오고,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에 참여했던 것 정도일 뿐이니 이런 내가 뭔가 말을 보탠다는 것은 사실 염치 없는 일이다.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어떻게 다르겠냐고 말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2014년 7월 15일로 기억되는 국회 앞 세월호 미사에 참여했을 때, 유가족 한 분이 "내 몸 같은 자식을 잃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듯이 자식을 잃은 나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뭐가 두렵겠어요?"라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뒤론 다른 어떤 얘기들도 들리지 않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테지만, 이 슬픔을 '부모들'의 슬픔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친구들의 걱정대로 '엄마로서의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유가족의 절규는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부모/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호출하는 것 같았다. 그분의 절규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후 내내 인터넷에 오르는 기사나 SNS의 글들이 대부분 그랬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없었던 것처럼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마음으로 슬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고집스럽게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고 나를 아는 한 지인은 이런 냉정함을 어색해 하며 말했다. '네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지 마.'

#3.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분리해서 생각하겠다는 내 마음은 세월호 운동에서 참사의 당사자를 청소년으로 설정하고, 그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과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세월호 참사 당사자의 대다수를 청소년이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476명의 탑승자 가운데에는 비청소년 탑승객, 승무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세월호 안에 타고 있었고, 304명의 실종/사망자 말고도 170여명의 생존자들이 있다. 게다가 '나도 세월호의 승객'이라며 참사를 함께 경험한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당사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을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로 부르는 일은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는 여러 아동학대로 인한 어린이 청소년들의 죽음을 '괴물 같은 나쁜 부모' 탓으로 돌리며 공분하는 것과도 닮아 있다. 계모/계부가 문제라거나, 가르치려고(훈육을 위해) 때릴 수는 있지만, 죽이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거나,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느냐는 논란, 그래서 부모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논의들은 아동 학대가 그저 약자인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폭력의 문제라서 그 가해자는 친부모, 가족, 형제자매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가려버린다. 그리고 그런 폭력으로 희생된 어린이 청소년들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애도도 쉽게 건너뛰거나 잊어버린다. 

비슷하게 가족 동반자살 사건들의 경우도 실상은 자녀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살하는 사건이기 쉬운데, 이때 자녀인 어린이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마저 없는 존재,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같이 논의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 온전한 가족구성원은 아닌 존재가 된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부모들의 슬픔'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회를 고민하면서도 청소년들을 하나의 온전한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게 할 위험을 여전히 안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기 위한 청소년들의 행동은 학교에서 여전히 저지당하고 있으며, 청소년 생존자들도 자신들의 말을 할 기회를 이제야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4.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런 고민은 내 일상 구석구석과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게 아니라 자녀가 부모를 키워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로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못할 존재를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늘 나를 뒤흔든다. 자발적으로(?) 만든 '가족'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에게 부여되는 역할에 대한 억울함이 끝없이 치고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같이 살아야 하니까, 어린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으로서 돌봄, 육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정말 그날그날의 숙제 같기만 하다.

그런 육아의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라는 듯이 최근 몇 년 동안 회자되고 있는 말이 있으니 바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예전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아서 자연스레 육아의 부담을 온 가족이 나누었지만, 단일 가족이 대부분인 요즘 부모에게만 몰리는 육아 부담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자는 취지란다. 그래서 마을 돌봄이 중요하고, 내 자녀만 보이는 좁은 시야를 넘어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돌보자는 것이다.

"육아라는 절실하고 시급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이웃과 만나고 마을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형성된 이웃 관계망이 다시 내 아이가 살아갈 삶의 공간이 된다. '내 새끼'에서 출발했지만, '우리 새끼'로 나아가고, '동네 아이들'로 확장된다. 물론 그 속에서 내 아이도 잘 자랄 것이다. 이렇듯 마을에서 함께 돌보는 공동육아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웃과 마을을 재구성함으로써, 종국에는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한다." - <'내 새끼'가 '우리 새끼'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2015. 05. 01, 프레시안

마을 공동체를 꾸리자고 아무리 제안을 해도 어느 부모는 그 공동체에 함께 하지 않겠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좋은 걸 왜 마다하느냐고 타박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그 이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들의 선택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공동체의 구성원이 온 마을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 마을 각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자녀는 부모의 뜻에 따라 묶음으로 움직인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렇게 그 마을의 자녀들은 본인들은 동의하지 않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버리고 동시에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 없이 많은 엄마 아빠들이 생긴다. 아버지, 어머니뻘/ 할아버지뻘/ 언니 오빠뻘 된다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호칭을 정리하는 사회에서 가족 같은 연장자 앞에서 자유롭게 정당한 요구를 하는 일 동등한 관계를 맺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디를 가도 엄마의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들 모두는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받고 살 수 있을까.

