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작심한 듯 강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 대통령 묘역에서 ‘시민의 힘!’을 주제로 열렸다.
3000여명의 추모객들이 묘역 옆 추도식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앞줄에 나란히 앉아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여야 대표는 자리에 앉을 때 인사를 나눈 것 외에는 추도식 내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족을 대표해 노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무대에 올라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엔엘엘(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비 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며 앞줄에 앉은 김무성 대표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에 앞서 추도식 30분 전 주요참석자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입장하자, 여러 추모객들이 “김무성은 물러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뒤이어 입장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차리리 탈당하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추도식 시작 직전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 건호씨 등과 함께 입장했다. 노 대통령 사저 앞에 둘러서있던 추모객 수백명은 문 대표와 유족들이 나오자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김은경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애국가·<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참석자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추모공연에선 가수 조관우씨가 노 대통령을 추모하며 만든 노래 <그가 그립다> 등을 불렀다. 또 바리톤 손현상씨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6주기를 맞은 이제부터는 추모를 넘어 역사를 반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올해 추도식 주제를 ‘시민의 힘’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추도식이 엄수됐다. 사진은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가 입장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추도사에서 “이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문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기신 미완의 과제와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대범한 정치적 자세를 배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남기신 역사적이며 근본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미완의 숙제를 해내야 합니다. 그러한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보다 더 구체화하고 끝끝내 관철해내야만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추도사를 한 노무현장학생 정선호(21·성공회대 1년)씨는 “저는 감히 맹세합니다. 당신의 길을 걷겠습니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두가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왼쪽 둘째)가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눈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 건호씨(왼쪽)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 묘역에 줄지어 걸어가서 헌화하는 것으로 추도식을 마쳤다. 김무성 대표는 헌화를 마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봉하마을을 떠났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위원장은 “김무성 대표가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건호씨가 고민 끝에 유족 인사말을 작성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 다른 사람과 의논은 없었다. 새누리당 대표가 처음으로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엔엘엘 발언을 당사자인 그가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그저 왔다 가는 것은 노 대통령 추도식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는 추도식에 왔다가 돌아갈 때까지 건호씨 등 유족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