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8 총선, 부정선거 수사를 중단하다
문호철의 반헌법 행위 첫 번째 장면은 1967년 6·8 총선 공화당 부정선거 수사중단이다. 강원도 영월·정선에서 당선된 공화당 장승태의 선거법 위반혐의를 수사했다. 박쥐작전, 베트콩작전, 두더지작전, 울타리작전, 흑색작전. 공화당의 부정선거 수법은 그 작전 이름도 다채로웠다. 문호철은 현지로 가서 관련자 70여명을 소환해 부정선거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장승태 측이 증인을 매수·협박하고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자 문호철은 다른 증인을 확보하는 대신 수사를 접었다. 그 결과 장승태는 국회의원 세 번, 체신부장관까지 지냈다. 부정선거를 덮은 검사와 부정선거로 당선된 의원이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남산 부활절예배, 할머니들이 KBS 점령한다는 공소장
1973년 4월 남산에서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유신반대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경찰에 제지된 박형규 목사 등을 문호철은 '내란음모'로 기소했다. 공소장의 내용은 걸작이었다. 할머니들이 다수인 십만 군중이 두 대열로 나뉘어 한쪽은 KBS를, 다른 한쪽은 서울 중앙청을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방청석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호철은 이 공소장을 쓰기 전 박형규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고시에 합격해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배속됐는데 기소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니 도와주는 셈치고 '폭력시위'라는 어귀 하나만 쓰게 해달라."
박형규는 문호철이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입씨름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허위진술에 동의했다. 그 허위진술이 내란음모 공소장의 씨앗이 됐다.
이 사건은 1988년 5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었다. 문호철은 이미 10년 전에 세상을 등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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