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붙어있던 "독하게"…26년 한국경제에 SK하이닉스가 없었다면?

2026/02/01 09:35

[프레시안 books]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 <슈퍼 모멘텀>

전홍기혜 기자 | 기사입력 2026.02.01. 09:03:25

'화장실에 붙어있는 '독하게'라는 표어는 최태원 회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피릿이 상당히 좋았다. 하이닉스 내부에서 독하게 비즈니스해야 된다는 말을 쓰고 있었다. SK에는 절대 없던 단어였다." 최 회장이 본 하이닉스는 아침 7시부터 출근해 하루를 계획하고 업무에 임할 정도로 마음 무장이 잘 되어 있었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의 이 '독한 야성'을 SK 그룹 전체에 심고 싶었다.'(39쪽)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

2026년 1월30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90만 원을 넘어섰다. 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쌍끌이 반도체주' 덕분에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코스피 5000도 지난 1월 22일 넘어섰다.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2013년, 하이닉스와 AMD의 HBM 실험이 좌초됐다면.

2020년, 엔비디아의 AI칩에 HBM2E가 탑재되지 못했다면.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에 하이닉스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굴곡과 AI 시대라는 기술패권 전환기를 관통하는 SK하이닉스의 서사를 압축한 5개의 질문이다.' (2쪽)

<슈퍼 모멘텀>(이인숙·김보미·김원장·유민영·임수정·한운희 지음, 플랫폼 9월 3/4 펴냄)은 2012년 SK에 인수되기 전까지 '생존'을 걱정하던 하이닉스가 2025년 2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메모리 시장 세계 1위를 차지하기까지 20여년의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유민영 전 청와대 홍보비서관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전략 컨설팅 회사 '플랫폼 9와 3/4'이 기획, 출간했다. 이들은 "2024년부터 AI(인공지능)라는 시대 아젠다를 움직이는 엔비디아, 오픈AI, TSMC, 테슬라, AMD, 팔란티어 같은 기업의 사례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HBM(고대역폭 구현 기술)과 하이닉스라는 기업을 마주했고, 한국경제와 글로벌 AI 산업에서 꼭 기록되어야 할 주제라고 직감했다"고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매출액 97조원, 영업이익 47조원을 넘어 2024년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지난해 4분기에도 매출 32조원, 영업익 19조원을 넘어 연간과 분기 모두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률까지 58%로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28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최태원이 꼽은 성공 배경 : 언더독 스피릿, 길목론, AI 삼각동맹

책에는 최태원 회장 인터뷰도 담겼다. 최 회장은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과 SK 내부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된 이유,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의 과정, AI시대의 서막을 연 삼각동맹과 향후 10년의 전망 등에 대해 밝혔다.

최 회장은 글로벌 환경에서 "독하게" 경쟁해서 살아남은 하이닉스의 '언더 독 스피릿'을 중요하게 평가했으며, HBM 성공에 대해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며 운이 아닌 전략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AI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서버용 D램 등 차별화된 기술에 집중했으며, 주요 타깃 고객이 AI로 급전환되는 시장 시그널을 누구보다 빨리 포착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특히 엔비디아(가속기)-TSMC(파운드리)-SK하이닉스(메모리)로 이어지는 '삼각동맹'이 없었다면 "AI는 지금의 퍼포먼스를 낼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30년 동안 경영을 하게 되면서 "생태계를 전체를 보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 최 회장은 직접 젠슨 황(엔비디아)과 웨이저자(TSMC)를 설득해 손을 잡았다.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매각됐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봅니다. 한국 반도체 시장은 지금쯤 벼랑에서 떨어진 상태가 됐을지도 모르죠(…) (AI는) 초기에 시장에 진입하는 자와 진입하지 못하는 자가 극명하게 갈립니다.(하이닉스가 없었다면) 각국 정부와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인프라 투자를 이야기할 때 한국은 배제됐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236쪽)

최 회장은 지금의 성공으로 만족할 수 없고 "엔디비아와 비교하면 하이닉스는 지금보다 10배는 커져야 한다"며 "지금까지 AI 반도체가 만든 임팩트는 서곡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One of Them'에서 'One and Only' 기업으로...피, 땀, 칩의 역사

이제 SK하이닉스는 단순히 메모리를 공급하는 제조사를 넘어, AI 인프라의 핵심 설루션을 제공하는 '메모리 파운드리'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 제품(Commodity)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으로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쥔, 'One of Them'에서 'One and Only'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슈퍼 모멘텀>은 단순히 하이닉스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자본도 사람도 없던 언더독이 어떻게 기술적 해자를 구축하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해 짚어보는 일은 제2, 제3의 하이닉스를 꿈꾸는 기업들의 '미래 설계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 모멘텀> ⓒ플랫폼 9와 3/4

전홍기혜 기자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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