가족주의의 시선을 담고 있는 이런 '말 잘 듣는 아이'에 대한 '운동사회(?)'의 판타지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드러난다. 게다가 이게 왜 문제인지 아무도 고민하지 않아서 더욱 문제적이다. 강정, 밀양을 위시한 다양한 싸움의 현장,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에 찾아가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속을, 아니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냥 툭 튀어나온 호의어린 칭찬의 말 한마디를 이제는 고민해보자. 

일상적으로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주체, 동료시민으로 청소년을 대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때에만 '너희들의 의견도 중요하지, 한마디 해줄래?' 하며 말을 걸고는 필요한 말, 듣고 싶은 말만 골라내는 것은 제대로 듣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월호 기억교실 문제에 대한 논란 속에서 청소년의 입장이 없는 게 문제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흔쾌히 맞장구치기 어렵기도 하다.

온 사회, 온 마을이 다 가족이 되는 사회를 넘어서는 것을 세월호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려는 노력으로서의 '세월호 운동'의 지향으로 고민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글을 써 보낸다.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말 잘 듣는 아이'가 되라고 다그치는 가족 같은 사회 말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논의하고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여정은 더 힘들 테지만 말이다. 덧붙여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는 청소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상의 삶과 관계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자는 요청도 함께.

 

오마이뉴스 201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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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05:11 2016/05/24 05:11

제가 참여한 책이 1월 초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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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오랜 실태조사와 청소년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해 
십대 밑바닥 노동의 맨얼굴을 드러낸 단행본을 발간했습니다. 

청소년노동,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청소년노동자 스스로가 말하는 모욕과 불안의 시간들
청소년노동은 도대체 왜 이따위인가 


등을 살필 수 있는 책입니다. 

많은 관심과 열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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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도, 패스트푸드점에도 이제 청소년들이 없다.
그 많던 청소년 ‘알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더 은밀하고 잔혹하게 변해 버린 청소년들의 일터.
굳건하면서도 격변하는, 격변하면서도 굳건한 
십 대들의 ‘밑바닥 노동’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획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저자 이수정, 윤지영, 배경내, 림보, 김성호, 권혁태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15년 1월 5일
정가 12,000원 쪽수 230쪽 책 크기 145×210mm
ISBN 978-89-6880-016-0 (03330) 분류 사회과학》사회학, 교육학



청소년 노동 세계의 저류를 읽다 

배달 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도 사람들로부터 늘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다. 청소년들이 일터에서 다치고 욕먹고 해고당하는 일은 끊이지 않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노동하는 것을 ‘예외적’이거나 ‘임시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청소년 노동자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오히려 더 고약해졌다.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일자리였던 커피숍,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어느새 대학생, 퇴직한 50~60대, 경력 단절 여성의 몫이 됐고, 청소년들은 더 은밀하고 열악한 노동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럴수록 청소년들의 노동자로서 권리 찾기는 요원해진다.
《십 대 밑바닥 노동》은 청소년 노동자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술된 르포르타주를 통해 ‘나이’와 ‘성별’의 위계 속에서 일상적 모욕까지 감수해야 하는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불안정 노동이 만연화된 노동 시장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청소년 노동 세계의 오늘을 살핀다. 이를 통해 사회는 물론 교육운동과 노동운동 안에서도 하나의 의제로 진입하지 못한 청소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구고자 한다. 이는 청소년 노동을 둘러싼 정책 대안의 번지수를 찾는 데에도 주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 책의 내용과 구성 

청소년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거나 최저임금은 받더라도 주휴수당이나 쉴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하루 장시간의 ‘빡센’ 노동을 경험하고 있다. 시급 5천 원을 ‘세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들이 경험하는 임금 수준은 바닥이다. 그 바닥 수준의 임금조차 벌금이다 뭐다 각종 명목으로 떼이고, 손님들의 하대와 모욕적 언사에 웃음으로 응대해야 한다. “한마디로 팔려 가는 거잖아요. 부려 먹기 쉽고 말 잘 들으니까”라는 한 청소년의 말마따나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이라는 청소년 노동의 현실은 10년째 여전하다.
청소년의 노동은 이제 또 다른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전 사회적으로 삶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노동도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노동 세계에서 가장 주변부에 몰려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이 세상의 변화가 덮쳤다. 청소년이 접근 가능한 일자리 자체가 대폭 줄고 고용이 불안정한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소년 노동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업체에 직접 고용되는 방식에서 간접 고용 또는 특수 고용 형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부 <더 은밀하게, 더 잔혹하게>에서는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험해진 청소년들의 노동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호텔 서빙,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이벤트 피에로, 배달 대행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청소년들로부터 전해 듣는, 불안정 노동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들 일터의 노동 풍경은 생경하다. 직업 소개 업체인지 불법 파견 업체인지도 불분명한 업체에 간접 고용돼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일하는 호텔 서빙, 각종 위험에 노출된 채 용역업체의 일용직으로 소모되는 택배 노동, 홍보 파견업체에서 언제 일을 줄지 몰라 항시 대기 상태로 불안하게 생활해야 하는 피에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힘든 특수 고용 형태로 건당 배달료 몇천 원을 받으며 목숨 걸고 일하는 배달 대행……. 불안정 노동은 고용 형태의 변화뿐 아니라 노동 조건의 후퇴, 관계성과 생활의 불안정화를 동시에 수반했다. 필자들은 청소년들의 일과 어려움을 단지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제를 달아 이러한 노동 형태가 함의하고 있는 문제점을 짚는다. 

