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래 80만 명 감옥에 갇혀
1967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6월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해서 ‘6일 전쟁’) 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억압 통치를 받게 됐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보고서 같은 데서 팔레스타인을 일컬을 때 쓰는 공식 명칭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OPT)’이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고난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80만 명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 돌맹이를 던진 꼬마 어린이부터 백발노인, 임산부까지 이스라엘의 심기를 거스르면 현장에서, 또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구금은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뒤 대규모 투옥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았던 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억압-피억압 관계에서 감옥은 중요한 정치투쟁 영역이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역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감옥제도를 철저히 이용해 왔다. 그에 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감옥을 반이스라엘 정치투쟁의 무대로 삼아왔다.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 담아낸 글 하나를 옮겨본다.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20%, 남성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80만 명 이상이 구금되었으며, 이 중 60만 명 이상이 장기간 수감된 것으로 추산된다. 투옥은 팔레스타인 공동체와 그들의 정치적 의식에 결정적인 경험이다. 이스라엘 감옥 안에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을 결성하는데, 이는 식민지 맥락에서의 정치적 투옥의 특징이다. 팔레스타인 수감자 운동과 저항 활동은 감옥 밖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수감자 문제는 팔레스타인 정치의 중심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에서 적어도 한 명의 남성 구성원이 (비록 단기적일지라도) 투옥된 경험이 없는 가정을 찾기는 드물다. 네 아들을 둔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명체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듯이,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도 결국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Smadar Ben-Natan, Dana Boulus and Shirley Le Penne, The ‘One Carceral State’: Mass Incarceration and Carceral Citizenship in Palestine/Israel, International Journal of Middle East Studies, Volume 56, Issue 3, August 2024)
위에 옮긴 글은 이스라엘 인권 변호사 사마다르 벤 나탄(Smadar Ben-Natan, 미 워싱턴대, 인권학)를 비롯한 3명의 인권 연구자들이 함께 쓴 ‘하나의 감금 국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량 감금과 감옥 시민권’이란 제목의 논문이다. 3명의 공동 필자는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이스라엘 영토 안의 감옥에 가둠으로써 ‘하나의 감금 국가’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이스라엘 교도소청(IPS)이 관할하는 30개 교도소 가운데 서안지구에 있는 감옥은 오페르(Ofer) 교도소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이스라엘군이 관리하는 1차 구금소와 심문센터들이다).
이스라엘은 법 집행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 필자들은 “역설적이게도,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대규모로 ‘배제적 포용’을 하는 이스라엘의 감옥 정책은 시민권 체제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문과 같은 가혹 행위를 가하면서도 그들을 이스라엘인 수감자들과 함께 같은 감옥에 가두는 것은 “이스라엘의 감금 체제가 단일국가 체제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글의 요점이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하나의 국가’의 ‘감금 시민’이 되어 다른 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인종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체제에 맞서 저항의 범위를 감옥 안팎으로 넓혀간다는 것이다.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은 언젠간 감옥 간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유혈충돌이 거세지면 이스라엘 감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나기 마련이다. 1987년에 터진 제1차 인티파다는 1967년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펼친 억압정책에 맞선 첫 번째 대규모 봉기였다. 휴먼라이츠워치(HRW) 자료에 따르면, 제1차 인티파다(1987–1993) 기간 동안 1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감옥에 갇혔다.(https://www.hrw.org/reports/pdfs/i/israel/israel946.pdf)
제1차 인티파다는 적지 않은 인명 피해(팔레스타인 사망자 1166명, 이스라엘 사망자 90명)를 낳은 끝에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라는 땅을 나눠주고, 이스라엘은 평화를 되찾는다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 원칙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합의가 이스라엘의 기만책이었고 억압은 그치지 않았기에 제2차 인티파다(2000–2005)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PCBS)에 따르면, 그 6년 동안에 팔레스타인 사망자 4789명(이스라엘은 1053명)을 내고 7만 명이 감옥에 갇혔다. (https://www.addameer.org/statistics)
이렇듯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섯 집에 한 집꼴로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가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을 만큼 옥고는 팔레스타인의 보편적인 아픔이다. 실제로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서 가족 구성원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의 남성이 (비록 단기간일지라도) 투옥된 경험이 없는 가정을 찾기는 드물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나누곤 한다.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은 언젠가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힐 것이다. 이미 다녀왔다고? 그렇다면 언젠가 또 갈지도 모른다.”
종신형 받은 무기수 118명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해마다 4월 17일을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날’로 기린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하루빨리 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주고 받는다. 아울러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 4월 17일이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날’로 정해진 지는 제법 오래됐다. 52년 전인 1974년 봄 팔레스타인의 임시정부 역할을 하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입법기관인 '팔레스타인 인민평의회(PNC)'가 4월 17일을 수감자의 날로 선포했다. 언젠가는 감옥 문이 열리고 수감자들이 풀려나는 사실상의 ’해방의 날'이자 '남은 이들의 석방을 위해 투쟁하는 날'을 앞당기자는 뜻에서다.
그날이 오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서안지구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흩어진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전체 인구는 1550만 명)에서 대규모 연대 행사를 갖는다. 수감자들의 가족들은 갇힌 이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인다. 국제 인권 단체들(앰네스티, Human Rights Watch 등)도 그날에 맞춰 이스라엘 감옥에서의 고문, 미성년자 구금 실태 등을 고발하는 성명서 또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반이스라엘 활동을 펴다가 붙잡혀 들어간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그들이 겪는 인권침해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목소리들이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도 4월 17일을 맞아 집단 단식투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세계는 그동안 잊고 있던 팔레스타인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떠올리며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감옥에는 20년 이상 갇혀 지내온 장기수들도 많다. 서안지구 라말라에 본부를 두고 법률적 지원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돕는 인권단체인 ‘수감자 지원 및 인권협회(Addameer)’에 따르면, 2026년 현재 종신형(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118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