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룸을 오가는 사람들] 물류작업자 서안숙 이야기 ① 하루에 4만 보를 걸으며 웨이퍼를 나르는 일
임다윤 반올림 활동가 | 기사입력 2026.09.24. 07:49:02
서안숙 님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 지회장으로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명일은 공장 안과 밖의 물류, 운송을 담당하는 삼성의 협력업체이다. 노조의 지회장이라니 가졌던 선입견이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서안숙 님은 노조의 강성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로 필요한 말을 잘 정돈해서 하시는 서안숙 님은 노조에 한평생 관심을 가진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 노조 위원장이 된 사람이다. 여전히 노조 일이 어렵다는 안숙 님은 반올림 병점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경찰서로 집회 신고를 하러 가는 이종란 활동가를 즉석에서 따라나섰다. 집회 신고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브라운관 TV를 만드는 일
안숙은 전라남도 무안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다가 삼성전자로 곧바로 취업했다. 꿈이랄 것도 구체적으로 꾼 적 없을 만큼 일찌감치 가정 형편을 살핀 결과였다. 삼성전자에서 안숙은 지금은 너무나 옛것이 되어버린, 그러나 당시에는 첨단기술이었던 브라운관 TV를 만들었다.
서머타임과 컨베이어 벨트, '빵빠레'
지금은 생소하지만, 한국에서도 서머타임이 시행된 시기가 있었다. 1949~1961년까지 실시된 서머타임은 표준시를 135도로 옮기면서 폐지됐다가 26년 만인 1987년 5월 10일 부활한 바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여러 불편을 초래하며 198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서머타임은 시간대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기에 1시간 일찍 출근하면 1시간 일찍 퇴근해야 맞지만, 당시 안숙이 일하던 삼성 사업장에서는 일이 많다는 이유로 퇴근 시간은 당겨지지 않았다.
서머타임과 컨베이어 벨트, 팡파르는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공장의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안되고 이용된 장치였다. 고정된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손대서 노동 시간을 늘리고,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해 노동자들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바삐 움직이게 해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목표 생산량을 달성했을 때는 팡파르를 터뜨려 감정을 고양하며 성취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노동자들의 감정과 일하는 속도, 시간 감각까지 통제하는 기업의 모습이 오늘날과 사뭇 다르지만 동시에 비슷하게 겹치기도 한다.
건설회사, 부동산, 마트를 거쳐 다시 삼성으로
퇴사하고는 컴퓨터를 배워서 건설회사 일을 조금 하다가 22살 때 결혼을 해버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도피처를 찾아간 것이다. 어쩌면 모르지 않았겠지만, 결혼하고서도 일은 멈출 수 없었다.
명일에서 일한 이력만 알고 갔으나 듣게 된 것은 쉴 새 없이 이어진 노동의 향연이었다. 부동산과 마트 일을 동시에 하고, 잠시 여동생이 마트를 봐줄 때는 집으로 가 가사 노동을 했다. 한 번에 하나씩, 이 일에서 저 일로 차례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여러 노동이 중첩되어 있었다. 자기 생활이랄 것 없이 일하다 돌고 돌아 가장 처음 일했던 삼성의 사업장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은 고용보험 센터의 소개 때문이었다.
명일에 들어와 클린룸 안과 밖을 오가며 한없이 걷고, 무거운 풉을 들고 나르는, 끝이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쳇바퀴 같은 노동을 시작했다. 안숙의 인생에서 노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