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동물’ 산거머리, 야생동물 조사 일꾼이 되다
생쥐부터 들소, 박쥐, 멧닭까지 길목 잠복하다 공격
혈액 유전자 분석하면 그 지역 동물 다양성 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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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열대우림의 포유동물을 조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덥고 습하며 거머리가 덤벼드는 나쁜 여건에다 동물이 야행성이거나 은밀하게 행동하고 워낙 희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생 포유류를 조사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은 배설물이나 털, 발자국 등을 찾는 것이고, 최근에는 동물이 지나갈 때 작동하는 무인 카메라가 널리 쓰인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유력한 조사 수단이 나타났다. 바로 연구자들을 애먹이던 산거머리가 그 주인공이다.
산거머리는 길이 2∼3㎝이며 다른 거머리와 달리 물속이 아니라 숲에 난 동물의 이동통로에 잠복하다가 지나가는 동물에 들러붙어 피를 빤다. 이 피를 확보해 유전자를 분석하면 거머리의 공격을 당한 동물이 어떤 종인지 알 수 있다. 마이클 테슬러 미국 자연사박물관 학예사 등은 과학저널 ‘계통분류학과 생물다양성’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산거머리가 포유류 생물 다양성을 조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남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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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하나인 마크 시달 미국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이번 조사에서 우리는 보호구역 안에서 총을 쏘지도, 덫을 놓지도, 배설물이나 털을 채집하지도, 특히 무인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고도 어떤 포유류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며 “이런 방법은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예컨대, 연구자들은 무인 카메라가 쥐 같은 소형 포유류는 감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거머리는 “정확도, 완성도, 속도, 비용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조사 방법보다 우월했다”고 시달은 말했다. 거머리는 흡혈 몇달 뒤에도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있는 혈액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형 포유류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번 연구에서 산거머리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그 지역 동물의 피를 두루 빤 것으로 나타났다. 흡혈 대상으로는 야생 소인 가우어와 문착 등 발굽을 갖는 우제류, 야생 고양이 등 육식동물, 토끼류, 쥐류, 나무두더지류, 마카크원숭이 등을 포괄했고, 메추라기, 멧닭, 꿩 등 땅에 사는 새와 박쥐도 들어있었다. 남아시아에 매우 드문 천산갑과 코끼리를 빼고 포유류의 대부분이 산거머리의 공격대상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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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러는 “거머리를 이용하는 방법은 보전을 위해 매우 유용한 수단임이 드러났다. 이 방법은 아주 빠르고 쉽다. 심지어 분석 대상인 거머리조차 찾아다닐 필요가 없이 제 발로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저 하이킹을 가듯이 조사지역에 가기만 하면 되고 단지 당신 피를 빨기 전에 떼어내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며 “어떤 지역의 척추동물상을 알아보는데 기존의 방법으로는 여러 달이 걸렸지만 이 방법으로는 하루 동안의 샘플링이면 된다”고 보도자료에서 덧붙였다.
산거머리는 주로 열대지방과 대만, 일본 등에 서식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서남쪽 끄트머리인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서 확인된 바 있다(▶관련 기사: 열대 정글 흡혈 산거머리, 남해 가거도에도 산다). 가거도 산거머리는 주로 장마철에 출현해 9월 중순까지 활동하다 휴면에 들어간다. 채준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국립생물자원관의 의뢰로 한 조사에서 산거머리가 사람, 생쥐, 족제비, 흰배지빠귀, 울새 등 다양한 동물의 피를 빤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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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el Tessler, Sarah R. Weiskopf, Lily Berniker, Rebecca Hersch, Kyle P. Mccarthy, Douglas W. Yu & Mark E. Siddall (2018): Bloodlines: mammals, leeches, and conservation in southern Asia, Systematics and Biodiversity, DOI: 10.1080/14772000.2018.143372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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