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 한강의 노벨상과 윤석열의 비상계엄, 이제 책임질 시간
24.12.04 06:42l최종 업데이트 24.12.04 07:58l
|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힘이 셌다. 군인과 장갑차를 눈으로 보고도 국회로 향했다. 대통령의 입과 계엄군의 포고령에서 독재의 언어가 아득바득 기어 나오던 중에도 민의의 전당으로 향했다. 국회 앞에 모여 한 손에 카메라를 들었다. 또 주먹을 쥐었다. 그곳에 가지 못했더라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분노와 연대를 공유했다. 그 손들이 총을 압도했다.
국회가 움직였다. 국회 문이 막혔고, 국회의원이 국회 담을 넘어야 했다. 담을 넘으려는 의원에게 시민들이 등과 무릎을 기꺼이 내줬다. 190명이 모였다. 헌법기관 190개가 '지금 이게 맞는지' 대통령에게 물었다. 정당성을 잃은, 아니 애초에 그런 거라곤 없었던 공권력이 문(門)을 막았을지언정, 문(問)을 막진 못했다.
민주공화국은 힘이 셌다. 1980년 5월 17일~1980년 1월 24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가 9개월간 지속됐던 데 반해, 44년 후인 오늘 암흑의 시간은 6시간으로 줄었다. 헌법 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은 단단했고, 그 단단함을 믿은 시민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을 등에 업은 국회가 행동했다.
윤석열과 국무회의에 모였던 이들, 수사해야
국회를 막아선, 나아가 국회 본청의 창문까지 깨부순, 심지어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를 체포하려고 한 군인과 경찰의 행동이 누구의 지시인지도 밝혀야 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존재임에도, 국민이 피를 흘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좌고우면한 여당 의원들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인지 모르겠다. 44년 전 5·18민주화운동의 처절함에, 그 덕분에 '민주'와 '공화'가 단단해졌음에 감사를 전하고 싶은 오늘.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양가감정, 이런 마음이 드는 것.
다시 <소년이 온다>를 떠올린다. 동호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해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그땐 이뤄지지 못한 그 소박한 일상.
다행이다. 우리 모두 해뜨면 다 같이 밥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