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2025/12/15 11:11



 

최창호 변호사, 전 헌법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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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 입력 2025.12.14 20:00

  • 수정 2025.12.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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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의 폐지입법 발의를 환영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 비판 많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 소위 사이버명예훼손을 처벌하기 위하여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다.

 

즉,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성립하는데, 반의사불벌죄이고, 사실이 아닌 허위 사실인 경우에는 형량이 더 무겁다. 또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3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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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원종합청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실무가들에게 명예훼손 사건은 간단하지 않다. 행위자가 발언한 내용이 진실한 사실인지, 허위의 사실인지 여부를 밝히기 쉽지 않고, 또한 사실인지 의견인지 여부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의견의 제시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사실로 오인될 수도 있고,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 해당하여야 하는데,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형사정책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정당하냐의 문제에까지 이르면 처벌의 필요성에 관하여 의견이 나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 제1항 위헌확인 등 사건에서 형법 제307조 제1항이 합헌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헌재 2021. 2. 25. 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

 

법정의견(5인)은, 오늘날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되었다고 본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 실무상 형법 제310조의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형법 제307조 제1항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명예훼손죄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 사이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또 다른 위축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견(4인)은,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에 기여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므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하더라도 그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가치는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인데, 감시와 비판의 객체가 되어야 할 공직자가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행위자가 자신의 표현행위로 수사·재판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축효과는 발생할 수 있으며, 이후 수사·재판절차에서 마주하게 될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한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진실한 사실은 공동체의 자유로운 의사형성과 진실발견의 전제가 되므로, ‘적시된 사실이 진실인 경우’에는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 헌법 제17조가 선언한 사생활의 비밀의 보호 필요성을 고려할 때, ‘적시된 사실이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형법 제307조 제1항 중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에 대하여는, 형법 제310조의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표현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할 것인지 여부를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유엔인원위원회(UN Human Right Committee)와 유엔 산하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에서는 명예훼손 행위의 형사처벌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내용의 폐지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미국과 같은 영미법계에서 명예훼손죄는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제도를 통하여 구제할 뿐이고, 미국의 연방이나 주 차원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가적 풍토가 반영된 것으로서, 특히 ‘사실’(true)의 공개는 처벌대상이 아니고 면책된다.

 

입법론적으로는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에 관한 내용을 제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최근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내부고발이나 공익제보, 갑질ㆍ성폭력ㆍ임금체불 피해 폭로 등은 사회적 부조리를 바로잡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나, 현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 같은 공익적 행위마저 형사처벌의 위험에 노출시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고, 온라인상 의견 표명과 문제제기가 활발한 현실에서 사실적시만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한 현행법의 규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시킨다는 취지이다.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미국, 영국 등 대다수의 국가는 명예훼손죄가 없거나 폐지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민사 책임으로의 전환을 권고한 바 있다.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공론화 과정을 거쳐 현명한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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