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 통항료를 매기겠다는 이란의 구상이 국제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란은 오만과 함께 해협통과 선박 관리 프로토콜을 만들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이해하지 못할 맥락은 아니다. 전쟁과 제재에 맞서 해협을 전략적 지렛대로 삼겠다는 얘기다. 지금의 테헤란은 평시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공격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전쟁 피해국이다. 배상은 막막하고 제재는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복구비용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에게 호르무즈는 유일한 실효적 카드다. 이를 활용하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계산이다.

사실 좁은 해협을 장악하고 통행세를 받는 행태는 역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고대 비잔티온(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물려 로도스와 충돌했다. 덴마크는 15세기부터 1857년까지 외레순드 해협에서 이른바 ‘사운드 톨(Sound Toll)’을 거두어 국부를 쌓았다. 요충지를 점유한 국가가 지리적 이점을 권력으로 변환하고, 그 권력을 다시 경제적 이득으로 바꾸는 행위는 오래된 지정학적 상식이었다. 따라서 이번 구상은 갑작스러운 광기라기보다 국제 질서가 흔들릴 때마다 고개를 드는 오래 된 논리의 귀환이다.

국제사회는 바로 이러한 구시대적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 해양법 체계를 구축해 왔다. 1958년 제네바 해양법 체제가 관행을 성문화했다면,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해협을 연안국의 사유지가 아니라 세계 교역의 공적 동맥으로 정의했다. 특히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모든 선박과 항공기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보장하며, 연안국이 이를 방해하거나 정지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현대 국제법의 잣대로 볼 때는 이란의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호르무즈 통항료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이란과 오만 측의 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란은 협약에 서명만 했을 뿐 비준하지 않았기에 해협 통과 규칙은 협약 당사국들 사이의 계약적 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만 역시 안보와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국제 해협의 본질적 성격을 뒤집지는 못한다. 호르무즈처럼 공해와 공해를 잇는 해협에서 연안국의 주권은 반드시 자유 통항의 원칙 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만약 통항료를 무력으로 강제한다면 이는 해양법 위반을 넘어선 또 다른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화살을 이란에게만 돌리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근원적인 책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다. 다수의 법률가는 미국의 대이란 공격이 과연 유엔 헌장상의 자위권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란 내 인명 피해는 급증했고 의료물자 부족 등 인도적 위기도 심각해졌다. 결국 지금의 사태는 이란의 갑작스러운 탐욕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파괴한 국제법의 시신이 병목지대의 무기화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원인 제공자를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면 해법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호르무즈 통항료와 봉쇄의 직접 피해자는 미국과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평상시 호르무즈는 세계 석유와 LNG 흐름의 약 5분의 1을 떠받치고 있다. 전쟁과 해협 차단 우려가 커지자 4월 2일 하루에만 WTI는 11% 넘게, 브렌트유는 8% 가까이 뛰었다. 40개국이 해협 재개 방안을 논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호르무즈가 선례가 되면 언젠가 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유혹도 더 커질 수 있다. 병목을 쥔 국가가 안보와 피해 회복을 명분으로 통행의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면 세계 해상교통의 규칙은 급속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전개도 대체로 읽힌다. 이란은 통항료 부과를 더 제도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선별적 통과 허용과 무력에 의한 강제집행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인도, 필리핀, 일본 등 선박에는 안전통과를 허용했고, 러시아는 자국에는 해협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모두에게 닫는 봉쇄보다 누구에게 열고 누구에게 닫을지를 정하는 방식이 더 강한 지렛대가 된다. 국제사회는 군사행동만으로는 해협을 다시 열기 어렵다는 현실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무력에 의한 해협 개방은 비현실적이라고 한 말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통항료를 합법화함으로써 해법을 찾으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전쟁의 막심한 피해국 이란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한 일도 없이 극도로 피폐해진 이란 국민의 삶을 복구할 방안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이 통항료와 해협 무기화를 포기하고 완전 개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과 국제사회는 전쟁 이후의 현실을 인정하는 큰 거래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단계적 제재완화, 재건지원, 추가 공격 금지에 관한 정치적 보장, 그리고 항행안전을 위한 다자 감시 체제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이란에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협을 다시 국제공공재로 돌려놓는 비용을 국제사회가 분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전쟁을 저지른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더 큰 부담이 지워져야만 한다.

물론 제재 해제는 한 번에 끝날 수는 없다. 유엔 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는 층위가 다르고 핵, 미사일, 해운, 금융 제재가 한데 얽혀 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안은 단기적으로 일부 제재를 풀어 숨통을 틔우고, 중기적으로 재건지원을 시작하며, 장기적으로는 포괄적 제재해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 통항료를 둘러싼 또 다른 전쟁보다 제재 해제와 복구 지원이 국제사회 전체의 비용을 훨씬 줄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할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통항료 원칙에 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이란을 끝없는 제재와 고립 속에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해협의 정상화도, 지역 안정도 얻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호르무즈 수입국이자 중견국 외교의 공간을 가진 나라다. 한중일 3국이 최소한 “호르무즈의 자유통항 회복, 이란의 단계적 제재완화, 전후 재건지원”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낸다면, 미국 일변도의 군사적 해법과 이란의 해협 무기화 사이에서 현실적인 중간지대를 만들 수 있다. 동북아의 생존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이스라엘로 인해 법이 무너진 자리에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사일과 군함으로 가격표를 떼어낼 수는 없다. 남는 길은 하나뿐이다. 해협을 다시 여는 대가를 전쟁과 봉쇄가 아니라 협상과 복구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란만을 탓하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가진 쪽에 합당한 해법을 촉구하면서 이왕 흐트러져버린 국제질서를 다시 돌리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결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