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좀 봤네요. ^^;;
먼저 제가 가지고 있는 2006년도 판에는, 위 절이 두 개로 나뉘어 있단 말씀을 드립니다. 즉 "제5절 인간의 본질"과 "제6절 코뮤니즘: 기원과 유토피아" 이렇게요.
(1) 두 번째 단락, 주37 바로 다음에 "공책"은 "수고" 또는 "노트"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2) 주41 다음 문장에.. "헤겔 논리학"이라고 하신 것은 "헤겔식 논리"라고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바우어가 헤겔의 "논리학"의 한계를 못 벗어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헤겔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논리 안에 갇혀있다는 게 맑스의 바우어 비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맑스의 경우엔, 이 당시까진 헤겔의 논리학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 그 다음 단락.. <경철수고> 인용부분. "...노동을 존재로서, 즉 인간 존재를 입증하는 것으로서..."를 "...노동을 본질로서, 즉 자기를 입증하는 인간의 본질로서..."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4) 제가 위에서, 곰탱이 님이 "존재"라고 번역하신 Wesen을 "본질"이라고 바꿨는데요, 이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독일어로 Wesen이 두 가지 뜻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저는 이번 절에서는 대체로 "본질"이라고 해야 의미가 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위에 썼듯이 이 절의 제목도 "인간 존재" 대신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 것이고요. 물론 어떤 경우엔 "존재"라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제가 "본질"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헤겔도 그렇고 포이어바흐도 그렇고... 당시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을 나름대로 규정합니다. 이번 절에서도 드러나듯이 맑스도 적어도 <경철수고>에서는 그런 "관행"(?)을 따르는데... 그는 포이어바흐의 "유적존재"라는 규정을 인간의 "본질"로 받아들이면서도, 헤겔이 (비록 사변적인 형식으로였지만) 강조한 그것의 "역사성"도 함께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맑스의 이러한 태도, 즉 인간의 "본질"을 어떤 식으로든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취를 감추죠.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란 그저 현실에서 그가 맺고있는 관계에 의해 규정될 뿐이라고 말하는 거구요.
결국 이 모든 과정에서... 맑스의 문제는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하는 것으로 요약될 것 같습니다. 이번 절은 바로 그러한 과정의 한 국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그렇다면... Wesen도 "존재"보다는 "본질"이라고 번역해 주는 것이 더 명확하지 않겠냐는 거죠.
에구... 주절주절 많이 늘어놨네요. ^^;;; 이거...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한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수 있는 만용이 아직 남아있다니 놀랍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