2부 <밑바닥을 맴돌다>에서는 성별이나 가족 형태 등에 초점을 맞춰 청소년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본다. 저자들은 인권활동을 하는 청소년, 탈가정 여성 청소년, 기초생활수급가정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 등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네 명의 청소년들을 인터뷰했다. 청소년들에게 노동은 밑바닥을 맴도는 ‘지옥의 문’을 여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관계의 갈등을 풀어 나가고 당면해 있는 삶의 문제를 극복하는 전략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삶과 일 경험에 대한 증언은 청소년에게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청소년 노동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청소년 노동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어렴풋하게 드러낸다.

에필로그에서는 ‘왜 청소년의 노동 세계는 이따위인지’를 다시 묻고 변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점검한다. 필자들은 청소년 노동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예비 노동’, ‘용돈 벌이’, ‘일탈’ 같은, 청소년 노동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편견과 오해의 세계를 먼저 깰 것을 주문한다. 더불어 청소년 노동자를 더욱 취약한 조건으로 내모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노동자의 ‘밑바닥 노동’을 끌어올리는 일은 전체 노동자의 인권과 사회 전반의 존엄을 끌어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 책 속에서 

한때 청소년 노동의 대표 얼굴이었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음식점, 주유소 등지를 둘러봐도 더 이상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그곳들은 생활고에 내몰린 이십 대 청년들이나 장년들로 채워지고 있다. 예전과 똑같은 일자리라고 해도 고용의 형태가 달라졌다. 수요가 많은 시간대나 계절에만 일시적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남은 일자리들은 이제 책임을 물을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알기 힘든 간접 고용, 내일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일 고용, ‘사업자’가 되었으나 노동법의 적용조차 기대할 수 없는 특수 고용 등 불안정한 일자리들로 대체되고 있다. 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노동의 시대, 그야말로 ‘근로 빈곤’의 시대가 청소년 노동도 덮치고 있는 셈이다.
- 프롤로그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 14-15쪽

저항할 대상도 불분명하고 힘을 규합할 동료도 사라진 노동. 관계 맺기 자체가 삭제된 노동. 그리하여 저항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노동. 이렇게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안 그래도 열악한 청소년 노동자의 지위를 더욱더 흔들고 있다.
- 프롤로그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 17쪽

손님이 앉기 편하게 의자를 빼 주고, 물을 따르고 다시 병풍 뒤로 와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병풍 하나를 두고 밖과 안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다. 병풍 너머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은 우아하게 고급스런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 병풍 뒤 바닥에 앉아 있는 우리의 신세는 더욱 처량했다. 어둡고 좁고 바닥은 딱딱하다. 마치 다용도실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 같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꾸역꾸역 처박아 놓은 물건들. 주인이 찾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
- 1부 <화려해서 더 처량한>, 33쪽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사무실 사장한테서 욕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할 때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 지켜 가며 일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천 원 번 날도 있었다. 그 다음 날 진짜 굶었다.
- 1부 <목숨 걸고 달린다>, 72쪽

“성수기가 딱 끝나니까 출근하는 길에 문자가 온 거예요. 이제 나오지 말라고. 충격이었죠. 한 달도 못 채웠는데 3명이 동시에 잘렸어요. 제가 책이랑 휴대전화 충전기를 사무실에 두고 와서, 마지막으로 인사도 할 겸 제 물건 찾으러 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오지 말래요. 택배로 붙여 주겠다고. 미안했나 보죠. 그렇게 짐작은 돼도 기분은 많이 안 좋았어요. 배신당한 느낌? 일회용품이 된 것 같은 기분? 내쳐진 기분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 2부 <‘지옥의 문’을 열다> 100쪽

