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피의자인 가짜 수산업자에게 고가의 골프채 세트 등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동훈 전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지난 13일 8시간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한 말이다.
‘여권 인사가 회유했다’는 이 전 대변인의 발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초대형 권력형 비리다. 향후 대선 향방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미칠 뿐 아니라 즉각 수사에 착수해 단죄해야 할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현직 검사와 정치인들까지 연루된 사건 자체를 없던 사건으로 만들고,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여권 인사’가 과연 누굴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며, 그 주장을 잘 들여다보면 인과관계도 잘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그 ‘여권 인사’가 사건을 무마해주려고 했다면, 이 전 대변인으로부터 그에 걸맞는 대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과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핵심 측근도 아닌 데다 고작 윤 전 총장의 ‘입’에 불과했던 이 전 대변인을 회유해서 무슨 실익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전 총장이 관계를 맺은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이 전 대변인에게 자신의 치부를 털어놨을 리도 만무하다.
설사 이 전 대변인이 들었다는 ‘말’이 회유나 공작으로 들릴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인사’가 누군지만 확인되면 사안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이 전 논설위원이 본인에게 찾아와 회유했다던 사람이 누구인지만 밝히면 끝날 문제”라며 “이 전 위원의 발언 역시 전형적인 조선일보의 ‘아니면 말고식’ 언론플레이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 측은 이 전 대변인의 최초 발언을 근거로 곧바로 비판 입장을 냈으나, 정작 회유를 당했다는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탓에 공세를 이어가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SNS에서 “충격적인 사안이다. 당 차원에서 즉각적인 진상규명에 착수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가, 14일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조사단을 꾸리든지 뭔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동훈 측에서) 상당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게 시작되지 않는다면 저희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가 볼 수 는 없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날 오전 강원도 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아직까지 사실관계가 확인된 게 많이 없어서 경각심을 갖고 주의하면서 지켜보겠다”고 공세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강민국 원내대변인은 공식 논평까지 내 공세를 취하는 엇박자를 보였다. 강 원내대변인은 “가히 ‘범야권 유력 대권주자에 대한 음해 공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 전 위원을 회유한 ‘여권 인사’는 누군지, 청와대까지 연루됐는지, 피의사실공표 경위까지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 차원의 진상규명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전 논설위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윤 전 총장 선거 캠프도 공식 입장을 내 이 전 대변인의 ‘여권 인사 회유’ 발언을 언급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헌법 가치를 무너뜨리는 ‘공작정치’이자, 수사권을 이용한 ‘선거개입’, ‘사법거래’”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여된 사람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여권에서는 이 전 대변인의 말 자체에 신빙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변인 출신 이동훈이 정치공작을 운운한다. 사안의 본질은 금품수수인데, 이를 가리려고 얕은 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동훈을 상대로 무슨 공작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이동훈이 그 정도 급이 되는지 알기 어렵다”며 “찾아왔다는 여권 인사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야 모두 이 전 대변인에 ‘여권 인사’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전 대변인은 자신이 말한 ‘여권 인사’의 실체를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취재진의 수차례 통화 시도에 응하지 않은 그는 ‘여권 인사가 누구냐’, ‘조만간 누군지 밝힐 계획이 있느냐’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