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공공.공.공.의료.보건.보건의료.참여....
- 조지콩
- 2012
-
-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되게 만들었는...
- 조지콩
- 2011
-
- 옛친구를 만나다.(2)
- 조지콩
- 2011
-
- 비행기타고.한국말만하고.
- 조지콩
- 2011
-
- 기부를 강요하는 사회.(2)
- 조지콩
- 2010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뿌리와 이파리
2005
#1. 이론
세상에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우리가 늘상 말하곤 하는 인간은 합리적일 때.
#2. 현실
그런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두 번째 가정, 인간은 어느 때에는 합리적이지만 어느 때에는 무척이나 합리적이지 못하다.
첫 번째 가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 발생한다. 즉 인간은 복잡하다는 거다.
#3. 다시 이론
그러나 어떠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자할 때, 첫 번째 가정은 유용하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정도 상당히 유용하다. 이론의 설명은 최대한 사회현상을 최대한 단순화해야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1.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선 늘 이기적인 인간이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은 합리적이기때문에 결국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이론상은
#4. 다시 현실
그런데, 현실은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 않다. 왜? 인간은 합리적이기도하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면서 이타적이기도 하고, 그 중간에 있기도 하니까.
#5. 이론과 현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우선,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정도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사용한 이론틀이 진화적 게임이론(인간은 조금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며 진화해 간다)이다.
혈연인가? 유전자를 조금 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객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만 이타적인가? 실험에선 아니다라는 것이 나왔다. 그러면 반복-호혜성인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내게 도움을 주기때문만 인가? 아니다. 반복-호혜성이 전제하는 경제적 인간.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에게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타적 행위를 한다. 그럼 유유상종? 잘난체? 의사소통? 집단선택인가?
여기까지의 많은 이론들이 일정부분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긴하지만 각 가설이 갖는 한계점들이 있다. 하지만, 부분적 유유상종 현상, 이타적 집단이 이기적 집단에 비해 조금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점, 국지화, 모종의 집단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유리한 조건을 생성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6. 이타적 인간
결국 이타적 인간은 실제 존재하고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타적 인간은 존재하며, 여전히 진화 발전해 가고 있다. 즉 이타적 인간이 이기적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집단선택, 국지화된 상호작용, 국지화된 지식전수과정, 의사소통 등 때문이다.
#7. 어떤 식으로 존재? 어떤 경우 강하게 발현? 어떤 역할?
인간은 공평성 혹은 이타심에 근거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는 학습되었다고 봐야한다.(어른과 아이들에게 같은 실험을 했을 경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서 더 많은 이타성을 볼 수 있다)
또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불공평에 징계를 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 집단이 협조적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 경제생활이 시장경제에 통합되어 있는 정도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호의적 제안에 호의적 답을 할 수 있는 호혜적 인간형이 존재하며, 그것은 신뢰가 그 밑바탕에 있다.
이러한 강한 호혜성의 존재는 불완전한 계약이 불가피한 시장 상황에서 시장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강한 호혜성은 집단 내 무임승차 행위를 최대한 억제하며, 집단 구성원 사이의 이타적 협조행위의 가능성을 높인다.
#8. 인간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를 함께 가진 인간에게 조금 더 강한 정도의 이기적 유전자는 학습(의사소통, 사회제도, 교육 등의 요인에 의해)을 통해 이타적 유전자로 변화할 수 있다.
꽃피는 봄이오면 (2004년 류장하)
#1. 최민식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열정' 이 말 외에는 더 찾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내는 삶은 너무나 진실처럼 보인다. 그 속에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영화는 나의 삶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영화속의 최민식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2. 옛날 그리고 겨울
겨울은 매우 많이 힘든 시기를 표현하곤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는 또다시 옛날이라는 시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그것도 꽃피는 봄이오면 사람은 힘든 시기가 지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현우에게 우연히 찾아든 도계중학교의 관악교사자리는 그가 엄마에게 말하던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싶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준 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지만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온다. 그렇게 현우의 기나긴 겨울은 끝이 난다.
#3. 사랑
3 가지의 사랑. 가족에게로의 사랑, 이성에게로의 사랑, 그리고 아이들에게로의 사랑. 현우는 내리사랑과 동시사랑과 치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시사랑을 사랑할 수 없음을 내리사랑에게 풀어버리고 치사랑을 통해 내리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또 다시 동시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이 3가지 사랑은 늘 동시에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현우가 배운 사랑은 우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사랑의 완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현우가 깨닫는 순간 그는 3가지 사랑을 모두 얻게된다.
#4. 꿈
우리는 꿈을 가졌었다. 부모들도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못남으로 인함이라기보다 그것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꿈이다. 우리의 꿈과 아이들의 꿈은 기억되고 이야기되지만 부모들의 꿈은 그렇지 않다.현우가 불현듯 엄마에게 물었던 '엄마 꿈은 뭐였어?' 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고 그러다가 가정이 행복한 것이 꿈이었다고 그리고 현우가 잘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제나 우리 부모들의 꿈은 우리에게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잃어야 할 것과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잃어도 괜찮은 것과 꿈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잃지 말아야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5-1. 호감
호감과 사랑은 다르다. 이미 사랑중에 있는 이들에게 호감은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더욱 안겨준다. 호감이 언제나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감은 곧잘 사랑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현우에게 있어서의 호감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 상황에 다가온 도피처다. 그러한 도피처는 결국 호감에서 끝날 수 밖에 없다.
#5-2. 질투
질투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그런 질투가 있기에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6-1. 내기억
내가 오래동안 살았던 동네는 태백이다. 탄광촌.... 어쩌면 탄광촌이야기라는 것이 나를 이영화로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잠깐 나오는 거리의 모습들과 익숙한 탄광의 모습...그리고 그 속에 있는 광부들...떠나온 곳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에게 잠시 잠깐 추억을 전해주었다. 어느덧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그곳을 다시 나의 기억속에 담아주는 장면들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인지 화를 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련하게 저려온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읽을려고 한다면 감독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사적경험은 이 영화에서 사적인 말을 한다.
#6-2. 떠나는 이와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태백을 떠나면서 난 훨훨 날고 싶었다.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도시에서 느낀 것들은 허전함과 외로움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는 이였다. 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가끔 아주 가끔 찾아가보고 싶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