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보다는 "본질"이 의미를 더 명확히 전달해주는 것 같습니다.
-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제가 가지고 있는 판본에서는 위 본문의 딱 중간쯤에 있는 "맑스가 인간 유적 존재의 대상화를..."로 시작되는 문단부터가 "제6절"입니다.
- 한편 "맑스가..."로 시작되는 그 문단과 그 다음에 있는 짧은 문단에서는... 저자 하인리히는 맑스가 내용적으로는 포이어바흐를 넘어서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그러나 곰탱이 님의 번역에서 이게 좀 불명확한데... 어쩌면 그것은 판본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판본에는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는데... 그것을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곰탱이 님의 번역을 약간 수정했고, 또 제가 가진 책에서는 그 아래 있는 짧은 문단과 통합되어 있습니다.)
맑스가 인간 유적 존재의 대상화를 대상적 생산으로 파악하고 이 생산을 역사적 과정으로 파악할 때, 포이어바흐의 비역사적인 인간학은 이미 잠식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유적 존재의 내용적(inhaltliche) 규정에만 적용된다. 맑스의 담론 구조(Struktur)는 여전히 하나의 인간학적인 존재철학이다. 이는 특히 유적 존재의 사회성에서 뚜렷해진다. 포이어바흐에게서 이러한 사회성은 “인간과 인간의 통일”로서 오로지 추상적으로만 나타난다. 맑스는 이런 견해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포이어바흐의 영역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실재/현실(gesellschaftliche Wirklichkeit)은 인간적 본질의 객관화(Objektivierung)로 이해되고, 사회성은 개별적 개인들에 내재한 유적존재를 통해 나타난다. 맑스는 단호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