“아는 친구가 오토바이 타다가 죽었어요. 졸음운전을 하는 트럭이 정면으로 받아 가지고 즉사했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무서워요. 괜히 오토바이 타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싶고요. 저도 사고 났었죠. 비가 엄청 왔어요. 헬멧 유리막이 되게 뿌연 거예요. 앞에 노란불이었는데 횡단보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냅다 뛴 거예요. 그래서 사람 2명하고 부딪혔어요. 또 한번은 사람이 도로에 떡하니 서 있는 거예요. 받을 것 같았어요. 진짜 받으면 어떻게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혼자 넘어졌죠. 그 사람이 괜찮냐고, 학생이 운전을 잘해서 안 받았다고 그러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만 원 주고 갔어요.”
- 2부 <숨겨진 노동, 숨겨진 권리>, 161-162쪽

“다시 가출하고 나서 다른 친구랑 지내고 있었는데요, 진짜 너무 돈이 궁하고 갈 데가 없었어요. ‘이건 안 되겠다, 진짜 못 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유흥업소 알바를 했어요. 주민등록증 사서. 그 친구가 예전에 한 번 일한 적이 있다고, 한번 해 보지 않겠냐고 그러는 거예요. 돈이 궁하니까 그냥 알바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고 해서 했죠. 노래방 도우미였어요. 좀 잘사는 사람들이 저희를 데리고 술을 마시는 거예요. 하루에 20~30만 원은 기본.”
- 2부 <인생 역정 속에서 길러 낸 삶의 근력>, 185쪽

청소년의 노동을 일탈로 바라보는 관점은 청소년의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할 에너지를 오히려 청소년이 노동 현장에 있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데 쓰이도록 만든다. ‘청소년의 노동 조건’이 아니라 ‘노동하는 청소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에필로그 <청소년 노동의 세계는 왜 이따위인가>, 209쪽

노동은 청소년 인구의 상당수가 경험하는 삶의 문제다. 경제 구조와 사회 문화의 변동에 따라 청소년 노동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청소년을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지금, 여기, 바로 우리 곁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 바라볼 때, 청소년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노동의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 에필로그 <청소년 노동의 세계는 왜 이따위인가>, 204쪽

청소년 노동은 노동 현장에서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기에 청소년 노동자의 ‘밑바닥 노동’을 끌어올리는 일은 전체 노동자의 인권과 사회 전반의 존엄을 끌어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생애 최초의 노동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노동을 어떻게 경험하고 노동에 대한 어떤 의식을 갖게 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가장 주변화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청소년 노동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 에필로그 <청소년 노동의 세계는 왜 이따위인가>, 219-220쪽



+ 목차 

유스리포트를 펴내며

프롤로그 •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
: 청소년 노동,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부 • 더 은밀하게, 더 잔혹하게 

빼꼼, 청소년 노동의 세계를 열다 

화려해서 더 처량한
: 호텔리어 혜정이의 하루 
해제 •내 사장은 누구인가 

나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 택배 노동자 가람이의 하루 
해제 •당일 배송 잔혹사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걸까
: 키다리 피에로 민관이의 하루 
해제 •열정팔이 노동 

목숨 걸고 달린다
: 배달 대행 노동자 원석이의 하루 
해제 •따뜻하지만 위험한 배달 음식 

| 두리번 두리번 | 청소년 노동 현황

2부 • 밑바닥을 맴돌다

‘지옥의 문’을 열다
: 노동법 좀 아는 건진이의 고군분투 알바기 

| 두리번 두리번 | 청소년 노동정책의 엇박자 

‘말 잘 듣는 여자애’가 아닌 ‘홍서정’으로 살기
: 여성 청소년 노동자 서정이의 위장 

| 두리번 두리번 | 청소년 노동 관련 조직은 무엇이 있을까? 

숨겨진 노동, 숨겨진 권리
: 기초생활수급가정 청소년 경수의 단단한 노동 

| 두리번 두리번 | 국가에서 매달 생활비를 준다면? 

인생 역정 속에서 길러 낸 삶의 근력
: 탈가정 청소년 효진이의 홀로서기 

| 두리번 두리번 | 청소년을 위한 일자리는 어디에 

에필로그 • 청소년 노동의 세계는 왜 이따위인가 
: 청소년 노동인권을 찾는 질문들


+ 저자 소개 

이수정 공인노무사 
여성,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어 내면서 개운치 않게 남아 있던 지난 경험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동의 방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성 노동, 청소년 노동, 비정규 노동을 고민하며 읽고, 쓰고, 교육하는 활동에 흔들리며 살고 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없애는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비영리단체NGO에서 일하고 있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중고령 노인, 여성 등 불안정 노동자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뭘 하든 10년은 파야 한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부당한 질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부당한 질문 자체를 해체시키는 일에 매료돼 1998년부터 지금껏 인권운동을 이어 오고 있다. 최근에는 ‘듣고 기록하는 행위’에 관심을 갖고 여러 구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서사는 마음을 몽실, 뭉클, 달뜨게 한다.

