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에 '까고 보니 전라도'까지
나라를 이렇게 찢어놓아도 되나
"정당은 국민으로부터 존재가치를 심판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헌재 결정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헌재 결정으로 통진당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도 상처 입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 문재인 의원이 19일 올린 트위터 글
"통진당 해산결정을 환영합니다.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을 환영합니다. 대한민국헌법을 수호하는 애국적인 결정을 용감하게 내려주신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9일 올린 트위터 글
안타깝거나 혹은 환영하거나. 각각 1953년생과 1951년생인 동년배 두 정치인의 생각은 이리도 달랐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분열의 소용돌이를 불러 올 사건을 맞게 됐다.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 결정 말이다.
9인의 헌법재판관 중 찬성 8명, 반대 1명. 이 압도적인 숫자가 주는 절망감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꽃을 피우는 민주주의의 사망선고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부디 이 결정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킬 것"이라 말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분열과 적대의 골만 깊어질 가능성만 농후해졌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도 딱 그만큼이다.
한국사회의 미래 고심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논리
▲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결정 | |
ⓒ 오마이뉴스 고정미 |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그 세력을 피청구인의 정책결정과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그 세력 중 일부가 국회의원이고 그 지위를 활용하여 국가질서에 대한 공격적인 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다면, 국회는 이를 스스로 밝혀내어 자율적인 절차를 통해 그들을 제명할 길도 열려 있다.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선거 등)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반대 의견 중 일부다. 그에 따르면,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은 충분히 여과할 수 있고 또 자정할 수 있는 여지가 컸다. 이를 청와대가 감독 연출하고 헌재가 실행에 나섰다. 일각에서 하필 19일에 결정을 한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2주년 선물이라 비아냥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박한철 소장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보자.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또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사회 분열을 자초하는 박근혜 정부와 헌법재판소의 퇴행
▲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
ⓒ 유성호 |
통진당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이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과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은 민주주의 다양성과 정치적 자유를 훼손하는 폭압과 광기의 산물이다. 이석기 의원의 RO(혁명조직)에 대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채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우려스러운 것은 끝나지 않은 이 '종북 장사'가 가져올 내일이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반응만 봐도 자명하다. 실체도 뚜렷하지 않거니와 그 숫자도 가늠하기 힘든 일부 (극)보수의 환영은 논리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있다. 결정 직후, 일베 회원들은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을 향해 지역 출신(전북 정읍)과 과거 민주통합당 추천을 이유로 들어 '전라도' 운운하며 맹렬하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일베 용어로는 '까보전', 즉 까고 보니 전라도로 통한다).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 위축을 근거로 반대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이 다시 전라도 출신이란 이유로 다시 차별받고 소수자로 몰리는 이 불편한 아이러니. "유일하게 반대표 던진 김이수 재판관은?"과 같은 기사 내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전북 정읍' 출신이란 꼬리표다.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더 유효한 것은 어쩌면 김이수 재판관의 이력보다 찬성 의견을 낸 나머지 8명의 명단과 이력 아닐까.
냉전시대로 시계 되돌리는 박근혜의 탄압 정치
▲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 피청구인쪽 변호인단이 심각한 표정으로 해산 결정 주문을 듣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통진당의 해산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분노와 정보기관의 지속적인 진보정당 죽이기,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잔존하는 한 끝나지 않을 이 '종북 프레임'이 합작해 연출한 계획의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2012년 대선 TV토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던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일성을. 그런 이 대표에게 위협을 느끼던 당시 박근혜 후보의 분노에 찬 표정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같은 맥락에서, <여의도 텔레토비>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던 tvN을 소유한 CJ의 이재현 회장은 지금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CJ에 피바람이 불 것이란 일각의 예측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폭력사태로 진보진영과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은 통진당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진보 죽이기'의 희생양으로 둔갑시키기에 더없이 적합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선 직후 이 진보정당 죽이기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업적 없는 2년 차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RO 활동을 필두로 구시대적인 활동을 벌인 이석기 의원 등이 빌미를 줬다고 하지만, 정당사에 유례없는 이 폭압은 "헌재, 통진당 해산 판결... 법치국가로 거듭난 명판결 vs 민주주의 후퇴 위기"(중앙일보 기사 제목)와 같이 좌우, 진보와 보수 등 이념이나 진영 논리로 나눌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냉전의 산물인 국가보안법과 분단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유신체제로 회귀하는 모습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오히려 놈 촘스키 등 해외 인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던 '박근혜정부의 통진당 탄압에 대한 국제인사 선언문'에서 보듯, 헌법재판소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이렇듯 외국에서 바라 본 한반도의 두 국가는 공히 독재자들의 딸과 아들이 나란히 통치하는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나라가 아닐 수 없으리라.
MB의 생일이자, 북한이 영화 <인터뷰>의 제작사를 해킹한 날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일이기도 한 12월 19일은 그렇게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동시에 나라를 분열시킨 날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