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주 4.5일제 도입을 두고 전혀 다른 구상을 내놨다. 이재명 후보가 먼저 단계적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 4.5일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자,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가 ‘근로시간 단축 없는’ 주 4.5일제로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12일 공개한 10대 공약에서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더 정확히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임금 손실 없는 주 4.5일제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 4일제로 향해 나아가겠다고도 했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연평균 근로시간(1,742시간)보다 132시간이 더 많다. 회원국 평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이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이 후보는 주 4.5일제 시행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 및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근로시간을 줄여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추가 채용된 노동자들의 인건비나 기존 노동자의 임금손실분 등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반면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의 주 4.5일제 공약은 근무 일수만 같고, 추진 목표와 실행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 14일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단축 없는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주 4.5일제’다. 하루 9시간씩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만 일하는 방식으로 근무일수만 조정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주 4.5일제’라기보단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은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근무하는 유연근로제에 가깝다. 그 때문에 노사 합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다.
실제 SK텔레콤, SK스퀘어,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에서 이미 단계적으로 주 4.5일제가 시행 중이다. SK텔레콤, SK스퀘어, 포스코는 격주 금요일, SK하이닉스는 매월 둘째 주 금요일을 쉰다.
김 후보도 자신의 10대 대선 공약에 ‘주 4.5일제 도입’이라는 표현 대신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개선’이라고 썼다.
출근길 열차 기다리는 직장인들(자료사진) ⓒ뉴스1
주 4.5일제 실현될까
대선 유력 후보로 꼽히는 두 후보가 ‘주 4.5일제’를 공약 내놨지만, 실현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적으로 주 4.5일제를 시행하려면 근로기준법을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주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주 36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자율에만 맡긴다면 제도적으로는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법정 근로시간 개정이 없으면 시간 외 수당 증가 방편으로만 쓰이고 실제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40시간을 유지한 채 주 4.5일제를 하라는 건 결국 일일 노동시간을 늘리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근무일수를 줄이기 위해 근무시간을 줄이는 건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임금 감소’라는 숙제가 남는다. 근로시간 단축이 임금 감소로 이어질 경우 저임금 노동자들의 ‘주 4.5일제’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임금 노동자들은 임금 대신 짧은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지만, 생활임금 확보가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들은 결국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제 공약을 발표할 당시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기존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했다.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민주당이 주장하는 주 4일제 및 4.5일제는 근로 시간 자체를 줄이지만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주 4.5일제 도입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데 있어, 임금을 삭감하는 건 반노동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장시간 노동 국가인 우리나라는 필연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소득과 시간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데, 임금을 삭감하는 건 맞지 않다”며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는 건 조업 단축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어쩔 수 없이 일이 줄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낮추는 조업 단축과 동일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일축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높은 한국이 노동시간을 점차 줄여 나가는 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임금 삭감이 선택지가 되어선 안 된다”라며 “다만 (주 4.5일제 도입)여력이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부 차원의 단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 효과로 이어져 임금을 유지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이 논의될 때마다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노동시간 단축이 업무 집중력과 생산성을 향상된다는 것”이라며 “이로인해 임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무조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2015년 공공부문에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한 아이슬란드에선 근로자 삶의 질과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부터 산업 전체로 주 4일제를 확대했고, 현재는 50% 이상의 근로자가 참여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2022년 연방 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5일제(주 36시간)를 전면 도입했다.
국내에선 자동문 제조업체 코아드가 성수기인 11월부터 2월을 제외한 연중 8개월 동안 주 4일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제조업 특성상 생산 라인의 연속성이나 납기 준수 등의 제약으로 주 4일제 도입이 어렵다는 통념을 깬 사례다. 이 과정에서 코아드는 임금 삭감 없이 오히려 연봉을 인상하며 제도를 정착시켰다. 비효율적인 내부 문화를 개선하고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업무 전반을 재설계했다. 그 결과 연 매출 200억원, 영업이익률 20% 이상이라는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