림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일하고 있을 때는 내가 노동자인 줄 모르다가 노동자라는 걸 알게 된 후 월급 노예로 살지 않으려고 탈출했다. 여성으로 살아왔으면서도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후에야 여성이라는 자각이 생겼고 내 안의 소수자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권교육센터 ‘들’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인권, 청소년노동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활동가.

김성호 성동근로자복지센터 사무국장
변화의 출발도 마무리도 발 딛고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에서의 활동을 꾸려 가며 노동, 공동체, 청소년, 생명 등의 주제를 배우고 있다. 현재 성동근로자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권혁태 노무법인 비젼 공인노무사 
학창시절, IMF 사태에 큰 충격을 받고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졸업 후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민주노동당 상근자로 진보정당 활동을 했다. 지금은 노무법인에서 일을 하면서 양천마을넷에서 지역 활동을 하고 있으며 더불어 지역 차원의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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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08:01 2015/01/10 08:01

그림책의 힘…… 즐거움과 숙연함을 오가며

도봉여성센터 아동인권 교육 중에서

 

“보육 돌봄 전문가”라는 낯선 이름, 그러나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영역’에 관여하게 될 분들일 거라는 추측. 지난 6월 23일 도봉여성센터에서 진행된 ‘아동학대 예방과 아동인권’ 교육은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설된 ‘내일은 보육 돌봄 전문가 양성과정’ 중의 하루 일정이었습니다. 교육과정 시간표를 보니 주로 어린이집, 지역 아동센터 등을 운영할 분들을 위한 과정인 듯했습니다. 물론, 왜 하필 경력단절여성들에게 ‘돌봄노동’으로 재기하시라는 프로그램을 구성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며 안타깝기도 했습니다만…… 
총 4시간 교육의 전반부는 아동인권 전반에 대한 질문들을 담아 PPT 강연을, 후반부는 ‘나도 한때 아이였다-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책 읽기’ 정도의 주제로 모둠 활동을 하게 되었답니다. 오늘 꼬물꼬물에서는 참가자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우선 다룰 주제는 “애 취급/ 자기 결정권의 주체 / 보호주의 / 폭력”이었습니다. 애초 교육을 준비하는 회의에서는 이 네 가지 주제에 대한 사례를 구성해보고, 각 모둠에 당신들의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그런 행동을 했던 어른들(보호자인 부모나 친척, 교사 등)에게 편지를 쓰도록 해보자는 것이었죠. 그러나 구성한 사례가 무척 단편적이고, 풍부한 얘기가 나오기 어려울 듯하여 동화책을 같이 읽고 모둠 활동을 하는 걸로 급선회.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지각대장 존>, <고함쟁이 엄마>. 이렇게 세 권을 골랐습니다. 함께 교육을 간 묘랑이 ‘어린이 책 공룡 트림’에서 미리 읽어보았다며 강력하게 추천했고 전 덥석 물었습니다.

네 모둠에 세 권을 고르시라고 했습니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두 모둠에서 읽고 <지각대장 존>, <고함쟁이 엄마>를 나머지 모둠에서 읽기로 했습니다. 모둠별로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눈 후, 자유롭게 전지에 표현해보시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두런두런 책을 다 읽은 참가자들은 앞에 놓인 전지를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뭔가 멋진 걸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일 수도 있을 테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해 본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어색하게 주저주저하던 참가자들이 뭔가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약간은 부담스러웠을 모둠 작업이 끝나고 다 함께 나누는 시간. 검피 아저씨를 먼저 만나보기로 했어요. 책을 읽은 모둠 한 곳에서 책을 읽어주시고, 모두 함께 볼 수 있게 동화책은 슬라이드 화면으로 띄어놓았습니다. 검피 아저씨의 배에 아이들과 온갖 동물들이 함께 올라타고 즐거운 놀이… 동화구연을 듣는 듯, 함께 그림책을 보는 동안 분위기가 들썩합니다. 검피 아저씨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또 아이들과 약속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약속을 빙자한 규율과 통제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를 ‘어린 애 취급’하지 않고 온전한 존재로 대한다는 것에 대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눕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고함쟁이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가 고함을 치자 아기 펭귄의 몸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버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분위기는 처참할 지경으로 숙연했습니다.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 정도까지의 스물대여섯 명의 참가자들이 아마도 숱하게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을 테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무거운 공기는 왜일까요? 참가자들은 ‘내가 지르는 고함에 아이들이 저런 마음을 느낄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봤다.’거나 ‘반성한다.’는 말을 합니다. <고함쟁이 엄마>를 읽으면서 ‘폭력’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는 것, 아이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리게 되는 권위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야 했을까요? ‘좋은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짓눌리는 참가자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마지막은 지각대장 존. 아이들을 키워오며 믿어주지 않았던 일들이 떠올랐다고 하는 참가자가 있었습니다만,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네요. 고함쟁이 엄마로 가라앉은 분위기는 다행스럽게 발랄해졌습니다. “존 페트릭 노먼 맥헤너시”라는 지각대장 존의 풀네임을 반복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과연 존을 존중하는 것일까? 권위의 힘으로 누르는 것일까?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다는 것-‘나를 이렇게 불러달라’ 하고 요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물론’의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참가자들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 일은 참 행복했습니다. 서른 명가량의 어른들이 함께 책을 읽는 색다른 교육을 마치고 들었던 아쉬움도 있죠. 그림책의 장면들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혹은 세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아기 펭귄의 부리는 왜 산꼭대기로 갔는지, 존은 왜 점점 더 까만 새벽에 학교 가는지, 검피 아저씨는 왜 화내지 않는지…… 지각대장 존을 읽으며 ‘지각하면 안 되겠죠?’ 하는 말씀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ㅎㅎ

