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의 경제비평] 자아살해 사회의 ‘각자도생’론
침강하는 한국경제, 이륙의 조건을 묻다 ①
-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 발행 2023-12-02 10:47:26
편집자주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정체와 둔화 가능성을 두고 우려와 관심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라앉고 말까요. 아니면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이륙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혹시 새로운 이륙의 조건에 대해 작은 암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23년 연말을 맞아 경북대 나원준 교수가 풀어놓는 성장 문명의 역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를 고민해보겠습니다.
한국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성장률 지표를 보면 징후가 여실하다. 국책연구원들은 앞다투어 미래 성장세의 하락을 예측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성장률이 0.5% 근방을 못 벗어난다는 전망은 썩 반갑지 않다. 성장의 멈춤 자체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 멈춤이 초래된 배경을 짚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서 그렇다.
한국경제의 정체는 21세기 들어 첫 10년간 중국의 등 위에 올라 전성기를 구가해온 주력 제조업의 위기와도 연동된다. 중미 갈등과 기술경쟁,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세계경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받을 한국 제조업에는 그 모든 변화가 막상 운명처럼 주어질 뿐이다. 제국에 예속된 민족은 변화를 타율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노예를 먹여 살리던 산업과 일자리가 태평양 너머로 떠나도 한때나마 누리던 자유는 본래 그들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https://archivenew.vop.co.kr/images/c1e8a000473957b8c5d51542c4c75e0c/2017-11/15042814_IMG_9996.jpg)
자아살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성장률을 벗어나 사회의 맨살을 보면 침강이 더 뚜렷하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 0.7이라는 숫자 뒤로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경고하는 이 사회의 아픔을 마주한다. 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사회, 그러나 그 속의 사람들은 살고 싶다. 그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사회안전망이 가장 열악한 축에 드는 이 나라는 공적 복지의 빈자리를 각자도생으로 채워낸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재정 부담이 제일 적은 소위 ‘자산 기반 사적 복지’를 조장해 왔다. 때로 정책을 바꿔 집값만 부추기면 되는 길이었다. 작은 정부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수십 년을 견뎠다. 그 결과, 이젠 아파트 없이는 자산 형성도 안 되고 노후도 없다. 그래서 다들 빚을 낸다. 그래도 의대만 가면 해결된다. 그래서 강남과 사교육은 불패다. 그러나 원한다고 누구나 의대를, 강남을, 아파트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은 정부에게 제일 쉬웠던 그 길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계부채만 천정부지로 늘려온 사회 소멸의 길이었다.
각자도생의 자산 기반 복지는 사회 소멸의 길이었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라앉고 말까. 아니면 자아살해를 그치고 다시 생명의 힘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우리가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혹시 이륙의 조건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연재는 성장 문명의 역사, 그 한 단면의 이야기다. 먼 옛날 먼 땅인 산업혁명기 영국의 경험을 간략히 반추함으로써 오늘 한국사회를 사는 사람들을 고민하는 시론적인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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