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시민기자
비판이론, 가치비판 그룹의 사유를 계승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2020년대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산업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상징되는 포드주의(Fordism) 혁명이 20세기 중반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열었듯, 21세기의 AI 혁명 역시 자본주의에 또 한 번의 거대한 격변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은 꽤 합리적이다. 과거 포드주의가 노동권 보장과 자본의 가치 증식을 동시에 이뤄내며 사회적 대타협의 기반이 되었듯, 지금의 AI 산업 역시 기본소득 담론의 주류화,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의 부상 등을 견인하며 상부구조를 급속히 재편하고 있다.
물론 두 혁신 사이에는 형태적 차이가 존재한다. 포드주의는 노동의 단순화와 분업에 기초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였다. 반면 지금은 생산력의 발전이 이룩해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화된 문화적 시류 위에서, 개별 노동에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현상의 표면을 걷어내고 심층을 들여다보면, 두 혁신은 정확히 동일한 토대 위에 서 있다. 두 개념 모두 '기술 진보'를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 과정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란,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가 발전을 거듭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상품의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로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잉여가치의 증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노동 시간 연장이나 임금 삭감 등 노동자와 자본가가 정면충돌하는 방식이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라면, 기술 진보와 생산력 발전 덕분에 임금량이 줄지 않거나 심지어 늘어나는데도 잉여가치율이 높아지는 기조가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전자의 방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포드주의는 후자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다가올 AI 혁명 역시 이 궤도를 따를 것이다. 최근 기본소득과 같은 광범위한 복지 담론이 AI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AI 혁명으로 인간의 노동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자본주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동의 '단순화'가 핵심이었던 포드주의와 달리, AI는 노동의 '감소' 자체를 지향하므로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계가 일하고 인간은 기본소득을 누리며, 수요와 공급이 선순환하는 제2의 자본주의 황금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계 각국이 AI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주류 학계가 AI를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구원자로 칭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개혁적 성향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조차 AI의 발전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집중하며 기술 진보를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 최소한의 노동만으로도 풍요로운 사회가 올 것이라는 낙관, 적절한 제도적 제어만 뒤따른다면 기술이 온전히 인간을 위해 복무할 것이라는 믿음은 과연 타당한가.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현실은, 이미 허상으로 판명 난 '상품'이라는 우상이 또다시 형상만 바꾸어 우리를 현혹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 '상품'은 종교적 원죄를 씻어내는 사명이라는 신성한 탈을 쓰고 노동을 정당화했다. 이후에는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이니라!"(『자본』 1권 제 7편 중)라는 외침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 증식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둔갑시켜 끝없는 무한 경쟁을 조장했다. 자본주의가 지리적 팽창을 원했을 때 상품은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제국주의적 침략을 구원의 이름으로 포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이 우상의 본질이 흔들릴 무렵, 상품은 '기술과 풍요'라는 새로운 환상을 빚어내어 스스로를 연명했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AI 혁명 역시, 상품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최신형의 우상일 뿐이다. 상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AI와 기술 진보는 결코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AI는 죽어가는 자본주의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줄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인간과 자연은 또다시 상품이라는 우상에 철저히 종속되고 동일화되는 억압을 견뎌야 한다.
AI의 진보와 제도의 보완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가치비판(Wertkritik)의 시선으로 볼 때, 상품 사회의 진짜 모순은 '빈곤과 굶주림이 만연한 사회' 그 자체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빈곤과 굶주림마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 즉 모든 것이 교환 가치로 치환되는 체제의 구조적 폭력에 있다.
AI 기술은 물리적인 빈곤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인류는 이미 극단적인 빈곤의 문제는 상당 부분 극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상품이라는 우상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경이로운 AI 기술이라도 결국 인간과 자연을 상품 사회로 영원히 예속시키는 정교한 통제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