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물가가 10~20% 상승한다면 우리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원에서 패배할 것이고, 상원에서 패배할 것이며, 앞으로 2년 동안 매주 탄핵을 당하게 될 것이다."(2026년 1월,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1년 전 비공개 후원모임에서 테드 크루즈가 한 경고는 정확했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단순한 정권 심판의 수준을 넘어, 억눌려온 대중적 분노가 폭발했음을 보여 준다. 수많은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폭정에 대한 증오를 가득 담아 표를 던졌다. 특히 불과 2년 전 대선 당시 트럼프를 더 많이 지지했던 청년 남성들도 대거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그 결과 이번 중간선거에서 청년 남성의 60% 이상이 민주당에 투표하는 표심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트럼프가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관세 전쟁을 하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추진하면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개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폭탄이라는 무모한 경제 실험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것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커녕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붕괴를 초래하며 서민들의 장바구니를 직격했다. 그사이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고 연방예산의 15%가 국채 이자로 나가는 미국의 고질병은 더 악화했다. 재정 건전성은 회복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고, 민생에 투입되어야 할 공공 예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높은 물가와 주거비, 낮은 임금, 공공서비스의 약화, 에너지 가격의 급등과 생활고라는 전세계적인 문제에서 미국은 전혀 예외가 아니었고 오히려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트럼프가 이란을 침략하면서 그 문제를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시킨 핵심 주역이기 때문이었다. 이란 침략으로 초래된 중동의 군사적 긴장은 국제 유가를 폭등시켰다.
이는 서민들의 난방비와 운송비, 식료품 가격에 즉각적인 직격탄이 됐다. 트럼프는 선거 패배를 피하려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민주당 강세 지역에 ICE를 투입해 폭력적 이주민 단속을 하며 충돌을 유도했고, '골수 공산주의자들과 지하디스트들이 민주당을 장악했다'고 마녀사냥을 했고, 공개 총살형을 통한 사형집행을 70년만에 부활시켰다.
심지어 '불법 이민자'라고 낙인 찍으며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의 가택을 압수수색했다. 일론 머스크와 억만장자들은 엄청난 정치자금을 쏟아부으며 트럼프를 지원했고, 메타가 반트럼프 온라인 계정을 차단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고, 나중에 트럼프는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얼마나 성공적인 토목공사들을 통해 멋진 연못과 연회장을 만들었는지나 자랑하더니, 선거 당일 아침 최후의 카드로 '이스라엘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을 약속했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스라엘 퍼스트 아니냐'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며 항복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스라엘 로비단체(AIPAC)의 후원받은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 떨어질 정도로 '이스라엘'은 이번 선거에서 저주받은 이슈였고, 트럼프조차 이스라엘과 '손절'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트럼프와 공화당과 마가주의자들의 패배이자 이스라엘의 패배이기도 하다. 억만장자 로비 자금과 극우 정치가 야합해 만들어낸 침략과 수탈의 정치가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와 ICE의 살인적 단속추방에 맞서 이민자들과 연대해 거리에서 싸웠던 사람들의 승리다. 또한 트럼프의 이란 침략,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고물가와 생활고 방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왕은 없다'고 외치며 곳곳에서 계속 시위하고 행진했던 사람들의 승리이다. 권력에 맞선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 의식이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었다.
1년전 뉴욕시장으로 당선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는 이번 승리의 설계자라 할만하다. 당시에 이미 맘다니는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에 대한 반대'를 주장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전세계적 유행이 된 '감당 가능한 생계비'(Affordability)를 핵심 구호로 내세웠다. 주거비, 대중교통, 생필품 등이 자본의 이윤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경합주와 심지어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당선하며 유력한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대부분 후보의 공통점은 바로 이러한 의제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 후보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 소속이 아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제임스 탈라리코는 "상위 1% 대 하위 99%"라는 프레임으로 38년만에 공화당에서 텍사스를 가져왔다.
미시간에서 민주사회주의 경향의 압둘 엘사예드가 승리한 것과 함께, 이것은 '좌파적 구호나 후보로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민주당 주류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선명한 계급적 프레임과 소득 재분배 공약이야말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이 입증되었다. 이제 공화당의 분열은 불가피하다.