전체 줄거리를 잘 아는 것보다 그림책 한 장 한 장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더 찾아보고 갔더라면 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와 이거 좋다~’ 하고 느끼는 것을 나누기 위해 진행자가 준비할 일은 참 많잖아요? 우리의 교육은 뭔가를 전하는 일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니 말이죠. 좀 더 가볍게 무게감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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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11:27 2014/08/03 11:27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청소년인권에 연대하는 것부터~!

- 2014.4.18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고민나누기 워크숍

<워크숍 일정표>

10:00~

12:00

여는 강의: 2014 십대 '밑바닥노동'의파노라마와 노동인권교육의 응답

강사: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12:00~

13:00

중식(식사)

13:00~

15:00

교육사례 발표 및 현황 교류 시연1) 청소년 노동법 교육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시연2) 노동인권 감수성 교육 (두근두근 인권탐험대)

15:00~

17:00

Session별 토론

노동인권교육과 지역 청소년 노동인권활동 / 노동법교육 /

노동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노동인권교육

이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신문의 스케치 기사처럼 일정표 넣고서 몇 명 참여했고,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어떤 평가들이 있었는지를 챙겨 써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 무수하게 맴도는데도 뭔가 체계 없이 뒤죽박죽이라 끄적거린 글은 A4용지로 서너 페이지를 들락날락. 이 정체 모를 맥락상실이 무얼까 며칠 동안 컴퓨터를 붙들고 밤을 새기 직전 겨우 잠들 만큼 씨름을 해댔다.

 

그런데 오늘(5/20)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터졌다. 어떤 사람이 내 옆에 서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내 우는 꼴을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회의 중에 논의한 여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심정, 그 억울한 모멸감에 너무 심하게 공감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겪었을 모든 일상에서 그들을 곤경에 빠뜨린 못된 사람과 시스템에 화가 났다. ‘미안하고 부끄럽네.’ 하는 혼잣말이 나오려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월호로 인한 세상의 반응과 나의 혼잣말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번쩍.

 

장래희망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1년 전쯤의 마음은 이랬다. ‘나도 이제서야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발견했다. 그동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노동자로서 요구하고 싸워도 되는 줄 몰랐다. 그냥 사회 생활하려는 힘없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인 줄 알고 외면하곤 했다. 아직 공부만 하고 있는 그대들이 나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할거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래희망인가.’

 

그런 마음을 품고 내달려 온지 1년이다. ‘이제는 나도 활동가라고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도 움찔거리곤 했지만. 나의 첫 마음도 지금 다시 보면 오류투성이다. 청소년들은 공부만 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노동자이고, 이미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권리주체이다. 아동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고 비청소년이 된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도 숱하게 당해온 부당한 처사에 분노했음에도, ‘어른’ 행세를 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고민한다. 청소년 노동인권과 청소년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비청소년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안간힘.

 

워크숍 얘기를 써야 하는데 딴 소리만 하고 있는 것같지만 절대 그렇진 않다. 그날의 워크숍은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이 마주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였으니까.

