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사법연수원 14기) 경기도지사님, 박은정(29기) 조국혁신당 의원님, 임은정(30기) 광주지방중대범죄수사청장님, 안녕하세요. 지면을 통해 인사드리려니 쑥스럽네요.
세 분의 의로운 투쟁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세 분은 검찰개혁의 아이콘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수십 년 전의 정치후진국으로 되돌리려 했던 윤석열을 반대하는 이른바 '반윤(反尹)'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세 분은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고 반윤 전선의 맨 앞에서 싸워왔습니다. 추 지사는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총장 윤석열의 반민주성과 야만성을 간파하고 응징에 나섰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경질당했습니다. 박 의원은 친윤 검찰의 압박 속에 검찰 최고위직에 대한 감찰을 추진한 대가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기소돼 재판에 넘겨지고 해임까지 당했습니다. 검찰 내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로 자리매김한 임 청장은 윤석열 정부 내내 한직을 돌았습니다.
이처럼 존중 받아 마땅한 세 분을 비판하는 글을 쓰려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프리랜서 진행자로 참여했던 <오마이TV>에서 세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추 지사는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최경준 오마이뉴스 기자와 함께, 박 의원과 임 청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조성식의 어퍼컷'에 초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토론회나 강연회에서 마주한 적도 있고, 사적인 인연도 있습니다.
그간 세 분의 검찰개혁 노선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스럽고 안타까웠던 것은 실효성보다 선명성에 치우친 듯한 원리주의적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 인사권 뭉갤 정도로 심각하고 중대한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때 현직 대통령에 맞서는 결기를 보인 건 수사·기소 완전 분리라는 명분도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청와대 재검증을 거쳐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임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세 분이 언급한 김 후보자의 비리 의혹이 대통령 인사권을 무참하게 만들 정도로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고요. 게다가 이번뿐만이 아니지만,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반개혁주의자'나 '친윤'으로 몰아붙이는 태도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가 관련 법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법적인 책임을 묻기에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사건 당시 김 후보자의 직책과 권한에 대한 과도한 법률적 해석으로 과도한 비판을 한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1일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이 일일이 해명한 5가지 의혹 중 2가지는 김 후보자가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일 때, 3가지는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지낼 때 발생한 사건과 관련돼 있습니다. 서울고검 차장과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장, 검찰총장의 참모로서 법적으로는 보조기관 또는 보좌기관의 성격을 띱니다.
정부조직법과 대통령령인 행정업무의 운영 및 혁신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모든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법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은 기관장입니다. 대검과 서울고검의 의사결정권자, 즉 결재권자는 검찰총장, 서울고검장입니다. 대검 형사부장과 서울고검 차장은 결재권이 없고 중간에 검토하는 권한만 있습니다. 설사 자신의 의견이 문서 기안자나 기관장의 의견과 다르고 그런 뜻을 기안문에 표시했더라도, 기관장의 최종 의견(결정권)에 따라야 합니다.
법적 권한과 책임이 제한되는 기관장의 참모에게 의사결정권자나 지휘권자와 같은 책임을 물어 부적격자라고 낙인 찍는 건 적어도 법률가의 사고방식은 아닌 듯싶습니다. 물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검사장으로서 윤석열 총장 징계 반대 성명에 동참한 것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겠지만요.
옳은 일이 꼭 공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추미애 지사께서 2020년 법무부 장관으로서 제왕적 검찰총장 소리를 듣던 윤석열에게 징계의 칼을 빼 들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솔직히 일부 징계 사유는 정치검찰이 표적수사를 벌일 때 동원하는 '별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용이 부실해 법적으로 다 인정될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기자들 사이에 그런 얘기가 돌았지요), 대의에 공감했기에 응원하고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가변적입니다. 진영 내에서도 당시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가 윤석열의 몸집을 키우고 그의 시대가 열리는 데 결과적으로 이바지했다는 평이 나오는 걸 보면, 옳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공익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시대적 정의 실현이라는 면에서 윤석열 징계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추 지사께서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는 크나큰 정치적 과오를 범했습니다. 정의에 대한 열정과 불의에 맞서는 기백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소신과 주관이 너무 강한 나머지 주변과 불화를 빚을 때가 많았습니다.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당 밖의 응원 열기가 무색하게 당내에서 지지하는 의원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추 지사의 '대망'은 국민적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추 지사는 지금 집권 1년 만에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를 맞은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면서 노골적으로 인사권을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은 멋있게도 보이지만, 모양새가 좋지는 않습니다. 집권 초기 탄핵 추진과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심각한 내부 분열에 힘들어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늘 그래왔듯 자신이 옳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행동이겠지만,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염원하는 국민에게 상처를 안기는 건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에 박은정이라는 검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2012년 팟캐스트 '나꼼수' 방송이 촉발한 이른바 '기소 청탁 의혹' 사건 때였습니다. 당시 인천지검 부천지청 소속 박 검사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2006년 나경원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로부터 나 의원이 고소한, '노사모'로 여겨지는 네티즌을 빨리 기소해 달라는 취지로 청탁을 받았다"고 폭로했는데요. 당시 <주간동아>가 보도한 박 검사의 진술서 전문은 거의 모든 언론이 인용 보도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쑥스럽습니다만, 당시 <신동아>에서 <주간동아>로 잠시 옮겨와 있던 저는 이 보도로 사내에서 작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과유불급
