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장은영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미 상무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안보영향 조사보고서’에 대해 “(미국이) 말은 안보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미국 철강산업 가동률을 현재의 72%에서 80%까지 올리기 위해 연간 1330만t의 미국시장 철강수입을 규제하겠다는 경제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상무부 보고서는 냉연·열연·압연강판 등 600여 종류에 이르는 거의 모든 철강 관련 제품을 수입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안보는 명분일 뿐이고 세계 철강 공급과잉 상황에서 미국 철강기업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실리’다.
세계 철강 공급과잉 물량은 약 7억6천만t(한국철강협회 추정)에 이른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철강 수입규제 대상 12개국을 선별할 때 각국의 과잉 생산 능력 증가율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고 미국 상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세계 철강산업의 공동 책임인 과잉 생산 문제로부터 미국 철강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고 또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심산으로 한국 등 다른 나라에 1962년에 제정된 낡은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들이댄 셈이다.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은 “트럼프가 미국 철강왕 카네기의 흘러간 옛 전설을 부활시키려는 것 같다”며 “미국은 현재 20여종에 이르는 한국산 철강제품에 60% 안팎의 고율 반덤핑 관세를 물리고 우리 정부의 철강보조금을 문제 삼아 상계관세를 부과하면서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국내 일자리를 위협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철강 가공제품 및 철강 1차제품의 경우 수출 100만달러당 취업유발인원은 각각 5.9명, 4.6명으로, 철강 수출로 만들어낸 직간접 일자리는 지난해 연간 15만5천명에 이른다. 우리 철강업계의 지난해 철강 대미수출액(32억6천만달러)은 전체 철강수출액의 약 9.5%를 차지한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미국 수출이 막히면 당장 1만5천여명의 ‘고용 타격’이 불가피해지는 셈이다.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수출 1위를 기록 중인 품목은 총 94개(2016년)이며, 이 가운데 철강제품이 20개(21.3%)다.
또 세탁기 등 가정용 전기기기와 자동차의 지난해 수출 취업유발효과는 각각 4만4천명, 63만8천명이다. 수출 100만달러당 취업유발인원은 가정용 전기기기(10명)와 자동차(8.6명)가 전체 제조업 평균(7.4명)보다 높다. 무협은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 총수출(5602억달러)이 우리 경제에 직간접으로 유발한 일자리 규모가 415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부당한 보호무역 공세에 정면대응을 강조한 배경에도 미국의 자국 노동자 우선주의에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서 “(232조 관세 부과는) 미국 경제와 산업의 관점에서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수입 억제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해한다”며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통상 문제는 (일자리 등) 국익 확보 관점에서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재선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후원그룹인 중산층 백인(노동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정책으로 (철강 232조를) 보고 있다”며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공세가) 여기서 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다른 전선으로 넓혀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