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률에 남과 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아리랑 노랫 말을 뇌이다 보니 목이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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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 ‘그리운 강남’, 이 얼마 만에 듣는 노래인가.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통일 축구경기 TV중계화면에 한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달랑 북 하나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이 묻혀있던 한을 끄집어 내어 우리 고유의 창 같은 음률로 토해내듯 불러대는 이 소리에 나는 그만,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모국의 소리꾼 장사익 이었다. 어렸을 때 동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제서야 다시 듣게 되었는가? 그 내력을 찾아보니 일제강점기 언론인 김형원의 시 '그리운 강남'에 작곡가 안기영이 1928년에 곡을 붙였다. 그렇다, 이 노래는 그냥 철 없는 아이들만의 노래는 아니다.
뒤 남과 북의 음악교과서에도 실려 마을마다 골목마다 메아리 쳤던 노래였다.
그는 해방뒤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1947년 암살 당한 여운형 선생의 추모곡을 작곡하고 장례식에서 연주지휘도 했다. 좌우이념의 대립이 한창이던 그 때 좌익으로 몰려 그는 이승만정부에서 음악활동마저 중지당했다. 그리고 남북전쟁 중 1950년 그는 북으로 갔고 그의 노래들은 남녘에서 금지되었다. 거의 40년이 되어 남녘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온1980년대 말에야 그의 창작품들이 풀려났다. 그동안 땅 속에 묻혔던 안기영 음악의 뿌리가 뒤늦게나마 소리꾼 장사익에 의해 되살아나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로스앤젤레스 챈들러음악당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 공연에서 열광하는 3,000명 청중 속에 나도 있었다. “사람이 그리워서”라는1부 공연에서는 ‘희망 한 단’, ‘찔레꽃’ 등 국악에 바탕을 둔 풋풋한 황토 빛 노래들을 그는 절규하듯 불러댔다. 북과 장고, 기타와 피아노가 받쳐주는 반주의 화음이 감동을 더 해 주었다. 2부에서는 친근한 가요, ‘님은 먼 곳에’, ’동백아가씨’등을 탁하지만 가슴 시린 서정을 담아 온 몸으로 노래했다. 구슬픈 듯 아득한 해금의 음색도 가슴을 파고 들었다. 전통 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진 반주로 우리 겨레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와 정이 끈끈한 노래들을 그만의 독특한 소리판으로 이어 갔다.
한 판, 한 판 더해 가며 무대와 청중은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노래를 마친 그가 ”용의 눈에 점을 찍은 이 소리판에 와주신 여러분….”하며 미국 순회 마지막 공연에 성황을 이뤄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감동에 벅찬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일어섰다. 기어이 “한 번 더! 한 곡 더!”의 열화 같은 재청에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이 안기영의 곡을 엮은 ‘강남 아리랑 (그리운 강남)’을 선창하자 객석의 모두가 일어나 함께 불렀다. “ …… 또 다~ 시 보오~옴이 오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이 노래를 부르며 문득 일화 하나가 생각났다. 남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1년, 북미주와 유럽의 선우학원, 이영빈, 김동수 등 학자와 종교인 30여명이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북의 려연구(여운형 따님), 안경호 박사 등 15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의 대화] 모임을 가졌다. 음률에 남과 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아리랑 노랫 말을 뇌이다 보니 목이 메였다고 한다. 그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이 노래의 감동으로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일제강점 시절 창가수준의 창작계를 한 차원 높여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는 안기영의 기여가 뒤 늦게 남녘에서도 조명되었다고 한다.
않았던 분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반목과 대결을 계속하고 있는 분단조국의 동포들이 똑 같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아리랑’ 가락은 어찌 그리 아픈 굴곡의 역사를 겪어야 했나. 우리 겨레의 영혼에 들어와 어린아이들마저 즐겨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렇게 끊었다 이었다가, 버렸다 주었다 해야만 했는지! 겨레의 애틋한 소망을 담은 이 한 노래의 역사가 이렇게 우리 가슴을 에이니, 떠나간 자와 남은 자, 남았으면서도 갈라져 사는 가족의 아픈 수난들을 그 어찌 말로 표현하랴. 4계절이 분명치 않은 이곳 미국의 남캘리포니아이지만 매해 3월이면 공기 맑은 해안도시 산후안 카피스트라노에서 제비축제가 열린다. 우리 겨레에게도 평화와 통일의 감람나무 잎새를 물고 올 제비가 기다려진다. 그 언제 남과 북의 동포들이 한 자리에 만나 손에 손 맞잡고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를 함께 부를 날이 올까!
미주 중앙일보 2007년 6월28일 한국의 문예월간 '한국산문' 2008년 6월호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동인지 '너 의사 맞아?' 2009년
장사익 그리운 강남, 아리랑: https://www.youtube.com/watch?v=9HRQ6FYBQwY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기사공유 또는 재배포시 출처명기 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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