 

최근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라는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노동3권으로 대표되는 노동법 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비가시화된 권리문제를 제기하는 교육이기도 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과격한 귀족노동자들의 싸움으로 격하된 ‘노동’운동의 외연을 순화하고 싶은 의도를 담은 교육이기도 하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법이 보장한 권리를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노동 관련법 조항 교육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이틀, 장애인 송국현씨가 숨진 지 하루가 지난 4월 18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렸던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고민나누기 워크숍-청소년 노동인권교육,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는 애당초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진행해온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공감하는 주체들이 모여 점차 확대되어 가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누고자 기획 추진되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묘하게 규모는 커졌고 고민은 깊어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면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또 당신은) 노동법을 몰라서 그 숱한 마음과 몸의 고생을 고스란히 감내해가며 일을 해왔던가? 우리가 십대 밑바닥 노동이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의 노동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근로기준법? 우리 회사에서 그런 말은 씨도 안 먹히지.’ 하고 포기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연차, 생리휴가, 상여금, 각종 수당을 챙겨 받고 13월의 용돈이라는 연말정산도 한다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게 뭥미?’하는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다면 당신도 나처럼 노동관계법령들이 적용되지 못하는 영세한 사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본 적이 있는 거다.

내가 노동자라는 자각을 한 순간부터 노동3권, 노조중심의 운동이 아닌 ‘노동인권’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을 체험했다는 얘기다. 물론 일반노조가 있고 다종다양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작은 사업장-사장 말고 직원은 나 하나인 작은 사업장-에서 그런 모색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여직원이기 때문에 전화는 당연히 내가 받았으며, 커피를 타고 사무실 책상을 걸레질하고 바닥을 쓸어야 했고, 늘 상냥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다. 비청소년이고 여성인 나도 숱한 모멸의 순간들을 버티며 노동하느라 욕쟁이가 될 지경이었는데 청소년들의 노동은 더더욱 고단하지 않을까.

 

시인 백무산은 자신의 시 <감수성>에서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라고 말했다.

학습노동자이거나 단기간 노동자이거나 십대 청소년들의 노동이 밑바닥에 머물기는 매한가지. (학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청소년들의 일과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서 생각해 보시길. 무급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휴가는 아예 없고, 매일 초과근무, 강제야근…ㅠㅜ)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의 성과로 지하철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모두의 편의를증진시켜 준 것처럼, 가장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은 결국 나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경쟁구도 속에서 나는 사회에서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소수자로 낙인을 찍어 사회 밖에 내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청소년과 함께 분노하고, 청소년이 노동을 비롯한 생활 모든 영역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획득할 힘을 갖도록 지원하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나누기 워크숍은 어찌 보면 자기 할 바를 다 한 것도 같다. 나를 깊숙한 고민에 빠뜨렸으니 말이다.

 

<워크숍에 참가했던 일부 참가자들의 평가-김성호 노무사 정리>

  • 법률의 틀을 넘은 감수성교육이 지역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
  • “노동부에 직접 신고하는 경험도 필요하다”↔“청소년이 권리침해에 대해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가 논쟁이 치열했다.
  • 청소년들이 노동법 교육을 듣고 나면 “나와는 상관 없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법망으로부터의 소외감
  • 노동법 교육도 감수성의 영역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
  • 법으로 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 “최저임금 0000원”이 아니라 “생활에 어느 정도의 수입이 필요한가?”의 질문처럼 열린 질문이 필요하다.
  • 안정적인 소통을 위한 최소 2시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 자신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인 것 같다. 그런 뒤에 저항을 조직할 수 있지 않을까?
  •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분리 운영하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 예절이나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들이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교육활동가 준비가 필요하다.
  • 지역, 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만큼 내용과 실천 방식이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 흐름을 묶어내는 틀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 배경내의 여는 강의에 깊이 공감했다.
  • 노동법과 노동감수성 융합된 교안이 필요한 것도 같다.
  • 일회성 교육을 위한 강사단 양성이 아니라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풀이 있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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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11:23 2014/08/03 11:23

모처럼 남편이 이틀을 연달아 쉬었다. 오른쪽 아래 맨 끝 어금니에 염증이 생겨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일용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반차를 쓰거나 조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린이집 하원한 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생협 매장에서 부추, 오이, 무와 각종 찬거리 장을 보고 들어왔다.

 

초저녁에 엄마 아빠와 같이 있는데다가 저녁 먹고 잠시 마실도 다녀오자 하니 우리 딸 완전 신이 났다. 그 바람에 말도 참 잘 듣는다. 먹으라는 대로 밥도 잘 먹으며 '맛있어요.'를 연발해 주시고, <로보카 폴리>는 두 개만 보자니까 세 개 보겠다며 협상을 제시한다. 목욕하자면 목욕하고, 이제 자야지 하니까 밤 10시도 되기 전에 저 좋아하는 이불을 들고 순순히 안방에 걸어 들어가는 거다.