참패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이미 트럼프가 헤그세스를 희생양삼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 부통령 밴스는 트럼프를 탓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지금의 공화당은 전통적 공화당/ 마가주의자/ 네오콘/ 테크파시스트 등의 연합체였기에 새로운 이합집산이 펼쳐질 수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위태롭게 유지되던 연합은 파편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런 분열을 막고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트럼프가 이란 전쟁을 더 끔찍한 지옥의 도가니로 몰아가면서, 그것이 낳을 혼란을 빌미로 비상대권을 발동해 군대를 투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기에 몰린 권력자는 더욱 폭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쿠데타를 본격 추진하고 시도한 것은 총선에서 참패 이후였다.
민주당이 이런 트럼프를 잘 막아낼 수 있을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실, 여전히 민주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상하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와 하킴 제프리스이다. 두 사람은 억만장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민주당의 주류 기득권을 상징한다. 이런 민주당 주류는 맘다니가 대표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민주사회주의 후보들이 '민주당을 숙주삼아 기생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공화당과 손잡고 의회에서 '사회주의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당내 진보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앙숙인 공화당과 반동적 이념 연대를 형성하는 기괴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셈이다. 또한 우익적 사상 검증 속에서 좌파 유튜버인 하산 파이커 마녀사냥에도 동조했었다.
이런 흐름이 보여준 최악의 경우는 중간선거 직전에 미시간에서 나타났다. AIPAC(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의 막대한 자금 지원에도 압둘 엘사예드와 민주당 내부경선에서 패배한 헤일리 스티븐스는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좌파 후보의 승리는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투표 전날에 공화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런 주류 기득권이 아니라 새로운 더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인물들을 얼굴로 내세워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대중이 갈망한 것은 기존 체제의 유지가 아니라, 불평등의 구조를 깨부술 선명한 진보적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류 기득권들이 뒤로 물러서고 사라지면서 민주당의 성격이 실제로 변화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사람들이 기대한 결과인 이란 침략전쟁의 종식, 이스라엘과 집단학살 공모의 종식, 물가 인상만 낳은 관세전쟁의 종식, 무자비한 이민 단속추방 정책의 종식, 억만장자가 아니라 보통 시민들의 '감당 가능한 삶'을 위한 경제정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어깨는 매우 무겁다. 단순한 비판자를 넘어 당내 교두보를 확보하고 실질적인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하원에서 9명의 의원을 배출해 의회에서 '사회주의 의원모임'이 가능할 수준이고, 주의회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50명이 넘는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이 같은 원내 진출의 성과와 맞물려 지금 DSA의 당원수는 사상 최대인 12만이 됐다. 많은 좌파들이 '민주당은 공화당과 똑같은 자본가당이며 절대 바뀔 수 없다. 민주당에 들어가는 것은 배신이며 좌파에게 막다른 골목'이라고 저주했지만, 이들은 대중에게 다가가 미국 정치를 더 왼쪽으로 이동시키며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시도했고, 일부 성공했다.
하지만 약점과 한계도 존재한다. DSA는 분명 성장했지만 당원들이 가입했다가 곧 나가는 회전문 현상이 여전하다. 또한 내부 9개 분파들 속에서 민주당과의 관계나 정책의 강조점과 우선순위를 둘러싼 분열과 갈등, 상호불신도 언제든 조직이 갈라지는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어떤 시점에 어느 수준에서 타협하고 대결하면서 민주당 주류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에서 벗어날 것인가는 너무나 풀기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독립적 진보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인 미국 노동운동의 힘과 조직율은 여전히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과연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실질적 성과를 통해 지금의 기대를 더 굳건한 지지기반으로 만들 수 있을까? 다가오는 대선에서 후보를 내세워 더 큰 성장의 발판을 만들 수 있을까? 민주당을 변화시키거나 민주당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선거에서 후보를 내보내 당선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정답이 주어져 있지도 않은 문제들이다. 독립적 좌파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해야 우리가 가장 선명하고 급진적으로 보일 것인지가 아니라, 원대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을 설득해 낼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