박 의원이 윤석열 정부에서 겪은 고초와 국회에서의 활약상은 널리 알려진 터라 새삼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똑순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검찰개혁, 특히 수사·기소 분리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데 박 의원의 뛰어난 논리와 언변이 한몫 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박 의원의 '사이다 발언'에서 위험성이 감지됐습니다.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해법으로 주로 '킥스(KICS, 형사사법정보시스템)'를 강조하는 걸 지켜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경찰 수사의 오남용 위험성에 대해 "검사가 영장 청구를 하지 않으면 된다" "기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데서는 무책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권력의 폐해를 절감한 이후 오랫동안 기사와 저술, 토론회,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검찰개혁, 구체적으로 수사·기소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제가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수사·기소 분리는 검찰개혁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안 없이 강행하는 개혁이 자칫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고, 지지층 분열에 따른 정치적 혼란으로 심정적 우군인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하고, 나아가 내란 세력에 정권을 넘겨주는 빌미를 제공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박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검찰개혁 강경파는 검찰을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쪼개 검찰권력을 해체한 이재명 대통령조차 보완수사 폐지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반개혁적이고 검찰 편을 든다고 공격했습니다. 과유불급의 전형입니다. 입법 전에 보완수사 폐지에 대한 문제점을 충분히 고민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다면, 검찰개혁 명분을 더 살리고 분열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치인의 신념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익입니다. 개혁을 추진하는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혹여 개혁이 개악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봅니다.
검찰청사 앞 짜장면의 추억
검찰제국에서 독립투사처럼 싸워 온 임은정 검사와는 공적·사적 인연이 많네요. 저 또한 거대 언론사인 전 직장에서 내부 투쟁을 많이 했던 터라 누구 못지않게 임 검사의 고충에 공감하면서 응원했습니다. 제가 몸담은 진보 성향 언론단체 강연회에 연사로 초대해 검찰개혁을 주제로 함께 대담을 한 적도 있지요.
인연의 출발점은 박근혜 정부 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임 검사가 근무하던 서울북부지검에 찾아갔던 일입니다. 점심 때라 인근 식당에서 함께 짜장면을 먹었는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며 오후 1시 전에 쫓기듯 청사로 돌아가던 뒷모습이 빛바랜 사진처럼 가물거립니다.
주변에서 임 검사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가 들려도, 신뢰의 끈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임명된 직후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청회에 참석해 봉욱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검찰개혁 5적'으로 지목하면서 대통령의 인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 은 아무리 그 진정성을 이해한다 해도 고위공직자에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행위로 비칠 만했습니다.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김 후보자가 대검 감찰1과장을 지낼 때 성범죄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임 검사의 감찰 요청을 묵살했다는 건데,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방식으로 폭로하는 게 올바르고 현명한 건지 모르겠네요. 상식적인 국민 눈에도 곱게 비치지 않을 듯하고요. 김 후보자가 청장에 부임한 후 발생한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과거 검찰 재직 시 업무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청장이 될 자격조차 없다고 단죄하는 건 아무리 대의를 인정한다 쳐도 지나쳐 보입니다.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급 마무리하겠습니다. 세 분은 민주진보 진영의 큰 자산입니다. 무도한 윤석열 정권이 뒤집히고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서는 데 세 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입니다. 저와 생각은 조금 다르지만, 김지용 후보자를 '친윤'으로 간주하고 맹렬히 반대하는 것도 다 나라와 국민이 잘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비롯됐다고 믿습니다.
소탐대실 말기를
다만 소신을 지키되 선을 넘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지금처럼 날카로운 비판으로 통치 권력을 견제하되, 지나친 흔들기로 아직은 이 정권에 희망을 걸고 있는 국민에게 상실감과 좌절감을 안기는 일은 없으면 합니다. 부디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열성 지지층과 나란히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야를 좀 더 넓혀 지지층뿐 아니라 내란 이후 합세한 중도층의 삶과 애환도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내란의 큰 불길이 잡히고 사법적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친윤'이니 '반윤'이니 하는 논쟁은 '그들만의 리그'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부는 검찰개혁과 내란청산 말고도 할 일이 많습니다. 정권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정치에 골몰한다거나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지요.
부디 세 분이 더욱 국민의 사랑을 받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큰 인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옛말에 '천려일득(千慮一得)'이라고 했습니다. 하찮은 글쟁이 나부랭이가 건방진 소리 했다고 괘씸해하지 말고 고언으로 여겨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로 <논어> 첫 장에 있는 공자의 말을 전합니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이야말로 군자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