 

딸을 데리고 방에 들어간 남편이 아이 재우면서 자기도 잘 테니, 이제 나는 장 본 것들을 처치해야 한다. 김치라곤 묵은지만 남은 살림살이라 신선한 부추 오이 김치와 무생채, 무나물 만들기가 오늘의 일거리다. 결혼생활 54개월, 4년 살림 경력이라 그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다행히 시이모님이 고춧가루 양념장을 만들어주신 것도 냉장고에 저장되어 있으니 오늘은 정말 횡재한 날이다.

 

잠시 고민을 한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굿닥터>를 IPTV로 시청해 볼까 했지만,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가 두 편 있는 게 걱정되기도 한다. 원고료를 따질 급이 안 되는 처지인지라 그나마 받는 게 어디냐 생각하다가 문득 아는 청년이 며칠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저를 무급으로만 쓰고 싶어 해요.” 음…. 사람들이 내 글에 원고지 한 장당 몇만 원쯤 줄 날이 언제가 될까 하는 생각이 흘러간다. 어쨌든 나는 신용 위주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글을 쓰기로 한다. 원고 하나 마칠 즈음에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아마도 나는 이 원고를 마친 후 아까 건너뛴 <굿닥터> 몇 편 보고 잠을 잘 것이다.

 

 

아마도 결혼하고 애 엄마가 되고부터 혼자만의 시간 또는 동굴, 이런 것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딱히 갈망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동굴이라는 단어가 남자들의 어떤 특성을 말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며 '여자가 웬 동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여튼 내게는 동굴이 필요하다. 동굴의 절대조건은 두가지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할 수 있을 것. 이런 절대적 자유 시간이 내게 필요한 것이다. 


결혼 초에는 남편과 가사 분담을 하자고 요구하기도 했고 한동안 잘 지켜 오기도 했지만, 임신과 출산 이후에 남편에게 애 좀 챙기라는 것 말고는 집안일을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간혹 너무 설거지하기 싫은 날 설거지를 해 달라거나, '이런 거, 저런 게 안 되네요.' 하고 당신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 말고는 거의 그렇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나의 동굴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낮의 활동이야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이른 저녁 시간까지가 내 시간이니 혼자 보고 싶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때론 동네 친구들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은 자전거를 끌고 가까운 대학교 교정에서 커피 한잔 사 들고 책을 읽는다. 전에는 여기저기 숱하게 많은 커피집 중 하나를 골라 '죽순이' 노릇을 하며 책을 읽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이렇게 유한마담 같은 일정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은행이나 관공서 일도 처리하고, 집 안 청소도 하고, 세탁기 한 통 차기를 기다리며 미뤄두었던 빨래도 돌린다. 

 

육아휴직(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기이니 꼭 해야만 한다고 나름 치열하게 작전을 짜서 얻어낸 사연 많은 사건)을 하기 전에는 정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집-어린이집-회사-어린이집-집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생활. 싫어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정해진 약속 시각을 지킬 수 있었던 숨이 가쁜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했다. 물론 이런 일상을 잘 넘기며 살아내기 위해 간간이 자투리 시간이나 틈새를 활용해서 막힌 숨통을 틔우기는 했지만. 


내게 나름의 장래희망이란 게 생긴 후로는 교육이나 참여해야 할 모임이 자주 생기고 있다. 안 그래도 술과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 만나 수다 떨고 연극과 콘서트도 봐야 하는, 분주하게 다녀야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하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남편에게 단단히 다짐을 놓아왔는데 그 횟수가 좀 더 늘어나 버린 것이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늦은 편이라 그런 모임이 있는 날, 딸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고 밥을 챙겨줄 조력은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이다. 시어머니나 친정엄마보다 속이 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처음 신청하는 것이 번거롭고 매번 돌보미 선생님들의 일정을 조절하느라(이 조율까지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귀찮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 서비스가 없었다면 늦은 나이에 찾은 나의 장래 희망도 서럽게 포기했을 것이다.

 

낮은 낮대로 바쁘고, 밤은 밤대로 분주한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러다 과로로 쓰러지겠네.' 싶어 때론 슬쩍 겁이 날 때도 있다. 고작 육아 휴직 4개월 차인 내가 혹시 과로사? 이제 애가 32개월이고,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54개월을 맞는 중이고, 아직 내 인생의 반도 다 못 살았는데, 혹여 만일의 경우 내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내 과로사의 중대한 요인이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인, 주부라는 정체성 때문이라면......나는 주부, 안 하고 싶다. 

 


글쓴이 :  옛날 같으면 손녀딸 볼 나이에 낳은 딸이랑 애증의 관계를 쌓고 있던 중,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활동가라는 장래희망에 부풀어 좌충우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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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5 12:57 2014/04/25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