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전년(2만9745달러)보다 5.4% 늘어난 3만1349달러로 집계됐다. 2006년(2만795달러) 2만달러를 돌파한 뒤 12년 만에 3만달러를 달성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한 나라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인 국민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지표로, 국내총생산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그 나라 국민의 평균적인 소득·생활수준을 나타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 지표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인구 5천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나라는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 등 6개국뿐이다.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으로 서방 주요 7개국(G7) 멤버들이기도 하다. 한국이 7번째로 30-50클럽 국가가 됐다는 것은, 세계 11~12위권인 국내총생산·교역규모라는 양적 기준뿐 아니라 경제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세부적인 지점들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총소득의 근간을 이루는 명목 국내총생산의 지난해 증가율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1.1%) 이후 최저인 3%에 그쳤다. 국민총소득도 2.9% 늘었는데 역시 1998년(-1.9%) 이후 최저치였다. 수출물가보다 수입물가가 더 올라 교역 조건이 악화하는 바람에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0.1%) 이후 가장 낮은 1% 증가에 그쳤다.
그 결과 2015년(6.5%-2.8%)과 2016년(4.2%-2.9%)엔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압도했는데, 2017년 3.1%로 같아지더니 지난해에는 1%와 2.7%로 역전됐다. 가뜩이나 저성장인데 국민이 벌어들인 실질소득은 그보다도 더 적어진 것이다.
3만달러로 대표되는 화려한 ‘경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보여주는 ‘사회’ 지표들은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7개국의 달성 시기의 민생 지표를 분석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한국은 경제발전 속도에 비해 삶의 질 개선 속도는 매우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이 분배·사회복지 지표를 비교한 결과, 7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3만달러 달성 시기에 11.8%(7개국 평균)였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인구 중에서 빈곤위험에 처한 인구(중위소득의 50%미만)의 비율로,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2017년)로 훨씬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46.5%·2016년) 등 소득 불평등·양극화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이 3만달러 시대에도 큰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셈이다.
각종 근로여건 지표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2024시간·2017년)은 7개국의 3만달러 당시(1713시간)에 견줘 연간 311시간이나 많고, 구매력평가(PPP) 환율을 적용한 ‘실질 구매력 기준 평균임금’도 한국(3만2399달러)이 7개국 평균(3만9992달러)보다 크게 낮았다. 실업 상태에 놓였을 때 보호받는 수준을 보여주는 ‘실업급여 순소득대체율’도 7개국(25.2%)에 비해 한국(10.1%·2014년)이 턱없이 낮다. 연구원은 “소득 4만달러 달성을 위한 성장 및 생산성 제고를 지속하되,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질적 성장’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지만,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며 “이는 소득 양극화에 따른 박탈감, 소득 증가보다 빠른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한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 우리에게 있는지 의문”이라며 “저성장에 따른 지대추구나 진입장벽 강화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보유세 인상 등을 통해 지대추구에 따른 수익률을 낮추고 불공정거래 처벌을 강하게 해 진입장벽을 쌓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순혁 조계완 방준호 기자 hyuk@hani.co.kr




